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수씨 서울대에 등록한 적 없다

오마이뉴스 공개추적-두 서울대생 실종 10여년, 노진수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③

등록 2000.05.09 10:58수정 2008.07.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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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4월 말 새벽 2시경. 노진수(盧鎭秀·1962생)씨는 신림동 한 독서실에 있었다.

 

그는 좁은 독서실 한칸에서 새벽까지 책을 보고 있다가 체격이 건장한 사내 3명의 방문을 받는다. 몇 마디 말을 건네는 그들과 노씨. 그 뒤 노씨는 런닝바람으로 함께 독서실을 나선다.

 

그게 노진수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 내용은 당시 노씨가 머물렀던 독서실 총무가 가족들에게 전해준 것이다.

 

지난 5월6일 오전 8시 노씨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발 동대구행 새마을호 열차에 올랐다.

 

"나는 잃은 가족만 셋이다"

 

노진수씨는 대구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는 어머니 최소선(69세)씨와 한국전쟁 상이군인인 아버지 노금백(87년 작고)씨 사이에서 3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 넉넉하진 않았으나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대구경복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큰형이 유리창 청소 도중 2층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1970년 5월경)이 발생한다. 당시 큰형은 똑똑하고 책임감이 강해 집안의 기둥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고통은 더욱 컸고 떨어진 경위를 둘러싸고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으나 원고패소 판정을 받았다.

 

소송비 부담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노진수씨 가족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월세이사만 수 차례 했고 채권자의 독촉 때문에 맘편히 잠을 이루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노씨가 법대에 진학한 이유도 형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가족의 설명이다. 형의 죽음처럼 억울한 사람을 도울 길은 법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막내아들이 실종되고 나서 아버지는 애를 끓다 지병인 간염으로 87년 작고하였다. 어머니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비슷한 사건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걸 우찌 말로 다 설명합니까. 지가요, 잃은 가족만 셋이라예. 큰아들 어찌 죽었는지도 모르게 보냈제, 우리 친오빠 있잖습니꺼. 일제 때 보도연맹 가입하라캐서 도장찍었더니 기관에 불려가서 다신 안왔습니더. 오빠는 기냥 운전사였어예. 당시에 다들 도장 찍으라해서 찍은 건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봤십니더. 이제 우리 진수까지 사라져 버렸으니…."

 

노진수씨의 누나 노순옥(43세)씨는 외삼촌이 좌익으로 몰려 실종된 가족사와 당시 험악한 시대상황 때문에 동생실종원인을 떳떳하게 밝히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동생이 사라진 직후 실종신고가 아니라 가출신고를 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마지막 남은 둘째 아들마저 잃을까봐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봤던 책이며 사진이며 유품들을 치웠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점과 굿을 통해 자기위안을 받는 것뿐이었다. 억지춘향격으로 타인의 입으로 아들의 생사를 확인받는 것, 그것은 비상식적인 통로에서만 가능했다.

 

"점하고 굿 안했으면 여태까지 못살았십니더. 점해서 아들 살았다, 걱정하지 말라, 이카니까 살지, 우찌 버티겠습니꺼."

 

어머니 최씨는 대구 주공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파트는 금방이라도 어디 떠날 집처럼 어수선했다. 지금도 최씨는 포목점과 절을 왕복하며 종교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진수요? 조금 특별한 친구였죠"

 

노순옥씨는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가지만 해도 내성적인 편이었으나 대학에 진학하고부터는 활발하고 사교적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동생이 학년대표 맡았다고 했을 때 누나가 의아해 할 정도였다.

