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바보운동' 성지, 옥천을 가다

<'말' 현지취재1>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

등록 2000.11.28 12:31수정 2000.12.1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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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말> 12월호에 '옥천은 조선일보로부터의 독립군임을 선언하노라'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말> 지면 사정으로 미처 싣지 못했던 약 20매 분량까지 추가 입수해 소개합니다.)

조선일보 반대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충북 옥천 주민들이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조선바보)을 만들어 조선일보 추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식인 중심의 '안티조선' 운동과는 그 양상을 전혀 달리하는 그들의 '풀뿌리 언론개혁 운동'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월간 <말> 정지환 기자가 옥천으로 달려갔다.

지난 11월 4일. 서울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출발한 지 두 시간만에 옥천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에 들어서자 주민 몇 명이 마침 그날 발행된 <옥천신문>을 읽고 있었다. 신문 1면에 가장 크게 고딕체로 뽑혀져 있는 기사 제목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을 위하여'. 그 아래로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 자원봉사자 2백명 돌파…군의원 9명 전원 참여"라는 중간 제목이 보였다.

기자에게 그 기사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다수 지방 의원은 적지 않은 재산을 소유하거나 지역 여론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지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나설 수 있었을까.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주민 중 99.9%가 조선일보 친일행각 몰라

기자는 즉각 사실 확인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군의원 명단을 입수해 그 면면을 살펴봤다. 유제구 의장과 민종규 부의장을 비롯해 황진상, 정구완, 조경환, 유만정, 육정균, 조이실, 여운룡 의원 등 모두 9명이었다. 마침 유제구 의장이 일본 방문으로 자리를 비운 관계로 민종규 부의장(55)을 만났다. 그는 대청호 상류에 위치한 안남면 출신이다.

-민 의원이 '독립군'에 가입한 것은 사실입니까.(옥천 군민들은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 자원봉사자를 '독립군'이라 부른다)
"그렇습니다."


-독립군에 가입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독립군들이 전해준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결심했습니다. 그 책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한일합방은 조선의 평화 위한 조약'이고 '데라우찌 총독은 조선의 대근원 기초한 위대한 창업공신'이라니…. 조선일보가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언론은 공정성과 정확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사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왜곡과 매도만 일삼았습니다. 그것이 모두 결국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숨긴 채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몰랐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으니까요. 책을 보고 나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됐습니다. 주민들 중에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 확인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어요. 사실 일제시대에 시골에서 누가 신문을 봤겠습니까? 주민들이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몰랐던 것은 당연합니다."


-공직자로서 독립군에 가입하는 것에 심리적 부담감은 느끼지 않았나요.
"옛날에야 몰랐기 때문에 그랬지만 알고도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진실을 알고도 침묵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가 "조선일보 지국이 바로 옆집이라 지국장을 자주 만난다"고 말했다. 기자가 "항의를 받으면 뭐라고 답하겠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조선일보 문제와 민족정기 문제를 구분해서 보라고 충고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민족정기를 세우자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설득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는 교사 출신의 조경환 의원(52). 기자는 이원면에 있는 조 의원의 자택을 직접 방문했다. 독립군에 가입한 이유를 묻자, 그도 민 의원과 똑같이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거론했다.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를 읽기 전까지는 식별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시대에 조선일보가 매국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조선일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데는 TV의 영향도 컸습니다. 처음에는 독립군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TV에서까지 조선일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전국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요."

-지금까지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에 대해 정말 몰랐나요.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나도 배운 사람인데, 이런 심각한 사실을 왜 모르고 살았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까.
"물론입니다. 아마 주민 중 99.9%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독립군은 주민들에게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알리는 한편 구독중지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립군 활동방식을 지지하십니까.
"완전히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독중지와 불매운동은 너무 과격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잘 모르니, 그것을 지적하고 알리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이었든 실수였든, 조선일보가 친일행각을 정식으로 시인한 뒤 민족 앞에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일을 안 하겠다고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선 독자는 기사를 읽으면서 두 개의 낯선 단어에 강렬한 궁금증을 느꼈을 것이다. '독립군'이라는 용어와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독립군의 정체부터 살펴보자. 앞에서 짧게 설명했듯이, 독립군은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약칭 '조선바보') 회원들의 별칭이다. '조선바보'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조선일보가 자행한 반민족 친일행각을 주민들에게 알려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으로 가꾼다"는 취지로 발족됐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33명의 옥천 주민은 지난 8월 15일 '조선일보로부터의 옥천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뒤 곧바로 조선일보 추방운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인터넷 사이트 '물총닷컴'(www.mulchong.com)과 옥천군 유일의 지역신문인 <옥천신문> 의견광고를 통해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고발하고 있다. '조선바보'에 가입한 사람들을 '독립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관련기사>
'조선바보운동' 성지, 옥천을 가다 2 - 정지환 기자

'조선바보운동' 성지, 옥천을 가다 3 - 정지환 기자

조선일보로부터의 옥천독립선언서 전문

조선일보, 옥천에 기자특파 '조선바보' 경위조사 - 김성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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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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