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정민
실패한 사과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모욕을 준다
실패한 사과의 대표적 예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든지 미안합니다"처럼 구체적인 설명 없이 '무조건 용서'를 비는 경우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낮은 자세로 사과를 표했지만, 정작 "무엇에 대해 사과하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세간에) 오가고 있어 설명이 어렵다"고 답해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다. 이처럼 가해자가 자신이 초래한 피해를 설명하지 않은 채 사과할 때, 피해자는 고통을 표현하고 이해 받을 기회를 잃는다.
실패한 사과 중에서도 가장 기분 나쁜 유형은 '조건부 사과'일 테다. "기분이 상했다면 죄송합니다" 같은 표현이 그 예다. 이런 사과는 마치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잘못하지 않았다는 여지를 남겨 두면서, 스스로 세운 어떠한 기준에 부합하는 행위인 듯 정당성을 부여한다. 동시에 피해자의 예민함이 문제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도 준다.
조건부 사과의 친구 격으로는 '수동태 사과'가 있다. 지난 7월, 홍명보 축구 감독은 '한국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에 대해 "내 안의 무언가가 시켰다"고 해명해 자신의 감독직 결정을 타자화했다. 자신을 '그렇게 하기에 어쩔 수 없었던 사람'으로 포장하면서 스스로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실패한 사과들은 피해자에게 불충분한 사과로 받아들여지며, 2차 가해행위로도 여겨질 수 있다.
사과는 왜 어려울까
그렇다면 실패한 사과를 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사과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론 라자르의 책 <사과에 대하여>에 따르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사과를 어렵게 여기는 사람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사과 대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두려운 사람들'이다. 피해자가 혹 앙심을 품지 않을까,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사과로 인해 권력 관계가 뒤틀리지 않을까 하는 여러 불안감 때문에 사과를 꺼린다.
두 번째는 자신의 우월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과를 일종의 패배나 굴복으로 받아들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존감 낮은 사람' 또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자(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들이 대개 이러한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사과로 인해 접하게 될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피하고자 한다. 이에 라자르는 "(놀랍게도) 이들은 해를 끼친 행위 자체보다는 사과의 결과로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사과할 방법을 모르거나, 사과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종종 드라마에서 어느 재벌이 물질적 보상으로만 실수를 덮으려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이는 감정적·심리적 교류를 통해 사과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한 탓이 크다.
이렇게 보면, 반대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은 건강한 자아존중감을 갖춘 경우가 많다. 라자르는 "사과가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기꺼이 상호 인간적 교류의 상황에서 주도권을 공유하려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즐긴다"며 "이들은 자신의 단점과 결점을 인정하면서 지속적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