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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짜리 전기차 순식간에 '꽝', 벤츠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

[현장] 전기차 안전성 논란속에 배터리 연구와 생산 그리고 충돌 실험까지

등록 2024.11.06 18:16수정 2024.11.0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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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정면 충돌 테스트를 거친 벤츠 전기차 EQS.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정면 충돌 테스트를 거친 벤츠 전기차 EQS.메르세데스벤츠

우리는 철제 계단을 내려갔다. 눈 앞에 주황색을 입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신형 전기차 이큐에스(EQS)가 서 있었다. 주변에는 플라스틱과 각종 부서진 차의 잔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차였다. 차 앞쪽 절반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바닥에는 냉각수로 보이는 물질이 흘러 내렸다. 현장에 있던 벤츠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던 실험 결과였다"고 자평했다. 이곳에선 매일 벤츠 신차 3대, 많게는 5대가 실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수많은 충돌, 안전 데이터를 남기고 사라진다.

지난달 22일 오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진델핑겐의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 벤츠의 신형 전기차 한 대가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기술 엔지니어의 출발 신호와 함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 70미터를 내달린 자동차에서 '퍽' 소리와 함께 굉음이 났다. 차 앞쪽에선 하얀 연기가 솟아 올랐다. 시속 64킬로미터의 속도로 장애물을 들이받는 실험이었다.

충돌 후, 소방 직원으로 보이는 안전요원이 바로 투입 됐고 누전 여부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6~7명의 연구원들이 컴퓨터 등의 장비를 들고 차로 이동했다. 차 내외부 곳곳에 부착된 각종 전선들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차와 현장의 안전이 확보된 후, 기자들에게 충돌 차를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국내 언론에 벤츠 전기차 충돌실험 현장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다.

벤츠는 왜 자신들의 핵심 연구시설을 공개했을까

차 앞쪽 오른쪽 보닛은 움푹 들어갔고, 앞바퀴 주변의 각종 부속품들은 부서져 흩어져 있었다. 이번 실험은 범퍼의 40%가량이 장애물과 충돌하도록 돼 있었다. 상대적으로 왼쪽 보닛은 크게 변형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오른쪽도 보닛을 넘어 운전석까지 손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앞쪽 유리창도 깨지거나 금이 간 곳이 없을 정도였다.

율리아 한너스 충돌안전 엔지니어는 "차 앞쪽 충격을 대부분 흡수해주는 '크럼플 존'이 제대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개 최근 차 제조사들은 알루미늄과 초강력 장판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충돌 사고 때 차가 잘 찌그러져야 그만큼 충격을 흡수해, 운전자 등을 보호하게 한다.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정면충돌 테스트를 거친 벤츠 전기차 EQS. 충돌안전 엔지니어가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정면충돌 테스트를 거친 벤츠 전기차 EQS. 충돌안전 엔지니어가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메르세데스벤츠

이날 실험에 탑승한 성인 크기의 더미(사람 모양의 실험용 인형)와 운전석 바로 뒤 어린이 형태의 더미도 멀쩡해 보였다. 운전석에는 스티어링 휠과 옆쪽으로 에어백이 펼쳐졌고, 뒤쪽으로 커튼 에어백이 작동하면서 충돌에 의한 2차 충격을 적절하게 막아준 것으로 보였다. 실내 앞쪽 커다란 하이퍼 디스플레이도 그대로였다.


시속 64킬로미터 속도의 충돌 설정에 대해, 한너스 엔지니어는 "대체로 운전자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사고 위험을 알고, 정지 페달을 밟아 속도를 줄이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충돌 후에도 자동으로 차 잠금장치가 풀려, 탑승자가 빨리 차 밖으로 나오거나 구조요원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1만 5000번의 시뮬레이션과 150번의 충돌… 0.001초에 전기 차단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정면충돌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는 벤츠 전기차 EQS.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정면충돌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는 벤츠 전기차 EQS.메르세데스벤츠

