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엔 예수가 없다

등록 2000.12.29 12:35수정 2000.12.2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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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아침 시청역 한귀퉁이에는 늘상 보이는 노숙자가 있다.
저 초췌하고 너저분한 노숙자가 자신에게 해코지하지나 않을까 싶어 피해가는 눈치다. 자신들도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없는 듯하다.

살얼음판위에 노동자들은 여지없이 몰리고 겨울은 깊어만 간다. 출근하다가 옆에 있는 사람이 읽는 신문에 무심코 눈을 돌렸다.

언뜻 보이는 사회면 한 구석에 '명동성당 농성 함부로 못한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바로 몇일 전이 아기예수가 태어난 성탄절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온누리가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였고 때마침 그것을 축복이라도 하는양 함박눈도 포근히 내렸다.

세상의 편견과 소외를 온몸으로 감내해내며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어린 아기예수, 너무나 인간적이었기에 우리에게 사랑을 몸소 가르쳐보이셨고, 마지막 죽음까지도 내가 아닌 소외되고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바치신 예수의 사랑을 알리는 날이 바로 성탄절아니던가?

그런데 시설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할 경우 허가증을 첨부해 경찰에 집회신고를 내야한다고 하다니,,,

예수님조차 가슴아파할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저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한 교회에서 교회를 더럽히는 자들 - 예수님의 사랑을 교회라는 물질화된 것으로 착각하고 권력과 부와 오만함으로 더럽힌 자들 - 을 내쫓으시면서 이곳은 나의 아버지의 집이라고 호통을 치실만큼 정말 인간적이었기에 너무도 인간의 아픔과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안고 가신 예수.

저 광폭했던 지난 '불의 시대' 명동성당은 우리 모두의 성지였다. 소외받고 버림받고 탄압받는 우리 모두의 안식처였다. 지금 정권교체로 형식적인 것들이 민주화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놓인 현실을 엄격히 바라보아야 한다.

'세계화'라는 구호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야생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가? 커다란 자본의 무자비한 대류에 휩쓸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절망하고 삶을 포기하고 있는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사회적 강자인가? 사회적으로 권력과 부를 누리는 자들인가? 아니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저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회의 냉담과 무관심속에서 겨울바닥에 누워 싸우고 있는 것 아닌가?

예수님이라면 건물이 훼손된다고 그들을 내쫓지는 않으셨을 게다. 오히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벗어서 그들의 지치고 언 어깨를 덥어주셨을게다. 그것이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가르쳐주셨던 "사랑"아니던가!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시며 내가 너희를 섬김과 같이 가서 세상사람들을 섬기라고 가르치셨건만....

한국 천주교회의 제1성지라고 하는 명동성당에서 칼바람부는 겨울에 정글에 내몰린 어린 양들을 보고 이익집단이라 칭하고, 그들이 성지의 시설을 훼손하였기 때문에 경찰서에 시설보호를 요청하는 것 - 이것이 진정 아기예수가 이땅에 와서 고통받고 핍박받은 '사랑'이란 말인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가 태어난 곳은 천하디 천한 '말구유', 인간의 모든 죄를 아무런 말없이 받아안고 인간의 온갖 모욕을 당하시며 돌아가신은 곳 '십자가'. 그러하기에 우리는 예수를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명동성당에 묻고자 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제1의 성지 명동성당이 건물 훼손을 이유로 저 버림받은 어린 양들을 밀어낼 정도로 예수의 사랑이 식어버린 것인가?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란 말인가?

결단코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빙자하여 잔인한 학살을 자행한 십자군원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진정 가슴아픈 일이다. 예수의 사랑이 죽어버린 것이다. 말구유에서 태어난 핏덩어리 어린 예수를 강보에 쌓인채 아무도 없는 겨울 한가운데 내동댕이 치는 파렴치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시대 아기 예수의 사랑은 죽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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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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