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JSA 요원들의 군 생활

널문리 주막의 남북술판이여, 다시 오라!

등록 2000.10.03 21:00수정 2000.10.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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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허구이다. 사실이 아닌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인협회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인해 명예가 실추되었다며 사실이 아닌 허구임을 자막에 넣어달라는 JSA 전우회의 요구에 대해 동어반복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사실 JSA 전우회가 전제로 하는 냉전적 가치관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화해분위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남과 북의 군인들이 서로 어울려 노는 것을 '그럴 수도 있다' 내지는 '그런 모습으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제작사를 찾아가 물의를 일으킨 JSA 전우회의 행동은 무의미했다. 아무도 JSA 요원들이 근무를 잘 서고 있는지 아닌지를 문제시하지 않았는데, 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창작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난만 샀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JSA 전우회의 행동이 비난받을 것이었다고 할 지라도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영화가 허구라지만 헐리웃 영화에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이 나오면 우리도 분개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모습과 실재 JSA 요원의 모습에 어느 정도 간극이 있는지 비교하기 위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비를 맡고 있는 유엔사 경비대대에 대해 알아보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방문은 적대지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며, 적의 행동의 직접적인 결과로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엔군 및 미합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은 방문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만일 적의 적대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방문자 선언서- 유엔사 규정 551-5)

판문점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방문자 선언서에 서명해야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항상 긴장이 감도는 판문점. 유엔사 경비대대(UNCSB, United Nations Command Security Batallion) 소속 JSA(Joint Security Area) 요원들은 바로 그곳에서 북한군을 마주 대하며 근무하는 사병들이다. 언제든지 허리에 찬 총을 빼서 쏠 수 있는 자세로 대치한 JSA 요원과 북한군 사이에는 단지 너비 50cm, 높이 5cm의 시멘트 블록이 있을 뿐이다.


전쟁이 나면 1제곱미터 당 폭탄 하나씩이 떨어져 3분 이내에 전원 몰사한다는 판문점. 직경 800m, 면적 약 15만평인 공간에서 선 하나를 놓고 적과 대치하는 생활은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서 JSA 요원들의 삶이 조금 알려지기는 했지만 실제 이들의 군 생활은 영화보다 더 극적인 데가 있다.

선택된 군인, 그러나 선택되지 않은 고통


훈련소에서 JSA 요원을 차출할 때에는 주로 신체조건을 본다. 180cm이상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훈련병을 뽑아 신원조회를 거친 후 선발하는데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도군번'이라고 해서 무술 유단자들을 주로 선발했다.

JSA 요원 선발은 원칙이 있다. 모든 보직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주특기를 가지고 군대에 들어왔건 간에 JSA 요원으로 뽑히면 무조건 JSA 요원이 되어야 한다.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친 정예요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해서 JSA 요원들은 자신들을 '사병'이 아닌 '요원'으로 불러줄 것을 요구한다. (이상은 경비중대의 선발방식이다. 본부중대의 경우 키가 큰 카투사 사병 중에 뽑게 되는데 여기에 뽑혀가지 않으려는 카투사들의 몸부림이 처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JSA 요원으로 선발되면 카투사 교육대(KTA)에서 3주간 미육군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훈련을 마치면 판문점 남방한계선 바로 밑에 있는 캠프 보니파스로 가게 되는데 캠프에 오면 신병들은 건물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위축되고 만다. 대부분의 시설들이 북한군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보니파스라는 캠프 이름도 1976년 판문점 도끼살해사건으로 사망한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앤더슨 막사(Anderson barracks), 배럿 막사(Barret Facility), 볼린저 홀(Ballinger Hall) 도 모두 희생자들의 이름을 붙인 건물이다.

그것들 중에는 한국군 JSA 요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설도 있다. 경비중대 2소대가 사용하는 장명기 막사는 1984년 소련 관광객이 귀순할 때 북한군과의 총격전 과정에서 죽은 장명기 상병의 이름을 기린 것이다. 이외에도 한국군 JSA 요원의 이름을 딴 시설은 여러 곳 더 있다. 60∼70년대에 판문점은 남북 긴장의 최전선으로 사고가 잇따랐다.(이런 까닭에 "아차 실수하는 순간 캠프 보니파스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다"라는 고참사병의 으름장에 신병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신병이 오면 보통 3주 정도의 대기시간을 갖는데 이 기간에 신병은 항상 상방 15도로 시선을 고정하고 부동자세로 있어야 한다. 눈동자를 움직여서도 안 된다. 열심히 군화광을 내고 군복을 반듯하게 다리는 것 외에 이 기간에 신병이 해야할 일은 바로 고참사병 리스트, 부대규정(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 교전수칙 (ROE, rules of engagement) 따위를 외우는 일이다.

