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달리는 결혼식

이색 터키 문화 이야기2

등록 2000.10.11 18:28수정 2000.10.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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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시골에서도 이제는 전통혼례를 올리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도시에서 가끔 남산 한옥마을이나 롯데월드에서 전통혼례를 구경할 수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주로 치르는 웨딩드레스에 턱시도 입는 그런 결혼식은 도대체 어느 나라, 누구의 문화인지를 아는 사람도 없다. 그만큼 사회가 짧은 시간 안에 변했고 그러는 사이에 과거에 대한 어떤 기억들과 단절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문화적 정체성이 많이 약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색 터키 문화 이야기 그 두번째로 터키 동부 에르주름이라는 곳의 이색적인 전통혼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전통의 급격한 단절은 문화적 정체성의 부재를 야기한다는 교훈을 알고 있는 기자로서는 이들의 전통이 현재에도 살아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너무나 부러웠다.

빵빵빵! 자동차 경적소리로 온 시내가 떠들썩했다. 시내 중심 도로를 경적을 울리며 일렬로 달리는 30~40대의 자동차들. 주로 자가용이고 버스와 노란 택시도 몇 대 섞여 있었다. 쌩쌩거리며 달리는 차들을 발견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 차를 쫓았다.

위험천만한 광경들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달리는 차 앞으로까지 진출해 달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동차들이 멈추어 섰다. 아이들이 차를 가로막고 섰던 것이다.


차들이 멈추자 신부와 신랑 아버지가 타고 있는 자동차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신랑아버지는 돈을 넣어 놓은 봉투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돈을 챙겼다. 아이들은 역시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적당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계속 차에 붙어서 떠나지를 않자 뒤차로 따라오던 친척 아저씨가 내려서 아이들을 쫓았다. 아이들이 차에서 떠나가자 자동차 행진은 다시 시작되었다.


자동차가 시내를 도는 동안 이 같은 광경은 반복해서 벌어졌다. 동서문명이 만나는 나라 터키. 터키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15-20시간가량 가면 동부 최대의 도시 에르주름이 있다. 바로 이 결혼식은 에르주름에서 행해지는 전통결혼식의 한 부분이다.

터키에서 결혼은 3가지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법적 결혼 레스미니카흐, 이슬람 승려인 이맘 앞에서 결혼서약을 하는 딘니캬흐, 그리고 가족들끼리 잔치를 하는 듀운오유느가 그것이다.

딘니캬흐의 경우 자신들 종교 이슬람의 신인 알라신에게 서약을 하는 것이라면 레스미니캬흐는 우리의 혼인신고에 해당한다.

듀운오유느는 신랑,신부 그리고 그 가족들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을 알리며, 중요한 날을 기쁘게 즐기기 위해 행하는 잔치이자 일종의 결혼피로연인 셈이다. ‘듀운’은 결혼이라는 의미이고 ‘오유느’는 놀이라는 뜻이다. 이 듀운오유느에서는 독특한 놀이들이 몇 가지 행해진다.

나 결혼했소이다! ‘젤린제즈드리밋’

차들이 시내를 질주하는 것은 터키어로 젤린제즈드리밋이라고 한다. 에르주름 바로 옆의 치플릭쿄이라는 마을에서 본 이 놀이는 다음과 같다.

결혼식 아침 신부집 앞에 하객들이 모여든다. 택시를 모는 사람은 택시를, 버스운전을 하는 사람은 버스를, 그리고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자가용을, 하객들은 제각기 차를 가지고 모인다.

신부 집에서는 이때 아이란(요구르트에 물을 첨가한 터키식 요구르트) 등의 음료를 대접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이맘 주위로 모이고 이맘은 신부가 탈 자동차 앞에서 축도를 한다. 축도가 끝나면 신부가 집을 나와 자동차에 오르는데 이 차에 신부아버지가 동승한다.

이때 신부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이슬람 여인들은 바깥 출입을 할 때 외간 남자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평소에 차도르(눈을 제외하고 완전히 얼굴을 가리는 천조각)나 히잡(얼굴은 가리지 않고 그냥 머리에 덮어쓰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아마 그것과 비슷한 의미인 듯 했다.

이 지방에서 아니 확장해서 보면 이슬람에서 통용되는 관습이 될 수도 있는데 결혼을 하기로 결정된 신부는 듀운오유느 전에 절대 외간남자에게 얼굴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한다. 만약 얼굴을 내 보이면 신랑이 결혼을 무효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듀운오유느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신부는 얼굴을 빨간 천으로 가린다. 차에 올라 탈 때도 얼굴을 가린 채 조금이라도 얼굴을 내 보이지 않으려고 재빨리 움직인다. 젤린제즈드리밋(차타고 시내 돌기)은 신랑쪽에서 남의 집 딸을 며느리로 데려오기 전에 베푸는 의미로 시내관광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한다.

신부가 차에 오르면 차들이 줄을 지어 마을 빠져 나간다. 신부가 탄 차에는 우리네 신랑신부가 타는 차처럼 형형색색의 끈들을 매단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라는 뜻의 번호판을 달기도 한다. 차량행렬이 시내를 통과하면 신부아버지는 우리 돈으로 오천원 정도가 들어있는 봉투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아마 신랑신부의 앞날에 행복을 빌어달라는 의미이자 자기 집안의 부를 과시하는 의미인 듯했다.

일요일이면 시내는 이런 결혼식 차량 행렬로 아수라장이 되는데 시내가 아닌 한적한 도로에서는 하객들이 달리는 차에서 실탄이 든 권총을 쏴대기도 한다. 터키는 미국만큼이나 총기소유가 자유로워 각 가정에 다들 권총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하객들은 흥에 겨운 몸짓으로 차 안에서 춤을 추거나 흥분한 몸짓을 하기도 한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차량행렬이 마을로 돌아오면 이번에는 동네 꼬마들의 차례다. 동네 꼬마들도 지나는 차량을 쫓아 다니며 돈봉투를 챙기려고 난리를 친다.

차량행렬이 마지막으로 정차하는 곳은 신부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랑 집 앞. 터키에서 결혼은 대개 이웃 친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전체 결혼의 44%정도가 친족간에 이루어 졌으며 농촌에서는 이슬람화한 이후 사촌간의 결혼식도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차들이 멈춰서고 사람들이 모이면 다음으로 본격적인 결혼 의식이 진행된다. 그러나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신랑 신부를 나란히 세워놓고, 사람들이 빙 둘러 서있고, 누군가가 축하의 메시지를 주고, 그런 식의 의식은 없다. 다만 이상한, 그래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는 아주 독특한 의식이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myhome.shinbiro.com/~fh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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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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