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내려서 탑골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3월 1일 총선연대가 3. 1절 '유권자 독립선언' 집회를 하는 날이다.
방송에서 11시부터 4시까지는 종로가 차없는 거리를 만든다고 하더니 아직도 도로에는 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이것도 코리안 타임이군' 이라고 생각하며 집회장소로 계속 나아갔다.
꽤 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곳이 있어서 '오늘은 지난 집회때보다 훨씬 많이 왔구나'라고 기쁜 마음으로 그 곳으로 가보았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곳은 종로구청에서 주최하는 3. 1절 기념행사였다.
일률적으로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총선 연대의 집회는 바로 그 옆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모인 군중들의 수는 구청 집회보다 훨씬 적었다. 약간의 좌절을 느끼며 나도 집회에 참석했다.
무대에서는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장사익씨가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아저씨의 노래가 갑자기 뜻하지 않는 방해를 받게 되었다.
옆에서 진행되는 종로구청의 집회가 범인이었다. 총선연대보다 훨씬 좋은 방송시스템을 보유했는지 시도때도없이 '3.1절 노래 (웅장한 톤의 기이미이이년~ 사아암워월 오오일~)가 울려 퍼지면 총선연대의 집회는 진행하기조차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종로의 차량 통제가 이루어지면서 종로 구청의 행사가
도로에서 이루어지면서 소음 공해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이 또 와있었다.
공천무효소송 서명을 저지했던 선관위사람들도 여지없이 집회 현장에 나와있었다.
아저씨의 노래가 끝난 후 3.1일에 33인이 독립선언을 했던 것을 본따서 총선연대에서 선정한 33인의 인사가 무대위로 올라왔다. 그 중 눈에 띄는 사람은 시사만화가 박재동씨, 연극배우 유인촌씨, 시인 박노해씨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언론에 알려진 탓으로 많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무대 한쪽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수화통역을 하던 임민선씨(24) 지난 2월 19일에 인터뷰를 했던 이였다.
33인 중에 한국장애인 단체총연맹의 회장님도 포함되어서 이번에도 수화통역을 하고 있었다. 33인의 소개가 끝난 후 고은 시인이 격정적인 목소리로 '유권자 독립선언'을 낭독했다.
마치 3.1절에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처럼 시인은 열정적이었다. 낭독을 하던 중에 갑자기 마이크가 꺼졌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송사 카메라맨 보조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은 시인의 목소리를 따기 위해서 방송에서 보면 리포터들이 들고 다니는 무선 마이크를 선생님의 몸에 장착했다. 정말 대단한 열의다.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노력이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연설이 끝난 후 33인의 대표들이 손에 먹물을 묻혀서 플랭카드에 찍기 시작했다. 이 때 취재경쟁은 정말 치열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누군가가 카메라를 조금만 가릴 것 같으면 고성이 터져나왔다.
지난번에 기사를 쓰면서 다루었지만 임민선씨의 통역은 오늘도 역시 열띤 취재경쟁때문에 방해받았다. 언론인들이 오로지 먹이를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행사가 끝난 후 보신각까지 33인과 함께 거리 행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행사도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보신각으로 향하는 길에는 줄타기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꽉 막혀 있었다. 결국 거리행진은 탑골공원에서 약 20미터정도 밖에 진행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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