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산수유 마을의 초겨울 풍경

산수유는 두번 꽃을 피웠다. 노랗게 봄을 알리더니 붉게 빛나며 이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등록 2000.12.21 14:41수정 2000.12.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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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겨울 맞이

노고단의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길을 잡았다. 하지만 게으른 여행자에게 노고단은 입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밤 11시 산장지기와 통화를 해 보니 벌써 산길에 빙판이 져서 차량으로 시암재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급작스런 여행지의 변경이 필요했다. 앙상한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의 힘을 느껴 보고자 택한 노고단에서 피아골까지의 산행을 대체할 그 방법은 우선 잠잘 곳부터 마련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구례의 산동 온천 위쪽에 있는 산수유 마을 "산악인의 집"이라는 곳에 내 절친한 친구와 산악회 동료인 홍동식(나는 그저 그의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다)이란 친구가 살고 있다는 얘길 들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아 기억을 떠올리며 행선지를 정했다.

사람 사는 동네를 피해가다 다시 사람 사는 곳으로 쫒겨난 셈이지만, 뜻밖에의 즉흥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다.

내가 아는 산수유 마을

봄에 세간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곳이 바로 산수유 마을이다. 아직 산천이 깨어나지 못한 계절에 산수유는 제일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며 사람들을 봄으로 초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때는 물오른 고로쇠의 수액도 사람들에게 얼근하고 단맛으로 무장을 하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산수유 마을의 봄은 그 어느 마을보다 일찍 시작하고 분주하다.

그 마을을 매해 두서너번씩 들르지만 그곳에 내 친구가 산다는 사실을 생각치 못하고 그저 구경꾼에 불과한 마음으로 들르곤 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전혀 예기치 않은 여행으로 그 마을에 가게 된 것이다.

▲ 산수유마을의 아침
ⓒ 전고필
밤에 여장을 풀고 방 한켠에서 만복대를 넘어오는 바람의 다소 느긋한 기분을 느끼며 산수유 마을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난 친구지만 80년대 후반에 같은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는 점에 우리는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산으로 다니고 있었고 나는 거리를 헤메고 있었던 시점이었지만 마음 속에 쌓였던 그 무엇인가에 대한 갈구들...


몇 잔의 술이 들어가며 지금의 삶으로 이어왔다. 스물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의 정황, 산수유의 곱디 고운 열매가 붉게 유혹을 하고 있어도 부족한 일손에 노령화된 마을 형편이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얘기들, 중국산에 치여 폭락을 거듭하던 산수유 가격이 이제 다시 국산의 효능이 검증되어 제 가격으로 간다고 하지만 옛적 한 근에 3만원을 하던 때에 비해 턱없이 낮아진 1만2000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 개발의 열풍이 한적하던 마을을 갑자기 화려하게 바꾸게 만든 사정들이 얘기되고 그리고 어느 사이 나는 잠이 들었다.

임씨 할아버지의 초겨울

마을 속의 산장이지만 이곳 또한 바빴다. 부산에서 지리산을 등반하기 위해 찾았던 20여 명의 등반객들은 장비 점검에 아침식사를 하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조용하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이불을 걷고 아침 공기를 가르며 주변을 산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보니 주인장은 손님에게 홍시를 따 주느라 정신이 없다. 살며시 웃음을 던져주고 후배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어제 밤 보이지 않던 산수유 열매의 붉은 자취가 곳곳에 가득했다. 간간히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햇볕을 받으며 탐스럽게 반짝이는 붉은 열매와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지리산의 물줄기의 반짝거림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무런 쓰임이 없을 것 같은 돌멩이를 모아 담을 쌓은 골목길에 어김없이 산수유 나무는 훌렁 벌거벗은 채 열매만을 그득 달고 서 있었다.

이곳 저곳 눈이 가는 대로 사진 몇 컷 찍고 수확하는 모습들을 보노라니 정겨움이 인다. 수확의 즐거움은 씨앗을 뿌려 본 사람만이 안다고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나도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생긴 담장의 안쪽도 두리번거리며 가는데 어느 한 집 마당에서 할아버지는 나락을 말리려 포장에다 널고 계시고 할머니는 창고를 열고 산수유의 열매를 분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임씨 할아버지의 창고 ⓒ 전고필
40kg하는 포대를 들어서 날리는 힘겨운 작업의 모습보다 솔직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많은 산수유 열매를 분리하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하지만 그분은 응락을 하지 않으셨다. 쭈그렁하고 일밖에 모르는 당신들을 촬영해서 뭐하느냐는 요지였다. 너무나 완고하여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는데 할아버지의 손이 또 나락 가마니 위에 분주히 움직이신다.

내 고향에서도 지금 공판을 할 시기가 되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할아버지에게 다시 어색하게 말을 붙여 본다.