이곳 크기는 5만 5000㎡ 에 달한다. 규모로만 따지면 유럽에서 가장 큰 차량 충돌 실험 공간이다. 가장 긴 트랙 길이가 200미터가 넘는다. 최고 시속 120킬로미터의 충돌부터 다양한 형태의 사고 실험이 가능하다. 지난 2016년부터 매년 900대가량이 부서지면서, 각종 충돌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마르셀 브로드백 전기차 충돌시험 엔지니어는 "전기차의 특성에 맞춘 배터리 화재 가능성에 대비한 실험도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충돌 직후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고, 화재 등에 따른 탑승자 안전 확보를 위한 실험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충돌 실험장 아래 쪽에 투명한 유리를 배치했다"면서 "외부 충돌에 따른 화재 가능성과 배터리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고 덧붙였다.

현재 판매중인 대부분의 전기차 배터리는 차 바닥에 넓게 놓여있다. 벤츠는 차체 바닥에 고강도 강판으로 만들어진 보호막으로 배터리를 감싸고 있다. 또 양극과 음극 배선을 분리해 놓고 합선에 따른 사고도 방지하고 있다고 회사쪽은 설명한다. 브로드백 엔지니어는 "사고 후 고전압으로 인한 2차사고를 막기 위해, 1000분의 1초(0.001초) 수준으로 사고를 인지해 전원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츠는 신차 출시에 맞춰 1만 5000여 번의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150번 이상의 충돌 실험을 거친다고 했다. 기존 내연기관 차나 전기차가 다르지 않다. 이곳 안전센터가 문을 연 2016년 이후 실험 과정에서 배터리 화재나 폭발, 감전 사고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했다. 특히 1년 전 이곳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기차끼리 정면 충돌하는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차 배터리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내연기관 시대 왕좌 누렸던 벤츠, 전기차 시대에도 통할까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충돌안전 엔지니어들이 국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독일 진델핑겐 벤츠 차량안전기술센터(TFS)에서 충돌안전 엔지니어들이 국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메르세데스벤츠

그들은 벤츠 전기차의 안전성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1년에 수백 대의 차를 놓고,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벽에 부딪히고, 전기차끼리 충돌시키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8월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EQE 전기차 화재에 대해선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 아래쪽의 외부 충격으로 인해 배터리 팩 내부 셀이 손상돼 화재가 날 가능성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게다가 당시 사고는 차주가 주차장에 주차한 후, 59시간가량 지난 뒤에야 화재가 발생했다. 국내 벤츠 전기차 차주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힌너스 엔지니어는 "벤츠는 안전에 대해선 법에서 요구하는 조건 이외 소비자 안전 등급 그리고 법적 요건보다 훨씬 까다로운 내부 기준 등을 갖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차의 안전도를 평가하고 신차 개발과 양산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화재 사고에 대해서도, 다른 회사 관계자들과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사고 원인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 이를 반영해서 연구와 실험이 이뤄질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전동화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일시적인 수요 부진으로 전기차 전환이 주춤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전기차 시대는 거스를 수 없게 됐다. 150년 역사의 내연기관 시대를 이끌었던 벤츠를 비롯한 폭스바겐, 지엠, 도요타 등 자동차 업계도 출렁이고 있다. 테슬라를 비롯해 현대-기아차와 엘지에너지솔루션 등 2차전지 업체 등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여기에 값싼 중국산 전기차 공습도 거세지고 있다.

'내연기관 시대의 왕좌'를 누렸던 벤츠, 전기차 시대에도 통할까. 그들은 자체적으로 배터리 원료를 가져다가 셀을 만들고, 직접 배터리 팩을 생산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차량에 실어 충돌 실험을 하고, 다 쓴 배터리는 재활용해서 원료를 빼내 또 사용하려고 한다. 테슬라도, 현대-기아차도 아직 못하고 있다. 벤츠, 그들만의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려고 한다. 과연 통할까.

 독일 진델핑겐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 56의 테크라인 공정. 친환경 최첨단 시설을 갖춘 벤츠 최고의 공장이다.
독일 진델핑겐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 56의 테크라인 공정. 친환경 최첨단 시설을 갖춘 벤츠 최고의 공장이다.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화재 #충돌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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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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