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정치인, 탈법선거의 '방패'가 아닌 '창'이 되라

민주당 윤철상 의원 발언 파문을 보며

등록 2000.08.27 16:36수정 2000.08.2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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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윤철상 의원의 발언 한마디로 민주당이 뒤집혔다.

마침내 터질 게 터진 것이다. 몇 달 전 4·13총선이 치러질 때 나는 집권여당에 의한 타락선거의 실상을 이곳 저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등산여행, 갈비파티가 곳곳에서 목격되고 동책(洞責)들에게 돈이 건네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또한 이어졌다.

그런 일들을 선관위에 고발해도 증거 부족같은 이유로 흐지부지되고 만다는 야당측의 항변도 따라다녔다. 물론 야당이라고 해서 법대로 선거를 치렀겠느냐는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집권당 총재가 정치개혁을 외쳤던 그 무렵, 정작 선거 현장에서는 여당 후보들의 돈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 시비는 처음이 아니었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 치러진 여러 재·보궐선거들이 집권당의 돈선거로 얼룩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돈선거 추문이 터져나왔을 때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환부를 도려냈어야 했다. 그렇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집권당 자신이 돈선거의 업보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명색이 집권당의 사무부총장이 의원들을 앉혀놓고 실없는 소리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집권당 의원총회가 어떤 자리라고 근거없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겠는가. 흥분해서 다소의 과장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윤철상 의원은 대부분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것이다. 이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는다. 집권당의 선거 실무 책임자가 지구당 회계 책임자들을 모아놓고 탈법 교육을 시켰다거나, 집권당의 힘을 써서 의원 10명의 기소를 막아냈다는 이야기에 놀라지 않는다. 이제까지 그래온 것 아닌가. 새삼스럽게 놀라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여당 의원들의 반응 또한 그렇지 않은가. 그같은 천기를 누설한 사람의 실수만을 탓할 뿐, 탈법교육을 시켰다거나 집권당의 힘으로 소속 의원들을 구해냈다는 이야기에는 아무도 놀라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정작 내가 놀라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그날 의원총회에서 송영길 의원이 했다는 말이 그것이다. 386세대를 대표한다던 송 의원은 소속 의원 12명이 고발·수사의뢰 당하는 것을 막지 못한 지도부의 무능을 소리 높여 질타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386 정치'의 끝을 보는 느낌이다. 어떻게 막아줘야 했다는 말인가. 이미 10명의 기소를 막아낸 것도 모자라, 12명을 더해 모두 22명의 기소를 막아내야 했단 말인가.

탈법 타락 선거를 추방하는 데 앞장서도 시원치 않을 사람들이, 그에 대한 법적 심판을 막아내라고 아우성치는 모습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이 꼴을 보려고 우리는 '386 정치인'들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왔던 것인가.

국회법 날치기 때도, 이한동 총리 인준 때도 침묵을 지키다가, 자신들의 문제가 걸리니 비로소 당 지도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부터가 나는 서글프다.

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집권 민주당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럴 정당이라면 재·보궐선거 당시 돈선거 추문이 터져나왔을 때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정략적 사고만이 있을 뿐, 우리 정치의 내일같은 것은 관심밖인 것이 우리 집권당의 모습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386 정치인'들의 환골탈태만은 촉구하고 싶다. 그것은 그래도 마지막 남은 한가닥 미련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송영길 의원의 처신은 개인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책임은 '386 정치인'들 공동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구(舊)정치를 개혁하려고 정치를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구정치에 가담하여 입신양명의 꿈을 달성하려 정치를 시작한 것인가. 이제는 대답을 해도 될 때가 된 것 아닌가.

12명의 의원들을 법망(法網)으로부터 막아주지 못한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미 막아준 10명의 의원들이 누구인가를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아울러 어떠한 방법을 통해 막아냈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지금 '386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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