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1세기에도 10만명의 미군을 아시아에 계속 주둔시킨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특히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중-일간의 지역 패권주의 추구를 예방할 필요성이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세력균형이 무너지고 중국과 일본간의 패권경쟁은 필연적인 것일까?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동북아 협력 안보는 불가능한 것일까?
주한미군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진행해온 릴레이식 심층인터뷰에서는 위와 같은 의문을 풀어보고자 동북아 국제관계 전문가인 외교안보연구원의 서동만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인터뷰 전문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에서 볼 수 있다.
- 일본은 한국의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한미군이 철수, 혹은 감축할 경우 주일미군의 지위 역시 불안해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주한미군의 현상 변화가 올 경우 주일미군의 변화가 올 가능성은 많다. 기본적으로 오키나와 미군은 한반도를 상정한 것이기 때문에 남북한의 화해와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루어질 경우 주일미군의 감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95년 오키나와 소녀 강간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서도 해병대 철수론이 제기된 바 있다. 해병대는 상당한 기동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오키나와에 주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상시 주둔 없는 동맹체제를 당론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주일미군의 현상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논의는 진행 중이다."
- 변화의 방향에 있어서 주일미군의 감축 가능성과 함께 주한미군의 감축, 혹은 철수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일미군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일미군은 지역적 차원의 세력 균형자 역할을 상정하고 있으나 직접적인 위협으로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미일동맹의 지역동맹의 차원으로 변화하고 중국을 목표로 상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변화는 예상할 수 있으나 그 방향이 주일미군의 증강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미국이 주한미군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전략의 변화는 동아시아 전략 전체의 변화와 직결되기 때문에 현상 변경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 미일동맹체제가 강화되면서 한국이 미일동맹의 하위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건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한미일 '공조' 체계를 '동맹'으로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미동맹이 중국을 겨냥한 지역동맹으로 확대되면 한국군이 중국군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데, 이건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 미국은 21세기 사실상의 주적으로 중국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미관계를 감안할 때 한미동맹이 중국을 겨냥한 지역동맹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한다는 것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 변경 없이 통일 이후에도 주둔한다는 것은 냉전체제의 연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에 대한 언급 없이 단순히 주둔만을 얘기했다고 해서 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위와 성격의 변화 없이 통일 이후에도 주둔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변화에 대한 전망은?
"단순히 성격변화만 얘기할 수는 없고, 결국 중국까지 포함한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의 틀 속에서 논의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구체적인 변화에 대한 전망은 아직 내리기 어렵다.
특히 남북관계가 계속 진전되고 북미, 북일 수교가 이루어질 경우 주한미군의 지위와 성격에 대한 논의는 불가피하다. 현재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 만큼 북한의 위협에 일정한 변화가 오면 주한미군의 변화 역시 공론화될 수밖에 없다."
- 머지 않아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은 여러 각도에서 이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얘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주한미군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형태를 말하기는 어려우나 동북아의 평화유지자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이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는 작전지휘권 문제와 직결되는데, 전시 작전권 환수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작전지휘권 환수는 일정한 시점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과의 대등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군사적 신뢰구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작전권 환수는 남북한의 군사적 대립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은 하지 않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군사력에서도 북한을 앞서고 있고, 국민들의 안보관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작전권 환수의 필요성과 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일본문제로 넘어가겠다. 주일미군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어떤가?
"편차가 크다. 평화주의적 입장이 있고 극우도 있고. 그러나 보수와 평화주의 사이에 일정한 접근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평화주의 입장에서도 현실론의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극우가 강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주일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독자적인 재무장이나 군국주의 부활을 겨냥한 주일미군 철수론도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다만 일본 정치 전반에 보수화 흐름이 확대되고 과거사 청산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노골화되는 등 우려할 만한 점도 없지 않다. 일본이 이른바 '보통국가'라는 방향으로 가는 추세는 불가피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사 청산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 주일미군의 주된 역할 중에 하나가 일본의 재무장 방지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군사력은 지속적으로 증강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어느 선까지 방치할 것으로 보는가?
"탈냉전 이후 미국은 일본의 독자적 역할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미일동맹의 틀 안에 가둬 두려고 해왔다. 동맹체제 내에서 용인할 부분은 받아들이고 견제할 부분을 견제하는 방식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은 핵, 장거리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개발할 기술적, 경제적 능력을 다 갖추고 있는데, 미국은 이를 계속 견제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개헌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 자위대가 합헌적인 존재가 되고 유사법제화가 시작되고 집단적 자위권이 인정되면 일본의 재무장과 미일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 평화헌법의 개헌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는데, 개헌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의회 내 헌법조사위에서 5년 동안 심의하여 의견을 내놓으면 개정 여부를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의회 내에서 개헌파들이 많아 문제이다. 자위대의 합헌화,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가장 큰 논란거리이다."
- 한미정부와 대다수 언론 및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중국과 일본의 지역 패권 및 군비 경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지역패권에 대한 우려가 과연 타당한가'를 근본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이 반드시 적대적인 관계가 놓인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한일간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점차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듯이 중일관계도 긍정적으로 진전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이 빠지면 중일간의 패권경쟁이 일고 동북아가 불안해진다는 것은 미국이 만들어낸 일종의 '신화'이다.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동북아 국가들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협력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문제 역시 이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협력관계가 진전되고 일방적인 안보가 아닌 협력적 안보가 자리 잡아가면 주한미군문제도 긍정적으로 풀릴 것으로 보인다."
- 현재와 같은 군비경쟁 구도에서 군축은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데, 군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은 민간 분야에서 군사문제에 대한 독자적인 정보력과 판단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군축의 필요성은 있지만 이를 제기할 수 있는 시민적인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화'이다. 이전에는 '누가 민주주의를 하느냐' 즉 민주주의의 주체의 문제가 중요했지만 탈냉전이후에는 '민주주의를 어디에서 하느냐'라는 분야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공적인 영역은 선거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많이 민주화되었으나 군사 분야는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정보나 시민적인 통제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 많은 국민들은 일본의 재무장을 견제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군축에 대한 전망도 밝아지고 있는 반면에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력 강화는 군축의 또 다른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점에서 과거사 청산은 대단히 중요하다. 유럽의 예를 보더라도 독일의 과거사 청산이 독일통일은 물론이고 유럽통합의 대전제였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동안보나 통합을 이루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준 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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