"판매가 곧 있으신가 보죠?"
"판매 내었다가 등외를 맞아서 다시 가져와 건조 시키는 것이오."
"아 그러세요. 농사는 몇 마지기 지으세요?"
"저 아래 광의에 10마지기 땅을 사서 지으요"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서 지으려면 꽤 힘드시겠네요"라는 말을 하면서 나와 후배는 할아버지의 작업에 합류를 했다.

넓지 않은 마당에 40여가마를 넌다는 것이 좀 힘겨워 보였지만 할아버지는 두텁게 널어두고 자주 뒤집어 주면 된다고 하신다.
20여분을 마당으로 나르고 멍석 위에 뿌리니 일이 얼추 끝나간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할머니에게 계란을 삶아 오라고 하시고, 일을 마친 우리는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 했다.
"젊은이들 덕분에 일이 이렇게 얼른 끝났고 고생했는데 달걀 자시고 가요. 우리집서 기른 닭들이 낳은 달걀이니"

거절하지 못하고 그 집 마당과 울 사이의 산수유를 촬영하며 시간을 보내다 할아버지와 얘기를 다시 시작했다.

"산수유 다 따셨어요?"
"아직 절반도 못 땄구만."
"얼마나 수확을 하시는데요?"
"한 이천 근 하는데."
"농사 지으실라 산수유 키우시느라 힘드시겠네요."
"그래도 인자는 자식들 다 잘 되었으니 쉬엄 쉬엄 하는 셈이오. 내가 20년 전에 이 마을로 왔는데 그땐 맨손이었는데 여기서 산수유 키우면서 광의면에다 논도 열 마지기 정도 사고 자식들 공부도 가르치고 했으니 이만하면 잘 산 것 아니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이요."
"그러시군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푹 삶은 계란이 나오고 우리는 먹성 좋게 하나씩 들고 껍질을 벗겨 먹는다. 한 냄비라고 하지만 40여 개는 족히 되는 것을 우리더라 다 먹으라는 정이 정말 도타워 보였다.

평소라면 두 개도 못 먹는 나도 열 개 정도를 먹으면서 보니 할아버지는 방안에서 무엇인가를 뒤적이시며 후배와 연신 참전용사에 대한 얘길 나누신다.

6.25 무렵 군인으로 참여하여 6개월 정도 전장에 있었는데 그 공과가 이제 은행 통장으로 돈이 되어 나온다는 말씀이다.
어려운 세월을 살아온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느껴지는 많은 감정들이 일순간 증폭한다.

산수유 마을의 내력

한 근에 1만2000원 정도 하는 산수유는 한약 도매상들이 마을로 방문해서 사간다고 한다. 이 마을 한가구당 평균 2000근 정도를 생산하는데 대부분의 나무들은 10년에서 100년 정도의 나이를 먹은 것들이다.

그중 가장 열매를 튼실하게 맺는 것은 50여 년 이상의 연조가 되어야 하며, 지금은 기계화가 되어 씨앗을 분리하는 것을 기계로 하지만 옛적에는 모두 입으로 발라냈다고 한다. 그런 탓에 산동의 아가씨들은 그 근방의 사람들이 쉽게 이빨만 보고 알았냈다고 전한다. 그 많은 작업을 이빨로 해 냈으니 이 사이의 틈이 벌어졌던 탓이라고 한다.

산동이라는 지명도 산수유와 관계가 있는데 중국 산동성의 한 처녀가 이곳으로 시집을 오면서 산수유 나무를 전해 주어 "산동"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력이 너무 부족해서 산수유를 따는 데 하루 일당 4만원을 주고 사람을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무에 더 오래 있을수록 탄력을 잃어버리고 수확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산수유는 맛이 시고 깔깔하며 해수병과 해열 그리고 오줌 소태라고 오줌을 잘 가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약재로 쓰이는 아주 좋은 식물이다. 이곳 상위 마을이 전국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산수유 나무 몇 그루만 가져도 대학을 보낼 수 있다고 해서 대학나무라고 했다고 한다.

겨울이 시작된 지금 산수유의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은 사실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상위 마을은 아직도 가을이 남아 있었다. 나무에 치렁치렁 매달린 산수유가 그랬고, 마당과 옥상에 널린 산수유가 아직 가을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있었다.

점심 무렵 달걀로 든든해진 배를 어쩌지 못하고 숙소를 빠져 나왔다.
산수유 마을에서 보낸 까만 밤과 아침 나절의 정황들을 간직하며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를 따라 구례, 곡성, 옥과를 지나 광주로 돌아왔다.

홍시를 따 주던 친구의 얼굴과 달걀 하나라도 더 먹으라고 권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가는 길

구례를 거쳐 남원 방향으로 새로 난 19번 국도를 따라 가면 산동온천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온천을 지나 끝마을이 산수유 마을이다.

버스편으로는 광주에서 구례까지 간 다음 상위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다소 교통편이 좋지 않다. 오전 09:40과 13:20분, 18:10분 이렇게 석대만이 운행한다. 따라서 대중교통은 산동온천까지 가는 버스는 매 40분 간격으로 있으니 온천에 도착해 느긋하게 30여분 걸어서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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