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대인지뢰 누굴향한 것인가

냉전시대 무모함 상징...이제 제 정신으로 돌아와야

등록 2000.11.14 12:20수정 2000.11.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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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은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조사한 `한강 이남 후방지역의 대인지뢰 매설실태'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대도시 주변, 도심 뒷동산 등 총 21개 후방지역에 대인지뢰가 대량 매설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강원도 오대산 국립공원과 경기도 남한산성의 도로와 등산로 주변, 서울 우면산, 부산 태종대 일대 등에도 대인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인명피해의 우려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방부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와 유사한 매설지역 실태를 이미 밝힌 바 있다.

국방부가 밝혔던 내용이나 녹색연합의 발표내용을 접하고 우선 놀라게 되는 것은 후방지역의 야산과 등산로 주변에까지 대인지뢰를 매설하는 무모함에 대해서이다. 나는 이들 매설지역이 군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곳인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같은 후방지역에서의 지뢰매설이 민간인들에게 어떠한 위험성을 안겨주는 것인지는 분명히 판단할 수 있다.

마을 주변의 야산에, 등산로 주변에 지뢰를 매설할 때, 당시의 정책결정자들은 과연 앞날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했을까. 그곳에 일단 한번 지뢰를 매설하고 나면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위험이 도사리게 되는 것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까.

아마도 그러한 앞 뒤 고려보다는 당장의 군사적 요구가 우선했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남북대치상황에서의 군사적 필요라면 다른 무엇에 우선했던 것이 그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왔던 가치가 아니었던가. 설혹 민간의 피해가 예상되더라도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라면 주저할 것 없는 것이 바로 후방지역 지뢰매설의 논리였던 셈이다. 도대체 후방지역의 지뢰에 대한 매설실태라도 정확하게 보관되어 있는지도 궁금하다.

한마디로 냉전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무모함이었다. 아무리 군사시설 보호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하지만, 민간인들이 다니는 후방지역에까지 그렇게 지뢰를 매설해 놓아야 했는지 정말 묻고 싶은 일이다.

무모함의 대가는 이미 혹독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인지뢰 피해는 그동안 곳곳에서 나타났고, 그 피해자들은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함을 하소연해야 하는 반문명적인 상황이 야기되고 있다. 국가가 매설해놓은 지뢰를 밟고 발목을 절단하게 된 사람들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제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혹 있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군사적 상황에 대한 대비 때문에 민간의 무고한 피해를 불사하는 것은 국민을 위하겠다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후방지역에 매설된 대인지뢰는 조속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 이전이라도 매설실태를 자세히 공개하여 무고한 인명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는 대인지뢰 피해보상에 관한 법률을 속히 제정하여 억울한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보상조차 받지못하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후방에 매설된 대인지뢰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냉전의 유산을 상징하고 있다. 군사적 가치를 위해서라면 다른 어떤 것의 희생도 감수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그것이다. 이제 그 유산을 하나씩 청산해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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