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래된 기억 속의 청춘, 고소영과 정우성의 CF

조금은 흘러간 청춘스타 고소영과 정우성이 다시 한번 청춘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등록 2000.05.24 21:29수정 2000.05.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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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 DDR, 스타크래프트, 인터넷, 닷컴 등등 21세기의 문화현상을 상징하는 온갖 새로운 기호들이 브라운관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왜 필요한지도 모른 채 쏟아지는 정보를 한 쪽 눈으로 보며 다른 쪽 눈으로 흘려보낸다. 이제껏 잘 살아왔는데 왜 느닷없이 모든 사람들이 유치찬란한 옷을 입고 테크노를 추며 인터넷에 접속해야하는지 그 누가 답을 해줄 수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얼마전 고소영과 정우성이 함께 한 지오다노 청바지 광고는 독특한 쾌를 주고 있다. 이들은 조금은 흘러간 듯한 청춘스타이다. 그러면서도 정우성의 감수성과 고소영의 당돌함은 아직도 새로운 남성상과 여성상을 대표할 만한 황금분할비의 캐릭터를 이룬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광고 속에서 그들은 무언가 어색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소영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당찬 고소영은 전지현과 이정현의 현란한 테크노 댄스와는 달리 뭔가 주저하며 춤을 추고 때론 수줍게 웃으며 주저앉기도 한다.

정우성 역시 70년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촌스러운 몸짓으로 응답한다. 더군다나 이 둘은 단 한 번도 한 프레임에 등장하지 않는다. 남성들이 모여있는 프레임과 여성들이 모여있는 프레임에서 서로를 갈구하며 눈빛과 몸짓으로만 구애를 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문화현상에서는 크로스 오버, 혹은 내파현상이 더욱 더 힘을 받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 이상 성별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들이 동등한 지위 속에서 어울리는 모습이 이젠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것은 꼭 텔레비전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10대들은 튀는 복장을 하는 것, 혹은 이성교제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수줍음이나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세상살이에는 향수라는 것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문화의 주류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아직 젊기는 하지만 10대 문화에는 적응하기 힘든 20대 중반부터 30대까지의 사람들은 먼 옛날(?)의 학창시절을 기억해본다.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되읊었던 시, 먼발치에서 다가가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던 이웃학교 여학생의 교복 등은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오래 전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Tell me more. Tell me more."를 줄기차게 외치는 광고송 역시 우연히 선택된 것은 아닐 것이다.


지오다노 광고는 70년대의 청춘스타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이 공연한 영화 <그리스>를 패러디한 것이다. 세상이 빨리 변할수록 저 뒷편의 작은 공간에서는 복고풍 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그것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 무언가 저항을 해보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난 니꺼야.", "바꿔" 같은 말을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저런 것들이 내 삶에 무슨 필요가 있어?"라는 불평불만이 나올만한 최첨단 광고들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마저 찾기 힘들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지오다노의 짧은 광고는 저 가깝가도 오래된 기억 속의 그들만의 청춘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30초라 평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각 레코드 사에는 광고 속에 흐르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구태여 노래제목을 알고 싶어했을까? 마치 기억날 듯, 말 듯한 자신의 청춘을 찾아보려는 의도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래서 이 글을 빌려 정보를 주면, 광고 속의 노래는 올리비아 뉴튼 존의 영화 <그리스> 테마곡 'Sommer night'이다.

어느새 지오다노 광고는 브라운관 속에서 사라졌다. 추억과 기억마저 빨라진 세상을 탓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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