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과 승무원 118명 전원의 사망이 세계에 던지는 화두는 세계적인 군축의 절박성이다. 여기에 핵 방사능 유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사망한 가족들의 슬픔은 푸틴 정권에 대한 분노로 치닫고 있다.
쿠르스크호 침몰은 군사훈련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로 러시아 당국이 사고가 일어나고 4일동안 구조작업에 돌입하지 않은 것과 처음에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 유가족들과 세계언론의 비난을 산 것이다. 러시아 당국의 이같은 태도는 군 기밀 보호와 러시아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푸틴정권의 옹졸한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러시아 당국의 이같은 태도의 근본적 배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현재 벨기에 정도의 경제력으로 과거 미국과 경쟁하던 소련의 위상을 찾기 위한 과욕이 이같은 참사를 불러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주장하였고 이를 위해 해군력의 강화를 강조하였다.
결국 탈냉전시대에도 강대국들의 군비경쟁은 약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미 의회조사국이 의회에 제출한 99년 강대국의 무기수출 현황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본 기자의 '미국 지난해 세계최대 무기수출국 오명' 기사 참조).
쿠르스크호 참사는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것으로 이해되며 따라서 이같은 일은 비단 러시아만이 아니라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재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쿠르스크호 참사는 오늘날 세계에 군비 감축을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오늘자 사설에서 이같은 점을 강조하였다.
이 신문의 사설은 쿠르스크호 참사는 러시아 당국의 관료주의와 기밀주의가 빚어낸 인명 참사라고 논평하고, 늦게나마 영국, 노르웨이 등 국제사회가 구조작업에 참여한 정신을 군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사히신문>은 또 과거 소련시대보다 오늘날 러시아의 언론은 많은 자유를 갖게되어 이번 사건의 전달과 정부 비판에 기여하였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푸틴정권과 군 당국의 안이한 사건 대처를 비판한 것에 주목하였다.
이 신문은 러시아의 건강성 회복은 군사정책의 전환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 과거 소련시절과 같은 핵무기기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핵 함수함 보유의 과욕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하기에 곤란한 경제적 형편에 놓여있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경제회복을 핵심으로 하는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도 군축은 절실하며 이는 세계평화와 부합하는 일이다.
러시아는 현재 미국이 국가미사일방어(NMD) 추진 과정에서 탄도미사일제한(ABM) 협정이 파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대선에서 공화당이 집권하여 이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러시아가 실제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푸틴 대통령은 ABM 협정의 준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푸틴은 기존의 핵 무기와 핵 함수함 등을 유지하고자 하는 유혹을 완전히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푸틴이 유럽과 아시아를 순방하며 미국의 반NMD 외교를 벌일 때 많은 국가들이 지지를 보낸 것은 그의 주장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현재 러시아 당국은 이번에 침몰한 쿠르스크호의 인양작업에 필요한 기술적, 재정적 능력이 부족하여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한 상태이다. <아사히신문>은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이 이를 전환하여 군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며 군축노력이 동북아에도 적용되어 남북관계 개선이 동북아의 긴장완화 분위기와 연동되어 한반도의 통일 과정과 동북아의 평화정착이 함께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쿠르스크호 사건에서 러시아 언론이 보여준 것처럼 언론과 시민단체 등 민간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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