수십 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외워서 부대원 전체가 모인 신고식 자리에서 암송해야 한다.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심한 얼차려가 뒤따른다. JSA 전우회 이청근 총무는 신병 대기기간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매일 밤 고참에게 얼차려를 받으면서 외웠다. 얼마나 긴장해서 외웠던지 제대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때 외웠던 내용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JSA 이러한 신고식 전통은 미군부대내의 다른 카투사들에게도 전파되었으며 미군들이 이를 따라하기까지 했다.(1992년까지는 경비중대에 미군이 함께 근무했었다) JSA 전우회 정성협 회장은 "미군들도 신병을 논바닥을 구르게 하고 얼음물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신병길들이기를 했다. 기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그런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참고로 JSA는 한국군이 미군을 갈구는 부대로도 유명했다. "태권도 교육시간에 대련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때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눈에 거슬리는 '양놈'이 보이면 그때그때 손을 봐주곤 했다"라는 것이 JSA 전우회의 설명이다. 구타사고가 나면 JSA 요원이 영창을 가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미군은 영창에 가는 것을 감옥에 가는 것 정도로 크게 생각했기 때문에 영창에 보내면 무마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영창에 다녀와도 여전히 매서운 눈빛에 미군들은 주눅들기 일쑤였다.

지금도 JSA 요원들이 꼽는 적 순위는 1위 미군, 2위 장교, 3위 북한군으로 미군이 제일 먼저이다. 그러나 JSA에서 미군이라는 말은 들어 볼 수가 없다. 전부 '양놈'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장교가 2위로 꼽히는 이유는 사병과 장교의 갈등 때문이다. 원래 JSA는 '병장들의 왕국'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국군 소대장, 중대장이 와서 통제가 심해진 것에 대해 요원들의 불만이 많다. 보통 JSA에 배치되는 장교들은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장교들인데 이들의 엄격한 원칙주의가 요원들의 불만을 사는 것이다.)

몸은 람보, 달리기 실력은 황영조, 총 솜씨는 장고

신고식과 함께 신병이 거쳐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관문은 바로 오래달리기이다. 바바리언 코스, 4코너 코스, 229 코스 등 짧게는 5km, 길게는 10km가 넘는 코스를 전력질주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반환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씩을 마시고 왔다는 통일촌 코스나 파주 용주골 윤락녀들을 깨우기 위해 군가를 크게 불렀다는 선유리 코스는 너무 멀어 요즘은 이용되지 않는다.

JSA 요원들은 또 경비대대만의 독특한 말투도 익혀야 한다. 보통 한국군 부대는 말끝을 '∼했습니다,∼했나,∼했습니까'로 끝내는 데, JSA 경비대대 는 조금 다르게 끝낸다. 본부중대와 경비중대가 조금 다른데 본부중대는 "∼했습니다"라고만 말을 끝내야 한다. 그래서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묻고 싶을 때에는 "식사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경비중대는 '∼음'(ㅁ 받침)으로 말을 끝내야 한다. 그래서 "안녕하십니까", "수고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을 때에는 "안녕하심" "수고하심"이라고 말해야 한다. (영화에 보면 가끔 남성식 일병이 해요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랬다가는 분위기 썰렁해진다. 참고로 JSA에서 고참사병이 '분위기가 썰렁하다'고 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런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드디어 판문점 근무를 서게 된다. 판문점 근무를 설 때는 이병들에게 일병 계급장을 달아주는데 이는 북한군에게 주눅들지 말라는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판문점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본명보다는 별명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북측 경비병 중에 적공조 요원들이 많기 때문에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주윤발'과 같은 나이트클럽 웨이터식 별명이나 '왕코'와 같은 신체 특징을 묘사한 별명 등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런 위장술에도 불구하고 북한군들은 귀신같이 알고 신병이 오면 '어이 아무개신병, 군생활 할만 해?'라고 물으며 농을 걸기 일쑤이다. 참고로 군기 빠진 북한군의 경우에는 '플레이보이 한 권만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근무를 설 때는 무릎을 조금 굽히고 손을 총 옆에 바짝 갖다 대는 '코단자세'를 취한다. 이 자세는 총을 가장 빨리 뽑을 수 있는 자세이다. 그러나 총을 빨리 뽑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사방에 자신을 향해 총구가 겨눠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을 뽑는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재촉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JSA 요원들이 하루 온 종일 '코단자세'로 '빡세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회담이나 행사, 관광객이 방문한 경우에만 서게 된다. 참고로 그림자 넘어왔다고 뭐라고 그러지는 않는다)

