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투쟁,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개나리는 그냥 지지 않았습니다

등록 2000.06.15 00:42수정 2000.06.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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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3,4월을 뜨겁게 달구웠던 각 대학의 등록금 투쟁은 여느 해보다 격렬했다. 그러나 국민적 여론까지 끌어냈던 등록금 투쟁도 항상 대학 각 곳에 개나리가 피면 시작했다가 개나리가 지면 끝난다는 이른바 '춘투'라는 한계를 이겨내기는 힘에 버거웠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등록금 투쟁을 이끌었던 학생회들은 학생 대중들의 밑에서의 힘에 버팀받지 못하고 정치적 이용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고, 이번의 투쟁이 교육재정 6% 확보를 요구하는 대정부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학외 집회를 제외한 대부분이 학교 당국을 대상으로 한 등록금 인상률 싸움에 그치고 말았다.

100여 년이 넘은 연세대학교 사상 처음이라는 학생총회와 본관 완전 점거로 인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으나 결국 학생회의 정치적 일정과 대동제라는 것에,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들과 단대 학생회들은 등록금 관련 합의문 하나를 얻어 내고는 본관 점거를 풀고 말았다.

이후 총학생회를 비롯한 연세대 중앙운영위원회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대교육 투쟁'을 계속해서 벌이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마저도 동아리 연합회를 비롯한 일부 민주 납부자들에게 강한 불신을 받고 있다.

총학생회가 본관 점거를 풀고 합의문을 발표하자 연세대 여기 저기에서 이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고 학생회 차원이 아닌 학생들의 다른 움직임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등록금 동결 나아가 폐지를 원하는 학생들 모임과 장애인인권운동동아리 게르니카의 등투 비대위 등이다.

특히 게르니카의 틍투 비대위는 학생회의 고답적인 투쟁방식과는 달리 학생 사회 내의 공공성과 영역 확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장애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게르니카 이지은 양이 대표제적을 결의하는 한편, 학교 당국이 하는 것처럼 돈을 들여 성명서를 인쇄, 발표하고 강의실 마다를 돌며 일반 학우들을 만나는 1:1 운동 방식을 고집하였고, 중앙 도서관 앞에서 각종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일반 학생들을 의식화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에 주력했다.

또한 장애인 부문을 강하게 주장, 합의문에도 장애 학생들과 관련한 사항이 들어 가도록 하여 단대 이상의 학생회 이상만이 발언 할 수 있었던 합의문 요구조건에 유일하게 동아리 단독 요구가 올라가는 이변을 만들었다.

그 요구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장애학생 편의에 관한 사항
(9) '특수학생교육시설관리대책위원회'를 통하여 장애학생 편의시설 확충에 적극 노력하며 본 위원회에 학생대표 2인이 참여한다.
- 차기회의를 6월중 소집한다.
- 장애학생 휴게실 확보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

그러나 합의문의 내용에 따라 6월 8일의 첫 회의는 학교 측의 불성실함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부위원장인 부총장은 외국으로 나갔고 실질적인 주최측이라 할 수 있는 학생처쪽에서도 처장은 금강산 가고, 과장은 출장가고, 하다못해 주임조차 없이 학교측에서는 오직 시설과 직원 두명만 참석해서 회의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반면에 총학생회에서 회장과 부회장이 나름대로 깔끔하게 기획서를 준비해 왔고 게르니카에서는 대표와 휠체어 장애인이 직접 올라 왔건만 학교는 그렇게 거리낌 없이 합의 사항을 어겨 버렸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게르니카에서는 회의할 때 또 다시 '절연한 슬픔'이라는 구절이 등장 했다. 게르니카의 절연한 슬픔이라는 표현은 연세대학교 당국의 장애 학생들에 대한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한 단면이다.

연세대학교는 지난 5월 29일에서 백주년 기념관에서 장애학생 편의시설 기금마련을 위한 예일대학교 심포니 초청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게르니카에서는 이 행사를 두고 찬성할 것인가 등으로 의견이 분분 했으나 여학생처에서 주관하는 이 공연이 대학 내의 장애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다만 이 행사가 단순히 등록금 투쟁 등으로 망가진 학교 이미지 제고나 생색내기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라며 학교 주도로 이루어지는 행사가 자칫 본질이 훼손될까 염려했었다. 그런데 그 염려는 염려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연세대학교가 진정 그랬는지 기자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회의 불참의 학교 당국자의 이유를 누가 타당하다고 볼 것인가?

