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네앞뚜껑
봄개울
살려 쓴다는 것을 짚어보게 만드는 <멀쩡하네>를 연주하면서 법정 스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분이 글을 쓰는 법정 스님에게 촉이 뾰족한 만년필을 드렸다. 끝이 날카로워 사각사각 써지는 느낌을 좋아했던 스님이 유럽 여행길에 들어간 가게에서 똑같은 만년필을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하나 더 샀다. 그런데 하나를 더 사고 나니 하나였을 때 지녔던 살뜰함이 사라졌다.
그래서 아는 스님에게 새로 산 만년필을 주었더니 하나였을 때 품었던 알뜰한 마음이 살아났다고 했다는 말씀이다. 스님이 우리에게 알려주려던 뜻은 그것만이 아니다. 만년필이 둘이 되고 나니 하나를 쓸 때 하나는 쓸모를 잃고 누워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주어 쓸모, 그러니까 힘을 잃고 누워 있던 만년필에 살 힘을 불어넣어 줬다는 말씀이다.
<멀쩡하네>를 지은이 임서경도 쓸모를 잃은 아기 수레와 힘을 잃어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어울려 서로 살리도록 했다. 함께 산다는 말은 서로 있다는 말로 서로 있어서 이웃이다. 이웃은 어깨를 겯어 서로 받쳐주는 사이다.
책 앞뚜껑에 있는 노란 아기 수레를 보면서 노숙자들에게 만들어준 수레가 떠올랐다. 2006년 디자인붐 사회의식상 으뜸상을 받은 '보금자리 수레Shelter Cart'가 그것이다. 폐지나 고물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손수레인데 밤에는 비바람, 눈보라를 막아주는 집으로 쓸 수 있다. 살아난 노란 아기 수레가 할머니를 살리듯이 보금자리 수레는 노숙자들에게 일터와 잠자리가 되어준다. 이 얘기는 <이토록 다정한 기술>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