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혁진
고령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자식으로서 노심초사할 때가 많다. 지팡이에 의지해 스스로 경로당을 오가지만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아버지가 혹시 먼 길을 가야 하거나 긴히 외출해야 할 경우엔 내가 차량으로 모시고 있다. 이렇게 바깥출입을 자제하신 지 오래됐다.
10년 전만 해도 아버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동네 지역사회 봉사에 앞장서고 이북실향민 모임도 매달 일일이 챙기시는 분이었다.
집안 일도 아버지가 도맡아 했다. 자식이 신경 쓰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하시더라도 나로선 아버지가 늘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90세를 넘기자 거짓말같이 기력과 체력이 뚝 떨어지셨다. 이때 지팡이를 잡기 시작하셨다.
쇠약하진 아버지 일과는 경로당을 오가는 것이 거의 전부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고향 후배 한 분이 한 달에 한번 아버지를 찾아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이다.
이 날만큼은 아버지는 경로당 가는 걸 취소하고 후배와 늦은 점심을 하러 단골식당에 가신다.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
지난 14일 아버지가 고향 후배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단 119에 연락을 부탁하고 나도 가까운 119에 연락을 취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 차라리 뛰어갔다. 버스를 타더라도 대기시간을 치면 마찬가지. 가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상황이 위급한지 119 대원과 식당 주인은 내가 언제 도착하는지 여러 번 채근했다. 속으론 급하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병원으로 급히 이송하길 바랐다.
현장에는 이미 119 대원들과 경찰이 와 있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랐다. 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둘러싸여 멀쩡하게(?) 서 계셨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는지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당도하자마자 제일 먼저 아버지 얼굴과 눈을 살폈다. 아버지는 평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가 성치 않은 아버지는 내 말도 잘 알아들었다.
그러나 119 대원의 질문과 간단한 검사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넘어진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119는 응급환자에 대해 '활력징후'를 검사하게 돼 있다. 이러한 절차는 응급환자 병원이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또한 아버지는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넘어지면서 뇌출혈과 심장질환 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검사 등 응급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후 아버지는 119 검사에 협조하고 구급차 들것에 실렸다.
문제는 응급실 이송이었다. 사고현장에서 가까운 구로구 고대병원, 한림대 성심병원, 대림병원 응급실은 119 요청에도 모두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
119 대원들에게 감사
한편 함께 식사한 고향 후배에 따르면 아버지가 밥을 국에 말고 한 수저도 드시지 않았는데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이를 목격하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후배가 급히 다가가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자리에 앉히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정신이 들고 이어 119 대원들이 현장에 당도했다는 것이다. 이게 20분 사이에 벌어진 상황이다. 이날 식사자리에 또 한 분의 고향후배가 처음 동석했는데 깜짝 놀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