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이제 새 날이 밝아온 것 같습니다. 55년 분단과 적대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사에 새 전기를 열 수 있는 그런 시점에 우리가 이른 것 같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2000년 6월 15일 방북성과 대국민 보고 중에서)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또 평화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결코 긴장감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튼튼한 안보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확고한 안보태세만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김대중 대통령 2000년 6월 25일 6·25 50주년 기념 연설문 중에서)
불과 10일간의 간격을 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한 말이다. 튼튼한 안보에 기초해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김대통령의 대북관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자 그 동안 적지 않은 성과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동시에 '국가안보 도그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의 표현이자 군사적 대결구조 극복에 대한 의지와 역량 부족의 반영이기도 하다.
나라 잃은 설움, 분단의 아픔, 전쟁의 고통...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걸어왔던 길을 흔히 '수난의 역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나라를 튼튼히 하는 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 정신'이었다. 그러나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적대적 대립을 겪으면서 우리를 괴롭힌 것은 비단 '전쟁의 공포'뿐만이 아니다. 전쟁에 대비한다며 국가안보를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규정하고 이에 반하는, 혹은 정권에 의해 반한다고 해석되는 일체의 행위가 부정되면서 겪게된 고통은 역설적으로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이다.
'튼튼한 안보'와 붕괴되는 민중의 삶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국가안보에 비해 우리의 인간안보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허리띠 졸라매며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IMF 때의 눈물어린 기대는 정부와 기업의 도덕적 해이 속에서 점차 물거품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거리에 늘어나는 실업자와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할 혈세가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무기를 구입하는데 사용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소수정예과학군화를 지향한다는 21세기 안보정책 방향에도 불구하고 '26개월'이라는 군복무 기간은 왜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현재와 같은 군비증강 계획이 북한과의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 궁극적으로는 통일과 양립가능할 수 있는가?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에 대비한 군비증강이 오히려 우리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 위험성은 없는가? 군사력에 의존하는 안보정책보다는 정치외교적인 노력과 상호간의 협력 증진을 통해 전쟁의 가능성을 줄여 나가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안보 추구'는 이상주의적 발상에 불과한 것인가?
찾아온 기회, 다가오는 도전
남북정상회담이후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기회의 중심에는 그 동안 일방적인 안보의 추구 속에서 안보딜레마에 빠져 있던 남북한이 공동 안보의 길로 서서히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면 도전의 중심에는 그 동안 북한의 군사력 우위론과 적화통일론을 전제로 마련한 21세기 국가안보전략을 변화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면서 평화·통일지향적인 안보전략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당면한 요구와 한민족의 숙명적인 안보딜레마라고 할 수 있는 '주변 강대국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남북한간의 안보문제가 해결될수록 한반도의 안보지평은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구조적 맥락이 근저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연속성과 단절, 희망과 우려가 교차되고 있는 시점에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안보의 방향과 그 내용을 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보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모호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상대방을 불안케 하여 오히려 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불안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안보딜레마가 갖는 한반도적 맥락은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안보'도 민주화되어야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경계를 넘어 자유로운 정보 접근과 토론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안보관을 갖추는 일은 복잡하게 얽힌 안보문제를 푸는 첫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보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이전의 권위주의적 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안보는 국가 고유의 영역이고 고도의 전문성과 비밀 유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개입이나 민주적인 통제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가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안보영역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건강한 비판과 민주적 개입이 불가능한 영역은 썩기 마련이다. 수많은 군관련 비리, 국가안보를 빙자한 정권안보와 안보기득권의 추구, 소모적인 군비경쟁으로 희생된 삶의 질 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군관련 예산의 투명성과 효율성 문제부터 '안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이르기까지 이제 정부는 열린 자세로 시민사회와 함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안보가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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