 

노진수씨와는 고교동기로 비교적 친근했던 김용범(42세)씨는 인간 노진수를 조금 특별한 존재로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의 진술에 따르면 노진수는 교우관계의 폭이 상당히 넓었고, 정도 많고 조숙한 아이였다. 노진수가 고 2때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대 법대에 시험을 친 것도 노씨의 조숙함이 한 몫 했다는 설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돼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었습니다. 근데 돈이 모자랐지 뭡니까? 진수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가장 뒤늦게 나왔는데, 주인한테 걸려서 나중까지 혼자 술값계산을 했습니다. 진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베일에 쌓인 의문들

 

가족들은 노진수의 실종을 정치적인 실종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 판단의 근거는 앞서 노씨의 최후 목격자인 독서실 총무의 발언이 그렇고 막내의 성격으로 봤을 때 어딘가에 구속되거나 죽지 않은 이상, 17년이 넘는 세월을 연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서 세상을 등질 가능성에 대해서 고교친구인 김용범씨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인간 노진수는 그럴 만한 인물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억울한 사람을 돕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래서 법대에 진학한 노씨가 왜 그랬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실종직후에 가족이 만났다는 독서실 총무의 발언을 제3자가 직접 확인하는 작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오마이뉴스가 현재 추진중이다). 또 노씨는 입학과 더불어 실종될 당시까지 3학기 내리 휴학을 했었다. 81년 1학기, 2학기, 82년 1학기. 노씨가 81학번이고 82년 4월에 실종됐으니 한번도 서울대에 다닌 적이 없는 셈이다. 가족들 증언에 의하면 노씨는 광주, 창원, 부산 등지로 다니며 무척 바빴다고 한다.

 

(노진수씨에 대한 기사는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대들을 찾아 나섭니다.
오마이뉴스는 민가협(의장 임기란, 총무 남규선)과 공동으로 그대들이 이 하늘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노진수씨(대구 남구 대명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법대 2학년에 휴학중이던 1982년 5월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앞 지하독서실에서 기거하던 중 한밤중에 방문한 세 남자와 함께 떠났다고들 합니다.

그로부터 17년, 가족과 학우들은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냈지만 그 누구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안치웅씨(광주 동구 산수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무역학과를 1988년 2월 졸업한 후인 1988년 5월 26일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2년, 가족과 선후배들은 일간지에 '사람을 찾습니다' 광고를 내봤지만 당신은 연락해오지 않았습니다.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세월은 흘러 동시대를 살았던 당신의 친구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벤처기업 사장이 되고, 시민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 한둘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대들은 정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어디로 떠난 것입니까? 

오마이뉴스는 3명의 특별취재팀, 그리고 1800여 기자회원들과 함께 당신을 찾아나섭니다. 

(노진수, 안치웅씨의 행방과 관련해 도움을 주실 분은 오마이뉴스 1면 우측에 있는 '기사제보'란을 이용해 주십시오.)

2000.05.09 10:5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대들을 찾아 나섭니다.
오마이뉴스는 민가협(의장 임기란, 총무 남규선)과 공동으로 그대들이 이 하늘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노진수씨(대구 남구 대명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법대 2학년에 휴학중이던 1982년 5월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앞 지하독서실에서 기거하던 중 한밤중에 방문한 세 남자와 함께 떠났다고들 합니다.

그로부터 17년, 가족과 학우들은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냈지만 그 누구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안치웅씨(광주 동구 산수동 출생).
사람들은 당신이 서울대 무역학과를 1988년 2월 졸업한 후인 1988년 5월 26일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2년, 가족과 선후배들은 일간지에 '사람을 찾습니다' 광고를 내봤지만 당신은 연락해오지 않았습니다.

노진수씨, 안치웅씨 어디에 있습니까.

세월은 흘러 동시대를 살았던 당신의 친구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벤처기업 사장이 되고, 시민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 한둘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대들은 정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어디로 떠난 것입니까? 

오마이뉴스는 3명의 특별취재팀, 그리고 1800여 기자회원들과 함께 당신을 찾아나섭니다. 

(노진수, 안치웅씨의 행방과 관련해 도움을 주실 분은 오마이뉴스 1면 우측에 있는 '기사제보'란을 이용해 주십시오.)
#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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