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 창간호 '빨강, 뜨겁고 매움'
스튜디오어중간
빨갛고 뜨겁고 매운 <병:맛>의 탄생
- 창간호의 부제가 '빨강, 뜨겁고 매움'인데, 무슨 뜻인가요. 어떤 콘텐츠를 담았는지도 궁금해요.
"투병한다는 것, 병을 겪는다는 것은, 병이 시각적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으로 내 온몸을 침범하는 이벤트예요. 투병의 시간을 그런 감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빨갛고 뜨겁고 매운 통각이 첫 번째 <병:맛>이 되었죠.
1권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고 또 감사한 글이 '젊은 투병인에게 전하는 책과 문장들'이에요. 글을 기고하신 메이 작가님은 투병과 관련된 책을 번역하고 에세이도 쓰시는 전문작가인데, 이런 문장을 써주셨어요. "힘든 시기에 우리를 붙잡아서 계속 살게 하는 말이 있다.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 말…. 모든 말도 아무 말도 다 소용없다고 느낄 때, 그럼에도 끝까지 남아있는 말." 우리가 만든 매거진이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절망 앞에 선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을 너무나 좋은 문장으로 표현해주셨어요.
창간호 첫 인터뷰이인 희우 님은 고등학교 때 루프스(자가면역질환)가 발병했는데, 입시공부에 전념하다 건강관리 시점을 놓쳐 신장투석까지 받게 됐어요. '서울대와 신장을 맞바꿨다'고 하시더라고요. 희우 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의 의욕이 넘치는 젊은 투병인들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절감했어요.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던 급훈도 생각났죠. 희우 님은 죽도록 공부하면 정말 죽는 사람이었는데, 경쟁에서 누구도 이탈할 수 없는 우리사회 분위기 때문에 지독한 입시경쟁으로 스스로를 내몰았어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고혈압과 당뇨 같은 노인성질환 발병률이 높기로 유명한데, 운동 안 하고 장시간 앉아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몸과 마음이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죠.
창간호에는 또 투병하는 아내와 간병하는 남편, 30대 부부의 인터뷰도 있는데요, 아내의 병에 대해 해외논문까지 찾아보며 공부하는 열정적인 남편과 발병-치료-재발-완치에 이르는 긴 시간 병마와 싸운 아내가 한마음 한뜻일 것 같지만 같은 질문에 서로 다른 대답을 해서 너무 재밌었어요. 이밖에 투병의 시간을 표현한 퍼포먼스 사진도 담았고요, 젊은 투병인의 연애를 담은 단편소설 '매미가 운다'(유수훈 작가), 도움되는 호흡법이나 가벼운 체조를 소개한 지면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