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기사 : '학교안전법'은 '산업안전법'과 비교하면 법도 아니야
일곱째, 사업주의 책무 이행에 방점을 무겁게 두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종합적인 책임을 지는 주체는 사업주이기 때문에, 산업재해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갖는 사업주에 대해 안전·보건 확보 의무 등 특별히 많은 역할과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주요 의무 주체인 사업주에게는 크게 3가지를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법 제5조 제1항) ① 이 법과 이 법에 따른 명령으로 정하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준을 지킬 것 ②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할 것 ③ 해당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공할 것 등이다.
사업주의 일반적인 의무를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사업주는 산업재해 예방 시책·기준 등을 이행해야 하고, 안전·보건 관리 규정 작성·준수 등 안전·보건 관리체제 구축 의무 및 안전보건교육 실시 의무(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 교육, 기초안전·보건교육,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등에 대한 직무교육 등)가 있다.
또한 유해·위험 방지 조치 의무(법령 요지의 게시, 안전보건표지의 설치·부착, 산업재해 기록·보존의 의무, 보고의 의무)와 다양한 고용 형태에서의 산업재해 예방 의무(유해한 작업의 사내 도급금지, 건설공사 발주자 조치사항, 건설공사 도급인 조치사항,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 배달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 등)가 있다.
그 밖에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와 산업보건의를 두어야 하고, 근로자·사용자 동수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 설치·운영하여야 하며,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사업주는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맞도록 안전보건관리규정을 작성하고 근로자에게 알려야 한다.
또한 사업주는 산업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를 위해 재해 발생 원인과 재발 방지 계획 등을 기록하고 보존하여야 한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거나,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신청하여야 하며, 중대재해는 지체 없이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 위반 시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산업재해 발생 시 조치사항 및 처리 절차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재해자 발견 시 조치사항(① 재해 발생 기계의 정지 및 재해자 구출 ② 긴급병원 후송: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와 동시에 119구급대, 병원 등에 연락하여 긴급 후송 ③ 보고 및 현장보존: 관리감독자 등 책임자에게 알리고, 사고 원인 등 조사가 끝날 때까지 현장보존)부터 산업재해 발생 보고(① 산업재해(3일 이상 휴업 재해)가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거나, 요양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여야 함 ② 중대재해는 지체 없이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전화, 팩스 등으로 보고), 산업재해 기록하고 3년간 보존(① 사업장의 개요 및 근로자의 인적사항 ② 재해 발생 일시 및 장소 ③ 재해 발생 원인 및 과정 ④ 재해 재발 방지계획)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산업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재해는 반복해서 발생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산업재해를 분석・검토하여, 동종재해 또는 유사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이다. 이렇게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재해 재발 방지계획을 기록·보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위반 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하고 있다.
여덟째, 산업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수단을 지닌다. 산재 예방을 위하여 위험성 평가, 산업안전지도사를 도입하는 등 체계적인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 관련 단체 등에 대한 지원 및 지도·감독뿐만 아니라 안전·보건 조치에 관한 지침 또는 표준을 정하여 지도·권고할 수 있고, 노동부장관은 유해 또는 위험한 기계·기구 및 설비의 안전기준을 정할 수 있다.
이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안전교육, 통계분석·유지 관리와 같은 기본적인 제도 외에 안전·보건을 위한 기술의 연구·개발 및 시설의 설치·운영, 안전성 평가 및 개선 등 실질적으로 산재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홉째, 근로자의 의무과 참여에 대해서도 명시하고 있다. 근로자의 구체적인 의무(준수사항)를 규정하고, 위반 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가 준수해야 하는 안전조치 및 보건 조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근로자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준과 조치를 준수해야 하고, 안전보건교육 이수, 보호구 착용,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가 있고, 역학조사 실시 시 협조, 공정안전보고서 이행 의무가 있고, 작업환경측정 신뢰성 평가 시 적극 협조해야 한다.
또한 사업주와 근로감독관, 공단 등 관계인이 실시하는 산재 예방에 관한 조치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근로자의 참가 보장과 촉진을 유도(산업안전보건위원회)하고 있고, 근로자 대표의 권한(작업환경측정 시 참석 요청, 건강진단 결과 설명 요청 등)도 존중하고 있다.
