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전수1863년 8월 14일 달밤 삼경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로부터 해월신사 최시형은 동학의 2세 교주 자리를 정식으로 물려받았다. 이후 해월 선생은 오직 수운 선생의 명교를 실천하고 새로운 개벽 세상을 열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견뎌낸다. 해월 선생이 수운 선생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는 모습을 박홍규 화백이 그림으로 재현했다.
박홍규
해월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다
그날이었다. 북도중주인 해월 선생은 스승인 수운 선생을 뵙고 가르침을 받으러 1863년 8월 13일(음) 추석을 이틀 앞두고 용담으로 찾아간다. 이날 가을 하늘은 유난히 밝았고, 들녘은 오곡이 익어가는 황금빛으로 변해가며 물결치고 있었다. 늘 그렇지만 해월 선생은 스승을 뵈러 갈 때마다 가슴이 설레었다. 오늘따라 더욱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한 기분마저 들었다.
추석 명절을 스승님과 함께 지내려는 간절한 심정으로 등에 짊어진 보따리마저 가벼워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아침 일찍 검등골을 출발한 해월은 70리가 넘는 길을 단숨에 달려와서, 정오가 조금 지나 마룡동의 용담에 도착한다.
해월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대접을 받은 것은 수운 스승님으로부터였다.
자신을 온전히 인정해 주는 스승님은 바다의 눈물이요 달처럼 환한 기쁨이었다.
해월은 가난한 노동자로서 배운 것도 변변치 못하였고 가진 것은 더욱더 없었다.
다만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서 스승님을 뵙는 것이 전부이다.
너도 하늘이다! 이 말씀을 듣고 해월은 하늘꽃으로 피어났다.
수운 스승님과 함께하면 그 자체로 지상 신선이었다.
아! 무엇을 더 바라고 원할까.
그렇다, 수운 스승의 가르침은 우주를 품은 하늘 같은 가슴이요 한결같이 늘 푸른 소나무였다.
수운 선생은 기다렸다는 반가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명절 때문에 바쁘실 건데 이렇게 왔는가?"하면서, 해월이 뜻밖에 찾아온 것처럼 맞이한다. 해월 선생은, "스승님께서 외로이 추석 명절을 보내실 것 같아 제가 모시고 같이 지내고 싶어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수운 선생과 해월은 여러 도중(道中)의 일을 의논하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다.
해월 선생은 다음날 14일 온종일 허드렛일을 했다. 간간이 스승과 함께 경전의 내용이며 도의 이치 등을 문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이내 밤이 되자 수운 선생은 주위 사람을 내보내고 홀로 오랫동안 심고(心告)를 하더니, 해월을 불렀다. 그리고 해월에게, "무릎을 단정히 하고 내 앞에 앉아라"고 하였다. 스승님이 지시한 대로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았다. 잠시 후 수운 선생은 해월에게, "손과 발을 굽혔다 펴 보아라"고 하였다.
해월은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지며 대답은커녕 몸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운 선생은 이를 바라보고 웃으시며 해월을 쳐다보다가 이르시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이러하나?"하였다. 이 말을 듣자 곧 몸이 움직이며 굴신(몸을 굽힘)이 되었다. 수운 선생 이르기를, "그대의 몸과 팔다리를 좀 전엔 펴지 못하더니 지금은 왜 움직이는가?" 해월은 대답하기를,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고 하였다.
수운 선생 이르기를, "이것이 바로 조화가 대단함이로다. 후세에 난을 당한들 무엇을 걱정하랴, 신중하고 신중하라"고 말씀하였다. 이날 있었던 수운 선생과 해월의 언행에 대해 동학 천도교에서는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수운 선생이 수제자 해월에게 도통을 전수하려 단전밀부의 조화를 부려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는 '수운 선생이 해월에게 오심즉여심(吾心則如心)의 하나된 마음과 몸 즉 일심동체(一心同體)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도통전수를 위한 수운 선생의 조화를 말함이다.
분명한 것은 도통전수 과정에서 한울님과 수운 선생이 일심이 된 것처럼, 수운과 해월의 일심(一心)을 확인하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그날 8월 14일 달밤 삼경(三更)에 수운 선생의 마음과 해월 선생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 단전(單傳)의 도통 전수를 행하였다. 이로써 해월 선생은 동학의 2대 교주 자리를 정식으로 물려받는다.
수운 선생은 15일 추석날 새벽이 밝아오자, 하늘 마음을 지키고 바른 기운을 살리는 수심정기(守心正氣)와 하늘의 뜻과 수운 스승의 명교를 받으라는 수명(受命)의 글씨, 변함없이 곧은 마음인 일편심(一片心)의 법문을 해월에 전한다.
龍潭水流四海原 劍岳人在一片心
용담수류사해원 검악인재일편심
(용담의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이 되고, 검악에 사람이 있어 하나의 곧은 마음이다.)
용담의 물은 용담에 사는 수운 선생을 상징하고, 검악의 사람은 검곡에 사는 해월 선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용담연원의 도통 전수가 사사로움이 아니라, 천명(天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해월 선생은 8월 14일 정식으로 도주(道主) 즉 동학의 제2세 교주로 임명되어 도통을 물려받았다.
해월 선생이
수운 선생으로부터
동학 2세 교주를
물려받은 것을
하늘의 뜻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수운께서 해월의
사람 하나 됨됨이를 보고
참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하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