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엄마에게 돌을 던지랴?

'10개월 아기 제초제 먹여 살해' 어머니 인터뷰

등록 2000.08.31 14:55수정 2000.09.2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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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배기 아들 운다고 엄마가 제초제 살해', '무서운 엄마, 아기 운다고 제초제 먹여 살해'. 지난 8월 27일 일부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단신 기사가 실렸다.

무서운 엄마, 아기 운다고 제초제 먹여 살해

경기 평택경찰서는 27일 생후 10개월된 자신의 아이가 울며 보챈다는 이유로 제초제를 먹여 숨지게 한 김모씨(27.여.평택시 서정동)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26일 오후 10시께 자신의 집에서 아들이 감기 기운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울며 보채자 농사용으로 집안에 보관해 온 제초제 50㎖를 먹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씨와 남편(37)이 직업이 없어 생활고를 겪어왔고 김씨가 평소 "직업을 구하려면 아이가 없어야 한다"고 이웃들에게 말해온 점 등으로 미뤄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28일 사회면을 장식했던 '무서운 엄마' 기사 ⓒ 한국일보 8월 28일 자
이 기사를 본 독자들이라면 십중팔구 인륜을 거역한 '비정한 엄마'에게 치를 떨었을 것이다. 더욱이 '제초제 살해 사건'은 하루 전에 발생한 '아빠가 낳은 지 두 달된 아기에게 리모콘을 집어던져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사건'과 맞물려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신문에 실린 '제초제 살해 사건'의 요지는 '27세의 젊은 엄마가 10개월된 아기가 운다고 제초제를 먹여 살해했다' '그동안 생활고를 겪어 왔기 때문에 (생활을 비관한) 계획적인 범행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길래 아기를 살해했을까.'
'아무리 비정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기가 울며 보챈다고 제초제를 먹여 죽일 수 있을까.'

이 사건의 배경과 전말이 궁금했다. 비정한 엄마에게 돌을 던질 때 던지더라도, 이성적인 판단이 배제된 맹목적인 '돌팔매질'이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제초제 살해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 보기로 했다.


담당 형사, "피의자인 김씨에게 연민을 느낀다"

8월 28일 오후 4시 30분, '제초제 살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기도 평택경찰서를 찾았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박광규 경사(형사계)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사건"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10년 동안 경찰 생활을 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범죄자에게 깊은 동정과 연민을 느낀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박 경사는 사건 조서를 작성하면서, 김씨가 초등학교 때부터 계모 밑에서 '콩쥐' 취급을 받으며 어렵게 자랐고, 내성적이면서 말수가 적은 데다 지능이 초등학생 수준 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김씨 주변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김씨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그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92년도에는 경기도 송탄시 은혜여고 산업체 야간반을 졸업했다. 22세 때 12년 연상인 현재의 남편 안아무개 씨(39)를 중매로 만나 94년 결혼했다. 그리고 95년에 큰 아이를 낳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마음이 후덕한 시어머니와 착한 남편, 부족하지는 않은 살림으로 큰 걱정거리는 없었다.

97년에 낳은 둘째 애를 그 이듬해 심장병으로 잃으면서 그녀의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꼴로, 조그만 목장을 운영하던 남편이 췌장암에 걸려 치료비로 살림이 기울었다. 결국 목장을 팔아야만 했고, 갖고 있던 재산도 바닥이 난다. 그런데다 남편은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직업을 얻지 못했다. 시어머니 김아무개 씨(62)가 공장 일을 하면서 받는 월 60만원으로 다섯 식구의 살림을 꾸려 가야만 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셋째 아이를 낳았다.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셋째 아이를 낳은 뒤에는 작은 텃밭에 나가 밭을 일구기조차 힘들어졌다. 지난 8월 28일 제초제를 먹고 숨진 아이가 바로 이 셋째였다.

"너, 농약 먹이면 애가 죽는지 알았어 몰랐어, 응?" "몰랐어."

셋째 아이가 숨졌던 당시 상황은 이렇다.