열째,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법을 설치 근거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라는 전문기관을 두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업재해 예방 기술의 연구·개발과 보급, 산업안전보건 기술지도 및 교육, 안전·보건진단 등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법 제6조에서 명시하고 있다. 즉 산업재해 예방 기술의 연구·개발 및 보급,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교육, 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진단 또는 관리 등과 이를 위한 기술지원, 유해하거나 위험한 기계·기구 등의 안전 인증 또는 안전 검사,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시설자금 지원, 산업재해 예방시설의 설치·운영,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정보 및 자료의 수집·발간·제공,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국제협력, 산업안전보건에 관해 고용노동부장관이나 그 밖에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위탁하는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열한 번째,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재원의 규모를 명시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5조 및 제96조에 의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 기금의 100분의 8 이상을 예방 사업에 투입하도록 하고 있고, 그 규모는 연간 4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즉, 예방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열두 번째, 강제성 있는 벌칙조항을 두고 있다. 벌칙을 수반하는 최저 기준적 성격을 가진 산업안전보건법은 당사자의 의사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하는, 강제성 있는 법으로, 형사처벌·과태료 부과·행정명령 등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법제의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형벌과 과태료 등 벌칙조항을 두고 있는 것이다.
법을 위반할 경우 기업들은 큰 벌금과 함께 기업 이미지가 실추·손상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위법 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이고, 그 업무의 주체인 법인(또는 개인)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에게는 유죄 판결을 선고하거나 약식명령을 고지하는 경우에는, 별도로 200시간 범위에서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수강명령을 함께 부과하는 조항까지 명시하는 등 법률 위반 시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대부분 사업주를 의무 주체를 규정하고 있기에 원칙적으로 법 위반 행위자와 관계없이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해당 법 제72조 위반 내용에 따라 300만 원에서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데, 종전에는 법 위반 시 1회에 한해 시정 기회를 부여했으나 공공성 강화 및 산업재해를 더욱 줄여보자는 차원에서 2011년 4월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이제는 법을 위반할 경우 시정 기회 없이 바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벌 없이 사업주에게 선언적인 의무만 부과(제5조)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과태료 부과 및 징수 권한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있다.
학교안전법도 최소한 산업안전보건법 수준으로 개정해야
학교안전 법제와 산업안전 법제를 견주어본 결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학교안전법보다 비교우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비교적 내용이 알차고 실효성 있는 것은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다시 말해 산업재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끊임없이 개정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으로 산업재해가 줄어들고 있고, 사망사고 발생률도 지난 20년간 3분의 1 수준으로 줄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하였다. 우리나라 사고사망만인율이 OECD 38개국 중에서는 34위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매년 800명 이상의 소중한 생명이 중대재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있음을 직시하여 고용노동부와 산업계는 중대재해 사고사망만인율을 오는 2026년까지 OECD 38개국 평균인 0.29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2년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법제가 학교안전 법제보다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벽에 가깝지는 못하다. 아니 해외 안전 선진국들의 법제와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한동안 우리나라는 산업재해를 줄이고 중대재해 사고사망만인율을 낮추기 위해 계속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 작업을 해왔다.
이런 노력이 일정 부분 성과로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규제 일변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산업안전 법제가 지나치게 지시적 규제 방식이라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점과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안전 법제는 사업주가 준수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일일이 정해주고 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첨단기술시대에는 현장 상황을 규제가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1220개가 넘는 규제 조항이 있지만 사고가 나면 정작 적용 조항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국의 경우, 1974년 규제 방식으로 전환했다. 여러 법제에 분산돼 있는 규제를 통합하고, 목표는 부여하되 그 실현 방법을 사업주에게 맡기는 이른바 '목표 기반 규제'로 바꿔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영국의 사고사망만인율은 우리의 1/5에도 못 미치는 세계 제일의 안전 선진국으로 우뚝 서 다른 나라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시적 규제에서 목표 기반 규제, 즉 위험성 평가를 통해 사업주 스스로 안전관리를 하도록 하는 자율규제 방식이 보다 바람직해 보인다. 영국은 일찍부터 사업주에게 산재 위험을 찾아 개선하도록 하고 있고 그 조치 방법까지 스스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의무는 사업주에게 주어진 의무의 거의 전부이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업주는 사고 위험을 찾아내지 못할까 봐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율규제는 위험성 평가가 아니라 일반 의무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사업주에게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하도록 하는 포괄적 의무를 부여하되, 대신 다른 강행규정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율규제 방식이 처벌을 약하게 하자는 의미가 아니고 사업주로 하여금 위험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가장 최선의 조치 방법을 스스로 정해 사고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자율권을 주되 오히려 산업재해가 증가하면 무겁게 처벌한다는 것이다. 처벌을 약하게 해서는 안된다. 처벌이 예방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자율규제 방식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우리나라 산업안전 법제뿐만 아니라 학교안전 법제도 영국처럼 목표 기반 규제, 곧 자율규제 방식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영국처럼 자율권을 충분히 부여하되,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안전교육과 안전조치 등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잘못해서 오히려 사고와 재해가 증가하면 무겁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해 보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