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각 신문들에서는 우리 나라의 단기외채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들을 타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기 외채 증가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단기 외채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조금 틀린 측면이 있다. 단기부채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순기능적인 측면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단기 외채가 들어오면 앞으로 상환압력이 거세어질 경우 급격한 외국인 자금 유출과 함께 다시 제2의 외환위기가 도래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들로서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외채증가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사실 공염불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단기 외채의 순기능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1년미만의 단기 외채는 금리가 상환기한이 1년이상인 장기 외채 에 비해 훨씬 금리가 낮다.
그 이유는 채권의 이자율 결정시 여러 가지 위험을 상정하여 결정하게 되는데 그중 장기 외채는 물가상승으로 인해 채권 실질 수익률이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위험'이나 시장 이자율이 변동함에 따라 채권수익률이 변동하는 '이자율 변동위험', 장기간 채권을 매각하지 못하여 그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업는 '유동성위험' 등의 리스크를 채권단에서 안게 된다.
그러므로 채권단에선 여러 가지 위험을 떠맡게 되는 장기외채를 기피하고 쉽게 회수할 수 있고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단기 외채를 선호하게 된다.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도 가능하면 낮은 금리의 단기외채로 돈을 빌려 쓰는 게 금융비용부담을 줄일 수 있고 그들에겐 세전순이익을 크게 해주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기업들은 단기외채를 선호하게 된다.
둘째, 기업들이 흑자가 나서 돈을 갚을 여유가 있을 때 단기 외채는 단시간에 갚아버려 재무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 외채의 경우 수의상환 계약(채권 만기 이전에 채권을 매입하여 소각할 수 있는 권리)을 하지 않는한 계속 필요없는 이자를 물어야 하고 또한 수의상환 계약을 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계약 때문에 훨씬 많은 이자비용의 지출이 불가피하다. 즉 기업이 흑자를 낸다고 했을 경우에는 장기외채는 오히려 해가 되는 셈이다.
셋째, 대부분의 단기 외채는 신용도가 높으면 만기가 연장된다.
간단히 국내 채권 시장을 들어 이야기해보자면 현대 건설 사태에서 현대가 제2금융권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와 어음을 돌리고 대출연장을 해주지 않음으로써 결국 채권단의 원조를 받아서 겨우 부도를 면하였다. 그런데 만기가 될 줄 알면서도 돈을 확보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심을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출의 경우 얼마간 쓰겠다는 계약을 채권단과 기업이 체결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용이 높을 경우에는 그 대출이 계속 연장되어진다. 또한 기업들이 여러 가지 매출을 하여도 돈을 당장 받지 못하는 미수금으로 인해 현금흐름상 적자가 날 수가 있으므로 대출을 통하여 당좌차월 계약과 함께 새로운 사업이나 원자재 구입등에 대출금을 사용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용이 떨어질때에는 이 문제는 달라진다.
이번 현대사태때 한국기업평가가 현대건설의 회사채를 투자부적격 등급인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리자 각 금융권은 일제히 자금회수에 들어갔다. 채무불이행 위험이 너무나 크고 또한 금융권의 BIS비율에서 투기등급 채권은 충당금(위험에 대비해 재무제표상 미리 손실을 계상하는 것)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용도에 영향을 받는 채권단으로선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 경우 기업들이 대출연장이 되지 않으면 현금흐름상 그들은 적자를 메울 수가 없게 되므로 돌아오는 어음등을 결제하지 못하고 결국 부도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흑자도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현대 건설은 현재 이라크 공사대금 10억달러가 미수금으로 자산에 잡혀있지만 그 채권이 회수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희박하다.
또한 건설업의 특징상 증권등과 같이 당장 팔수 있는 유동자산이 적기 때문에 그들이 흑자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그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정부가 신용평가사들을 동원해 현대를 압박했다는 음모론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이므로 뭐라고 답을 내리긴 어렵다.
외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높다면 우리가 굳이 요청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자금을 운용해서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대출연장을 해준다. 일반적으로 신용도가 높을 경우 대출연장은 거의 100%에 가깝다. 실제 이탈리아의 경우 단기외채가 90%이상에 달하지만 그들에 대하여 단기 외채가 많기 때문에 위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지금 40%도 안되는 단기외채와 OECD국가중 2위에 해당하는 7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만약 국제적인 신용평가사들인 무디스, S&P 등이 우리 나라나 기업들의 신용도를 하향평가할 경우 자칫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정부가 불안해하는 것이다.
실제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신용도가 투자등급 한단계 위인 Baa2 이며 대표적인 우량업체인 포철이 Baa3 Positive 전망으로 국가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에 그치고 있고 국민,주택,신한은행등도 Baa3 에 그치고 있어 자금조달이 쉽지 않상태이다.
만약 이들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외환 조달길은 막히고 만다. 투기등급채권에는 원칙적으로 투자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imf이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신용도가 개발도상국중 최고인 A등급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외화차입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200%안으로 부채비율을 감축하라고 하는 강요하는 이유도 부채비율이 높아짐으로 인해서 레버리지가 커지게 됨에 따라 재무위험이 커지게 되어 신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국가 경제적으로 볼때는 그것은 당연한 요구이다.
하지만 기업들이나 은행들의 경우엔 가능하면 가능하면 부채를 그것도 단기부채를 많이 쓰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배당금등의 자기자본비용이 빌려오는 타인자본비용보다 훨씬 비싸고 더군다나 단기부채는 조달비용이 싸고 또한 기업을 소유한 이들은 자본에 참여한 다른 이들의 경영간섭없이 적은 돈으로 기업을 운용할 수 있을 뿐아니라 자본이 많은 경우보다 주당 순이익을 많이 낼 수 있어 주주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대체로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채 200%비율을 강조하는 정부와 기업간에 충돌이 잦게 되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도 대부분이 400%~500%대의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부채보다는 순익과 성장성을 보기 때문에 커다란 위협조건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족벌체제가 구축되어 있고 능력없는 경영진들이 경영을 맡는등의 외적조건으로 그 기업의 실상과는 관계없이 그 기업의 신용도가 저평가되어 위기를 맞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 경우에도 이에 속할 것이다.
결국 단기 외채의 규모보다는 신용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되겠다. 신용도가 높다면 사실 외채문제가 나올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기외채의 비율에만 너무 개의치말고 좀더 국가와 기업의 신용도를 높일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정책과 믿을 수 있는 경영진의 확보등에 힘쓰는 것이 외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