8월 26일 오후 8시 김씨의 남편 안씨는 일찍 잠이 들었다.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깨 보니 김씨가 농약을 쥬스병에 담아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 옆방에 자고 있던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불러 아이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제초제를 먹은 아이는 8월 27일 오전 7시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 정황에서 유추해 보면, 김씨는 둘째 아이를 잃은 충격과 남편의 병고, 극도의 생활고 등을 겪으며 우발적으로 아이를 죽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그렇다고 자기 배 아파가며 낳은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김씨를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8월 28일 오후 6시 평택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김씨의 면회를 신청했다. 굳게 닫힌 창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겁먹은 표정이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김씨는 말없이 손에 들고 있는 휴지 조각을 찢고 있었다. 면회실 수화기를 들었으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때마침 그녀를 면회하러 온 옆집 아주머니 윤효숙 씨(49)가 나타나자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영진이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어 알아, 죽었데." 그녀는 머리를 벽에 댔다. 그녀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누구를 제일 보고 싶어."
"영진이..."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너, 그런 못된 짓 하면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는지 알아. 왜 그랬어. 왜..."
"......"

"너, 농약 먹이면 애가 죽는지 알았어 몰랐어, 응?"
"몰랐어."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조서에는 그녀가 아이를 죽일 목적에 농약을 먹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

"너, 이제 영진이 아빠 어떻게 볼래. 영진이 아빠가 뭐라고 하겠어."
"영진이 아빠 언제 와. 보고 싶어."

"기분은 어때. 괜찮아?"
"답답해."

윤씨 아주머니의 질문에 김씨는 간단하게 답변했다. "초등학생 수준의 지능을 지닌" 김씨가 사건 당일, 자신이 벌인 - 제초제를 먹인 - 일이 아이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인가? 어쨌든 김씨와 이성적인 얘기를 나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며느리가 죄 값을 치르고 돌아오면 다시 받아들이겠다"

8월 29일 오전 10시. 김씨 집으로 갔다.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김씨의 집에는 시어머니와 그녀의 큰 아들 영범이가 함께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 착하디 착한 아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그녀의 시어머니는 아직도 손자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며느리가 머리는 모자라지만 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가 죄값을 치르고 돌아온다면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씨를 며느리로 삼은 것은 6년 전. 시어머니는 지금까지 밥상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김씨는 웃어른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아기를 죽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 면회를 다녀온 이웃집 아주머니 윤효숙 씨는 "정말 미련할 정도로 착해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답답할 정도였죠. 너무 순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도 많이 얻었어요"라고 말했다. 면회를 다녀온 것도 "사람이 워낙 모자라 경찰이 시키는 대로 진술하지 않았을까 해서 사실을 알아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막상 김씨가 아이를 죽였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단다.

마을 사람들은 김씨가 지능이 낮아 상황 판단력은 떨어지지만, 자기 아기를 죽일 정도로 모진 사람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최소한 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계획적인 살해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교인 은혜여고를 찾아갔다.

"지능이 낮아 공부란 것이 전혀 불가능한 아이였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이명희 선생님(40)은 "김씨가 지능은 낮았지만 순진하고 조용한 성격의 학생이었다"고 기억한다. 수학능력이 뒤떨어진 김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체 야간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0개월된 자신의 아기에게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엄마 김씨. 신문 기사를 본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비정한 엄마'로 기억될 것이다.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김씨는 '비정한 엄마'이기 이전에 상황 판단력이 매우 부족한 '모자란 엄마'였고, 둘째 아이의 죽음과 남편의 병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빈민'이었다. 그녀가 아기를 살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김씨를 살인자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번 '제초제 살인 사건'은 사건 직후 보도된 몇 줄의 신문 기사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가 저지른 죄와, 그녀가 죄를 저지른 이유를 함께 들여다보지 않고, 그녀에게 맹목적인 돌팔매질을 한다면 우리 또한 '비정한 사회'의 일원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현재 수사 상황> 9월 1일 오전 10시

김씨는 9월 1일 오전 9시 30분 평택 경찰서 유치장에서 평택지청(담당 검사 서영민)으로 송치되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김씨 사건은 20일 이내에 검사의 기소가 이루어 질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한편 주민들은 "김씨의 사정상 부실한 국선 변호사 선임이 불가피 하게 됐다"며 "변호사 선임을 위해 주민들의 쌈지돈을 모아볼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덧붙이는 글 <현재 수사 상황> 9월 1일 오전 10시

김씨는 9월 1일 오전 9시 30분 평택 경찰서 유치장에서 평택지청(담당 검사 서영민)으로 송치되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김씨 사건은 20일 이내에 검사의 기소가 이루어 질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한편 주민들은 "김씨의 사정상 부실한 국선 변호사 선임이 불가피 하게 됐다"며 "변호사 선임을 위해 주민들의 쌈지돈을 모아볼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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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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