▲2017년, 최저임금 인상과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청소노동자들이 도심을 행진했다.
공공운수노조
사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대학의 청소 일은 일자리가 귀한 우리 어머니 세대에도 흔히 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은 때라서 노동환경이 많이 열악했다고 한다. 들어온 사람들이 얼마 못 버티고 그만두는 바람에 회사에서는 입사자를 소개하는 사원들에게 소개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낮은 임금과 처우 그리고 노동환경이 2010년 전후 노동조합이 결성된 후 많이 개선됐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몇 년 지나서였다. 지금은 공공운수노조 소속 노조가 있는 대학 일자리(비록 비정규직일지라도)에 많은 사람이 지원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를 꺼리다가 동료의 권유로 가입했다. 가입을 주저했던 이유는 붉은 투쟁 조끼, 그리고 목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는 조합원들의 모습이 내가 그동안 순응하며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노조 그리고 투쟁이라는 단어들을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불온한 것으로 생각할 만큼 길들여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가입하게 된 것은 일하면서 직접 경험한 여러 부조리한 상황들 때문이었다. 용역사가 바뀔 때 고용 불안을 겪어야 했고, 퇴직금을 못 받은 적도 있었다. 동료가 동료를 상대로 부당한 착취와 강압을 행사하는 것도 봤고, 노동자 간의 크고 작은 불평등과 갈등으로 직장 내에서 여러 문제가 야기되는 것도 봤다.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결국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사측을 상대로 보호해줄 수 있는 조직, 동시에 노동자들 간의 문제를 서로 논의하고 중재해줄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내가 1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럴 때마다 의논할 수 있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게 노조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얻은 새로운 경험들과 지부에서 진행하는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권력 앞에서 생존을 위해 부당함을 감내해야만 했을 때 느꼈던, 비루한 감정에 가려져 있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지금은 분회장으로서 다른 노동현장의 여러 집회에 참여해 투쟁가를 부르고 있다. 노동자들이 외치는 구호와 투쟁가는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권이 포함된 '빵과 장미'의 노래이다.
"힘든 일을 하는 그들의 혼이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렇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 중
노동운동은 사회 운동이며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인권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나는 정년을 몇 년 남겨 두고 있다. 나와 동료들은 이곳이 거의 마지막 직장이 될 것이다. 건전하고 즐거운 직장 문화를 만드는 일에 노동현장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쓰고 싶다. 전도서에서는 '한 줌만큼의 휴식이 두 줌만큼 수고하며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알려 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년이 많이 기다려진다. 나는 쥐꼬리만 한 유급 노동을 위해 매연 가득한 도시를 거의 평생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그리고 싶어 했던 그림도 고교 시절 미술 숙제가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낡은 셋집의 얼룩진 벽지를 가리느라 벽에다 나무 몇 그루를 그린 적이 있었다. 딸아이가 스케치북과 색연필 등을 선물했지만, 그림에 집중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데도 나는 내가 살아온 과정이 한탄스럽거나 내가 하는, 그리고 해왔던 일들이 단지 하루하루를 살기 위한 부차적이고 소모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크게 보면 내가 하는 노동도 다른 이의 노동과 다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삶이라는 과정 안에서 내가 지녀온 태도와 진정성이 나의 삶의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삶을 나름대로 성실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 그 과정이 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몇 색깔 되지 않은 크레파스로 최선을 다해 그려냈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 그림처럼 말이다. 나의 삶, 나의 노동은 내가 그리고 싶어 했던 그림이었다.
정년 후 찬란한 햇빛과 푸르고 맑은 바람이 사는 자연에서 고되고 소란하게 살아온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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