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남한나, 김성자, 박미옥. 인터뷰에 참여한 김미정 부지부장은 구속심사를 앞둔 조합원 석방 촉구하는 저녁 문화제에 참석을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떠나 사진을 담지 못했다.
손진우
여성 노동자의 현장 진출과 함께 시작된 변화
노동조합은 평등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건설노조 중서부지부에서 여성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처음에는 반대에 부딪혔다. 왜 여성만을 위한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냐는 볼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다수의 여성 노동자들이 기능학교를 거쳐 현장에 진출하고 곳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노조는 본격적인 여성 사업을 추진했고, 그런 성과가 하나하나 쌓이면서 여성위원회를 결성하는 데 이르렀다. 건설노조 중서부지부 여성위원회는 2021년 12월에 발족했다.
김미정 부지부장 : "여성위원회 만들자, 이렇게 한 게 아니라. 우리 내부적으로 여성 사업을 쭉 조직적으로 진행하면서. 여성들이 '현장에서 일할 수 있고', '차별받지 않고'라는 기류들을 만들어 내려고 했죠. 처음에는 임금이 차이가 났는데,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가자'라고, 조직에서 결정을 하고. 이게 반발이 좀 있었지만, 조직적인 체계와 시스템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설득하고 한편으로 교육하고 이렇게 한 거죠."
남성이 대푯값을 갖는 건설현장에서 여성은 꾸준히 실존했지만, 그 존재가 지워졌던 게 사실이다. 한편에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와 동일시를 강요받거나, 무성적 존재로 취급되었다. 원청의 안전관리자가 안전교육을 진행하며 작업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는 명목으로 야한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건설 현장의 모습이었다고 그녀들은 말했다. 건설노조 중서부지부의 여성위원회 활동은 이런 행태에 반기를 드는 행위로 시작됐다.
남한나 여성위원장 : "건설 현장에 남성들이 많고 여성들이 소수였잖아요. 그전에도 여성들이 있었지만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그러면서 성희롱 이런 것들이 엄청 많고, 그건 그냥 일상 다반사였어요. 근데 여성들이 들어오면서, 노동조합을 통해서 어느 정도 현장에서, 성희롱에 대해서 많이 변화를 시켰죠. '음담패설하지 마라.' 우리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그 단톡방에 야동이 진짜. (웃음)"
김미정 부지부장 : "컨테이너에 가면 여자들이 벗고 있는 그런 사진을 걸어놓기도 하고 막 이랬는데 그런 게 싹 없어졌어요. 실제로 우리 현장에도 있었어요. 문을 딱 열었는데 그런 게 막 있는 거야. 그래서 이게 지금 뭐하는 겁니까? 문제제기를 했죠. 여성들이 현장에 들어와 일하게 되면서, 실제로 성희롱 사건이나 이런 것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소소한 것부터 큰 사건까지 있었는데, 이걸 단호하게 대처하고 징계도 하고 이러는 걸 보면서. 조합원들이 '그러면 안 되는구나'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현장에 조합원으로 딱 들어와서 같이 일하니까 조심하게도 되고 실제로 같이 일하면서 동료 의식을 느끼게 된 거예요."
노동조합의 조직적 결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동의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성평등 강사단을 초청한 조합원 교육을 비롯하여, 팀장 반장 대의원과 여성 조합원이 한자리 모여 진행하는 간담회를 추진하는 등 의식적인 노력 또한 동반했다.
한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언론의 취재에도 적극적으로 응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주축인데 왜 여성 노동자들이 언론에 소개되느냐'는 반발도 있었지만, 여성 노동자 친화적인 건설현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모든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조건을 개선하고 끌어올리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차츰 인식하게 되면서, 여성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많이 달라졌다.
남성조합원을 상대로 한 활동뿐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시간도 꾸준히 마련됐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여성위원회가 주최한 성평등 체육대회이다. 여성들이 모든 종목의 선수가 되어 일상의 업무에서 벗어나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공놀이도 하고, 줄다리기도 하며, 운동장에서 마음껏 소리지르고 몸을 부대끼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녀들은 '여성', '해방', '민주', '투쟁'의 색깔 깃발을 만들어 팀을 나누고, 다같이 모여 성평등 체육대회를 기념하는 '성평등세상' 배지도 제작했다.
건설노조 탄압에 맞서 노동조합을 지킨다!
인터뷰 내내 노동조합의 여성위원회 활동 경험을 들떠서 소개하던 그들이었지만, 작금의 윤석열 정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설노조 탄압을 이야기하면서는 얼굴에 시름이 깊어지기도 했다. 건설노조가 현장에서 힘을 잃게 되자 가장 먼저 배제의 대상이 된 건 여성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자 대의원 : "여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은 현장에서 여자라고 안 받아줘요. 저는 한 일 년 반 쉬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어요. 형틀 목수로 일하겠다고요. 6년 정도 일했다고 하는데도 안 받아줘요. 여자라서 안 된다고 딱 그러더라고요. 그게 좀 서글프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그랬어요."
박미옥 조합원 : "요즘은 여성들을 진짜 안 써 줘요. 저도 잠깐 (노동조합에서 현장에 팀을 구성하여 들어간 조합팀이 아닌) 일반팀으로 현장에 가봤어요. 근데 그건 너무 아니더라고요. 완전히 노예로 써요. 일하는데 쉬는 시간도 안 주고, 팀장이 다니면서 소리 지르면서 일을 시키는 거예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노동조합은 인간적인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지키는 기준선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노조탄압으로 그것이 무너졌다. 건설현장에서 노조가 개선해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김성자 대의원 : "막 비를 쫄딱 맞고도 일을 해야 되고, (일하는) 시간도 많이 늘어났어요. 지금은 8시간이 아니라 9시간, 10시간도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박미옥 조합원 : "건설노조 조합팀으로 들어갈 때는 휴게실 같은 것도 다 잘 돼 있었는데. 요즘은 휴게실도 없고, 그냥 차나 밖에서 옷 갈아입고요. 지금은 화장실 같은 것도 안 돼 있어요. 요즘에는 보면 그냥 아무 데나 소변 보고 이러는 게 너무 스트레스인 거예요."
건설노조 탄압으로 많은 이들이 노동조합을 떠났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처럼 건설노조를 지키는 노동자들이 있다. 여성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동등한 주체로 일하기 위해서도 노동조합은 필요하다.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눈엣가시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당당한 여성 노동자로 일하는 현장을 만들어가는 버팀목이다. 그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건설현장에서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해 낼 것이라는 걸 의심치 않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