JSA 요원이 경례할 때 붙이는 구호는 "in front of them all"이다. 적을 바로 면전에서 대하는 최전선 부대에 적합한 구호이다. 하지만 이 구호는 도끼 살해 사건이 있었던 1976년 이전 상황에 비추어 보면 틀린 구호이다. 그때는 JSA가 말 그대로 '공동경비구역'이어서 특별히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역 안에서는 서로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53년으로 가보면 그 '공동경비구역'은 널문리라는 작은 시골마을이 된다. 지금의 판문점 자리는 원래 주막자리였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함께 술을 마셨던 남과 북의 군인은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현대사가 분단의 굴곡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곳은 그렇게 한 판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을 곳이다.

얼마 후면 경의선 복원과 관련해 제2의 '공동경비구역'이 탄생할 곳이다. 그곳의 분위기가 실제의 '공동경비구역'보다 영화의 '공동경비구역'분위기를 더 닮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사저널 10월 12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 JSA는 유엔군인가 미군인가 한국군인가

유엔사 경비대대의 창설은 휴전협상이 한창이던 1952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담장 경비를 위해 5명의 장교와 10명의 사병들로  경비부대가 구성된 것이 부대의 시작이다. 처음에 미군들로만 구성되었던 이 부대는 이후 한국군도 포함되어 현재는 부대원 500명 중 300명이 한국군이다. 유엔사 경비대대는 크게 행정과 지원을 맡는 본부중대와 영화에서처럼 판문점 경비를 맡는 경비중대로 나뉜다. 이중 경비중대는 부대원 전원이 한국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대에 근무하는 사병들을 한국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들은 관점에 따라 유엔군으로도, 미군으로도, 한국군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들이 훈련소에 입소해 훈련을 받을 때까지는 평범한 '한국군'이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차출되어 주한 미8군 산하 카투사 교육대(KTA, KATUSA Training Academy)에서 미육군의 기초 군사교육을 받게되면 이들은 '카투사'(KATUSA, 미육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분류된다. 교육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게 되면 이들은 유엔사 소속의 'JSA 요원'이 된다. 한국군으로 입대했다가 미군에서 훈련을 받고 유엔군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내용을 들어가 보면 더욱 복잡해진다. 유엔사 경비대대는 유엔군 산하지만 부대 지휘관은 미군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 지휘관이 유엔사 경비대대 대대장을 맡는 것이다. 그런데 JSA 요원들을 실제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경비중대의 중대장과 소대장들은 한국군 장교들이다. 이들은 육군본부 한국군지원단 소속으로 한국군의 명령체계에 있다. JSA 요원은 미군의 명령체계와 한국군의 명령체계에 모두 속해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JSA는 유엔군인가 미군인가 한국군인가

유엔사 경비대대의 창설은 휴전협상이 한창이던 1952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담장 경비를 위해 5명의 장교와 10명의 사병들로  경비부대가 구성된 것이 부대의 시작이다. 처음에 미군들로만 구성되었던 이 부대는 이후 한국군도 포함되어 현재는 부대원 500명 중 300명이 한국군이다. 유엔사 경비대대는 크게 행정과 지원을 맡는 본부중대와 영화에서처럼 판문점 경비를 맡는 경비중대로 나뉜다. 이중 경비중대는 부대원 전원이 한국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대에 근무하는 사병들을 한국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들은 관점에 따라 유엔군으로도, 미군으로도, 한국군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들이 훈련소에 입소해 훈련을 받을 때까지는 평범한 '한국군'이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차출되어 주한 미8군 산하 카투사 교육대(KTA, KATUSA Training Academy)에서 미육군의 기초 군사교육을 받게되면 이들은 '카투사'(KATUSA, 미육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분류된다. 교육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게 되면 이들은 유엔사 소속의 'JSA 요원'이 된다. 한국군으로 입대했다가 미군에서 훈련을 받고 유엔군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내용을 들어가 보면 더욱 복잡해진다. 유엔사 경비대대는 유엔군 산하지만 부대 지휘관은 미군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 지휘관이 유엔사 경비대대 대대장을 맡는 것이다. 그런데 JSA 요원들을 실제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경비중대의 중대장과 소대장들은 한국군 장교들이다. 이들은 육군본부 한국군지원단 소속으로 한국군의 명령체계에 있다. JSA 요원은 미군의 명령체계와 한국군의 명령체계에 모두 속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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