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북파머스
박애희 작가의 엄마는 라디오 작가로 일하는 딸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들으며 딸의 마음을 읽어내 안부를 전하곤 했다. 작가의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었던 이 세상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61세의 나이에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애희 작가는 살아있는 동안 눈부신 날들을 선물해 주었던 엄마를 그리워하며,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 사이에서 건져낸 기쁨들을 발견하고자 엄마와 함께했던 일상을 책으로 엮어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내 우리를 키워낸 세상 모든 엄마에 대한 헌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였다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가장 따뜻한 그 무엇이면서,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더라도 어차피 다시금 용서해 줄 거라고 믿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가끔은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방식으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말이다.
조혈 모세포 이식을 받은 엄마는 면역력이 신생아보다 약해서 멸균 관리와 소독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작은 균 하나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흙이 잔뜩 묻은 대파를 다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딸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폭발하고 맙니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아느냐고, 언제까지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느냐고 소리칩니다. 엄마는 말합니다. "내가 죽어야지.... 내가 빨리 죽어야지....." 자식들의 짐으로 전락한 당신의 처지를 비관했을 것입니다. 딸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엄마가 빨리 떠날까 봐 무섭고..... 속상하고 두려운 마음에 엄마의 마음을 할퀴었던 것인데.....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계속 뭔가가 울컥 울컥 올라와서 한동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게 남은 세상의 엄마들이 한 번쯤은 했을 말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도 "내가 죽어야지..."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던 적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그려지고 이해되었기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생명 연장 장치를 몸에 연결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할 것인가가 아닌, 얼마나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93쪽)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요즘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가 가장 행복해하는 일을 함께 좋아해 주고, 그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와 내가 나눌 수 없었던 시간들을 지나오며 조금은 서러웠고 때로는 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는 것도 같다.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칭찬과 보살핌을 바라며 응석을 부리던 아이의 마음을 보내고 누군가 없이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는 법을 다시 한번 깨우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홀로서기의 시간을 통해 어른다운 어른으로, 한 사람의 엄마로, 오늘도 성장하는 중이다.(277쪽)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우주에 혼자 남아 부모 없는 고아가 될 시기가 온다. 그 시기가 되었을 때 제대로 된 어른으로 바로 서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어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지, 우리 삶을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읽은 뒤 그런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무엇보다도 거창한 이야기, 위대한 성과를 남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수시로 안부를 물어봐 주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라고 자주 얘기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찾아오는 오늘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다, 어떤 날 불현듯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한 번 더 원했던 내일이 나의 오늘이라는 사실이 마음 깊숙이 다가올 때가 있다. 인생의 페이지가 한 장씩 줄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릴 때면, 아끼는 책이 끝나는 게 아쉬워 천천히 읽던 어느 순간처럼 일상을 되도록 섬세하고 소중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래야 언젠가 내가 사랑한 당신들이 끝까지 사랑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테니.(339쪽)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인생이 한 페이지씩 줄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는 한 페이지씩이 아니라 뭉텅뭉텅 줄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두렵기도 하다. 우리 삶을 섬세하고 소중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책을 덮으면서 세상을 떠났지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고,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건네면서 우리가 끝끝내 지켜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접한 독자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바로 전화기를 들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스한 목소리로 "보고싶어요. 사랑해요"라고 마음을 전해보면 어떨까?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언제나 내 편인 이 세상 단 한 사람
박애희 (지은이),
북파머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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