얼마전에는 이 학교의 한 시각장애인 여대생이 7일 교내 현장체험을 토대로 대학당국에 “목숨을 담보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라는 부제를 단‘장애인 교육권’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전국시각장애인 대학생연합회장인 연세대 민숙희(閔淑喜·22·여·기악3)씨는 최근 3개월간 학교 곳곳을 찾아다니고 관련 법규와 자료를 수집, A4용지 17장 분량의 ‘교육환경 개선제안서’를 작성한 것이다.

민양은 이를 게르니카에 제안, 게르니카 안의 특별기구인 장애학생지원센타에서는 민양의 주도로 소위 숙희 프로젝트를 구상, 이를 이 회의에 상정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 졌다.

한창 총장 선거 분위기인 연세대학교 당국이 합의문을 성실하게 이행할 지는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 96년 당시 노수석 군의 죽음으로 이루어 졌던 합의문도 총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간단히 파기 되고 말았는데 지금도 그와 같은 양상인 것이다.

더군다나 학내 분위기는 대동제 이후 완전 소강 상태이다. 6월 14일에 있은 교육 투쟁 공청회 역시 학생 사회에서의 등록금이나 교육 투쟁의 현주소를 보여 주고 있다. 공청회 역시 준비 미비로 하루가 연기되고 학생회 측의 홍보 부족과 기말 고사 기간 중 진행이 이라는 진행미숙으로 인해 중앙 도서관 앞을 지나는 일반 학생들은 무관심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게르니카 대표인 이지은 양이 공청회에서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따와 보았다.

이지은 질문 :
특수학생 교육시설 툭별대책위원회의 개회가 6월 초로 합의문에 명시되어 있지만 결렬되었고 무기한 연장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후면 방학이고 학교 당국의 인사 이동도 있을 텐데 그렇다면 회의가 재개되리라고 확신을 갖기 어렵다. 또한 6월 초라는 약속이 깨어진 것은 분명 합의문을 불이행한 처사인데 중운위 차원에서는 합의문의 불이행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이행되고 있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중운위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가? 그리고 합의문의 여러조항 중에서 하나의 조항이라도 이행되지 않는다면 분명코 연세인 모두와 논의하여 합의문 파기까지도 결의해야하는 것 아닌가?

부총의 대답:

위원회의 개최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사퇴하겠다. 방학 중에도 계속 회의가 열릴 것이다. 학생회에 대한 그러한 일반 학우들의 불신임이야 말로 등록금 투쟁을 비롯한 학내 투쟁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합의문이 불이행된다면 얼마든지 자신을 비난해달라. 방중에 꼭 열리게 할 것이다. 약속한다.

이에 대해 이지은 양은
"내 질문의 요지는 합의문 작성을 중운위가 했으면 그 이행 여부의 감시도 중운위가 해야되는거 아니냐라는 것이었다. 총학은 분명 우리의 일에 대해서 다른 어떤 중운위보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 성과를 격하하자는게 아니었는데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오히려 나에게 칼이 되돌아 오면서 끝나버렸다."

"난 분명 중운위에게 물은 것이다. 합의문의 작성이 그들의 얘기처럼 연세인들의 의견이 수렴된 것이라면 합의문의 이행과 불이행의 여부는 연세인 모두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학교 측이 합의문을 이행하게 만드는 압력 단체의 구성원은 연세인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동력의 담합을 위해서 중운위가 한일은 고작 오늘과 같은 시험 기간 중에 썰렁한 자보 한장 만으로 우리의 정체를 어렵사리 알아낼 수 있게 한 고난이도의 문제를 연세인이 얼마나 잘 풀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본 것이다".

"내가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다란 생각이 드는가? (기자에게 물었다.기자는 대답을 못하는 사이 ) 물론 내가 이 토론회의 준비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으면서 이런 비판을 하는건 옳지 않다란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최소한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공청회가 열린다라는 광고는 했다. 그리고 함께 가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노력도 했다."

그리고 이지은 후배는 끝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생회는 등투의 부활을 꿈꾸는 척 하기에 바쁜 집단인 것 같다. 등록금 투쟁이냐, 교육투쟁이냐라는 논의에 앞서 어떤 식의 운동이던지 끝가지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솔직한 학생회의 모습이 너무 보고 싶다. 대학교 2학년... 등투는 너무 많은 학생 사회의 단면을 한꺼번에 보여준 답답한 현실이었다."

휴 하는 긴 한숨과 함께 그래도 다시 학교하고 투쟁을 해보아야지요 하며 쓴 웃음을 짓은 어린 후배... 이제 졸업을 앞둔 기자의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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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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