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YS를 초청했는가?

YS와 14시간 대치하는 동안 벌어진 고대앞 순수학문 논쟁

등록 2000.10.18 13:43수정 2000.10.18 18:27
0
원고료로 응원
"우리 수업을 한번이라도 들어 봤어요?" "누구의 결정입니까? 듣고 싶은 학생들의 수업권은 어떻게 할 겁니까?"

김영삼 전대통령(YS)의 고려대 강연이 예정되어 있던 13일(금). 교문앞에서는 YS의 고려대 출입을 막는 학생들과 YS를 초청한 학생들의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수업은 수업일 뿐이다' '교문을 가로막고 있는 학생들로 인해 우리의 수업권을 박탈당했다'는 대통령학 수강생들과 '정치적 의도가 명백하다' '한발작도 절대 들여놓을 수 없다'며 스크럼을 짜고 버티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때아닌 '순수학문' 논쟁이 불붙은 것이다.

YS를 학문적으로 평가하겠다.

행정학과 대통령학을 수강하는 40명은 수업시간에 YS를 초청, 특강을 듣기로 결정했다. "한 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저희는 이미 이승만부터 쭉 평가를 내렸어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모두 평가를 해서 순위를 매겨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외부에 알려진 자료만으로는 제대로 그 사람에 대해 알 수가 없어서 직접 들어보자. 그럼 누구를 부르면 좋을까 토론을 했어요. 죽은 사람은 부를 수 없지 않습니까? 전두환, 노태우는 너무 심하고, 그래서 결정된 게 김영삼 전대통령입니다."

이 수업을 듣는 송진문(행정학.95) 씨의 설명은, 이번 초청은 92년부터 97년까지 대통령이었던 YS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평가하자는, 학문적 연구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한편, YS의 고려대 강연계획을 알게된 총학생회를 비롯한 중앙운영위원회는 긴급회의를 갖고 'YS 고대출입 금지'를 결정했다. "집권 5년의 실정과 광폭한 노동자, 민중의 탄압에 대한 자성은 커녕 망발만을 일삼고 있는 YS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열사와 선배들을 넋을 위해서라도 고려대에는 단 한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언론에 YS의 고려대 특강이 '정치적 복귀'를 선언하는 장으로 보도된 마당에 그 장소를 '고려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일이었다.


순수학문이란 있는가?
논쟁의 도마위에 제일 먼저 오른 것은 이에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된 40여명의 수업권이었다. 이 수업을 듣는 신명주(행정학.97) 씨는 "미리 알려왔다면 수업을 다른 데서 하든가 아예 초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고려대에서 대통령학은 끝이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중앙운영위원회는 "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미안하다며 이후 자리에서 공식 사과를 하고 어떻게든 이에 대해 이야기할 다른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YS가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자 행정학과 학생들도 어떻게든 수업을 성사시켜 보려고, 또는 수업은 상관없지만 전직 대통령의 예우차원에서, 또는 수업을 못한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논쟁은 도대체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지로 옮아갔다. YS의 고려대 방문을 막고 있던 한 학생은 "상도동에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단식한다고 할 때 진짜 단식한 거 맞느냐,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던 박철언 어떻게 밀어냈냐, 민자당 합당할 때 기분 어땠냐, 김현철 어떻게 고려대 편입시켰냐 뭐 이런 거 물어볼 거면 나도 듣고 싶다. 하지만 이런 야사도 아니고, 반성도 안하는 YS가 무슨 말을 할 지는 뻔하다. 이건 순수한 수업이 아니라 정치적인 행동이다"고 다그쳤다. 그러자 수강생들은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YS가 하는 말을 그저 듣고만 있겠냐. 우리는 행정부의 수반이었던 YS를 학문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고 의도를 다시 밝혔다.

이러는 사이 이미 해는 훌쩍 저물고 있었고 ‘순수’한 강사 YS는 죽어도 정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학교가 다른 곳에서는 절대 강의를 할 수 없다면서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고려대 대통령학의 수강생들은 그날 YS의 ‘고집’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