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에서 모든 꿈을 접고 비참하게 떠난 '리아 테레사'에게 제발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시오. 비행기 값이 없어 딸의 영혼을 맞이하지 못하는 베트남 가족들에게도 제발 평화를 허락해 주십시오"
담임신부의 추모사에 곳곳에서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흐느낌이 계속됐다. 이역만리에서 동료를 떠나 보내는 베트남 동료 노동자들은 망연자실한 채 목메어 섧게 울었다. 서로의 손과 손을 꼭 붙잡고 서로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처롭게 훔치며 부둥켜 안고...
10월 29일 오후 3시 대전대화동공단의 한 염직공장 마당. 한 베트남 여성의 억울한 영혼을 떠나 보내기 위한 추모식은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쓰러웠다. 널찍한 그곳을 수 십여명의 사람들로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니야(23, 여). 그녀가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낯선 한국 땅을 찾은 것은 지난 5월이다. 베트남 호치민에 살고 있는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기꺼이 이국땅에서의 몸고생을 자처했다.
하지만 '2년간만 참고 고생하자'며 키운 그녀의 소박한 꿈은 한 한국 노동자에 의해 너무도 쉽게 짓밟혀진 채 꺽이고 말았다.
그녀는 지난 10월 20일 공장 내 기숙사 옥상에서 같은 공장의 한국노동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6일동안 사경을 헤매다 지난 26일 밤 끝내 사망했다.
담당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심한 충격으로 뇌 일부가 함몰됐고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얼굴 전체가 심하게 부어올라 베트남 동료들마저 그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무시무시한 폭력을 가한 사람은 비 아무개(28) 씨. 더욱 놀라운 것은 비 아무개씨는 니야 씨의 남자 친구였다. 같은 공장에서 일해온 니야 씨의 베트남 동료는 "남자친구인 비씨가 평소에도 툭하면 리야를 두들겨 팼다"고 말했다. 비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에도 사소한 시비를 벌이다 화가 나 폭력을 휘둘렸다"고 진술했다.
주변에서는 '여성을 농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한국 남성들의 왜곡된 성 관념과 가난한 아시아 사람에 대한 업신여김, 그리고 약자에게는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사회 논리가 만들어낸 최악의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장규석(34, 대전 외국인노동자와 함께하는 모임) 씨는 "니야 씨가 '가난한 아시아 외국인'이 아니고 '노동자'가 아니고 '여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갈 수 있었겠냐"고 반문한다.
김규복 목사(대전빈들장로교회)는 "이 사건은 베트남 국민에게 베트남 파병과 함께 한국인이 베트남 사람을 죽인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민족적 사건으로 각인될 것이 분명하다"며, "한국민 전체가 사죄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모식 말미에 고(故) 니야 씨 영전에 하얀 국화꽃이 놓여졌다. 순간 니야 씨의 베트남 동료들의 흐느낌 소리가 한층 커졌다.
아직 니야 씨의 육신은 병원 영안실에 머물고 있다. 가난한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육신은 죽어서도 낯선 이국 땅에서의 갖은 '절차'를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채 이루지 못다고 꺽인 한국의 꿈.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니야 씨는 지금 한국인에게 어떤 말을 남기려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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