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평생을 통일에 바친 한 통일꾼의 또다른 출발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결혼

등록 2000.06.30 08:35수정 2000.06.3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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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 회담 이후 비전향 장기수 북송(北送)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한 비전향 장기수가 3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고 결혼을 하기로 해 화제다.

그 주인공은 43년을 감옥에서 지낸 비전향 장기수 출신 안학섭(安學燮·70·서울 관악구 봉천6동 우리탕제원)씨.안씨는 오는 7월 1일 피아노 강사인 이지연씨(40)와 늦깎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이는 지난 1월 함께 생활하는 양희철 씨(65)의 역시 30년의 나이를 뛰어넘는 화제속의 결혼에 이어 두 번째다.

안씨와 이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98년 7월쯤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이씨는 지난 97년말 과로로 양쪽 팔 인대가 늘어나 팔을 못쓸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받은 수술도 별 차도가 없었다. 이때 안씨를 소개받고 두 차례에 걸쳐 지압치료를 받은 뒤 거짓말처럼 팔이 낫게 됐다. 안씨가 감옥에서 자신의 몸에 3,000번 이상 시침(施鍼)하는 등 침술과 지압을 익힌 덕이다.

이씨는 그뒤 두 달여동안 지압 치료와 함께 안씨의 굳은 신념과 사회와 세상에 대한 가치관도 배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씨는 ‘생명의 은인 안 선생님’에 대해 감사함과 존경심을 넘어 연심(戀心)이 싹트기 시작했다.

안씨는 지난 52년 한국전쟁 중 전쟁포로로 붙잡혔으나 간첩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만 43년의 옥고를 치른 뒤 95년 출소했다. 이는 44년을 복역한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金善明·76) 씨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수감 기간이다.

감옥안에서 40여년의 시간동안 한시도 끊이지 않는 전향 공작은 차라리 죽음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참혹한 일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구타와 고문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재촉이었다. 하지만 안씨는 이러한 동물적인 폭압앞에서도 잔병치레 한 번 없을 만큼 강골(强骨)이었으며 지금도 나이에 비해 훨씬 건강하다.


안씨는 이씨에 대해 “이른바 운동권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먼저 돌볼 줄 아는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다”면서 연신 칭찬에 바빴다. 사실 이번 결혼도 이씨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씨에 반해 이뤄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만큼 주변 사람들도 두 사람의 나이차에 대한 걱정보다는 ‘숫총각과 숫처녀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보며 열렬히 축하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안씨의 북송 문제가 남아 있다. 안씨는 현재 북송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북송을 원하고 있다.


이씨는 안씨가 북송되는 것도 감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안씨가 북으로 가면 이들은 이산가족이 되고 만다. 이는 지난해 출소했으나 남에는 90세의 노모, 북에는 처자식을 둔 신인영 씨(72)에게도 마찬가지다. 남북 어디든 한 곳에만 머무른다면 평생 이산(離散)의 한을 가슴에 둘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안씨는 “북송은 인도주의적인 일이지만 선심쓰듯 ‘보내버리는’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우선 비전향 장기수부터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해야할 것”이라면서 평생을 바친 통일운동과 어렵게 얻은 사랑을 함께 지켜낼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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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꿈꾸면서 졸리면 책 보고, 책 보고 싶으면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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