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유치장 인터뷰: 노모를 이불에 싸 내다버린 아들

등록 2000.12.29 21:31수정 2001.01.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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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자 연합뉴스에, 중풍에 걸린 노모를 내다버린 혐의(존속유기)로 최아무개(32) 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연합뉴스는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6시 10분께 인천 연수구 동춘동 산14 Y양로원 인근 숲에 중풍을 앓아 거동을 못하는 노모 손아무개(66)씨를 이불로 싸서 내다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손씨는 Y양로원에 의해 발견돼 보호 도중 지난 14일 심장병으로 숨졌다. 최씨는 경찰에서 "그간 어머니를 돌보던 누나가 암을 앓는 매형의 병간호 문제로 지난 10월말 어머니를 맡겨 한달간 함께 살았으나 빚 때문에 연립주택에서 쫓겨나게 돼, 달리 갈 곳이 없어 일을 저질렀다"고 적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그가 이 추운 겨울날 자신의 어머니를 이불에 싸서 내다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속깊은 사연을 알아봤다
- 편집자주)

"악착같이 돈 벌어서 다시 모셔올 생각이었다. 하루에 점심 1끼니만 먹으면서 70만원을 모았다. 사글세라도 얻을 정도가 되면..."

경찰서 면회소 유리 너머로 남자는 흐느끼기부터 한다. 그는 '존속유기'라는 죄명으로 구속절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병든 노모를 이불에 싼 채로 내다버렸기 때문이다.

12월 29일 자정이면 건너편에서 흐느끼는 저 남자, 최선호(32) 씨의 구속여부가 확정된다 (이글이 작성된 이후인 12월 30일 오전 그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편집자). 존속유기는 징역10년 이하에 처해지는 중범죄. 세 아이의 아빠이면서 중풍 걸린 노모를 극진히 돌보던 그가 돌연 '패륜범죄자'가 되어버린 이유는 뭘까?

"살길이 막막했다"

경찰 조사시 최씨가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서른두살 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열쇠수리점, 야채장사를 하던 최선호(32) 씨는 사업운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해 돈을 까먹기 일쑤였다. 집안 사정도 마찬가지. 아버지 최씨는 최선호 씨가 3살 때 지병으로 사망했고, 큰 형은 95년 화재로, 매형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의 연이은 악재로 95년부터 어머님을 모시게 된 최씨. 어머니 손(66)씨는 두번의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가게일과 어머니 병수발을 병행하던 최씨 가족에게 첫번째 불행은 부인 권씨가 '생활고를 이유로' 가출해 버린 99년 10월 사건이었다.

가게일을 돌봐야 했던 최씨인지라, 어머니 병수발은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큰 애라고 해 봤자 11살이니 병수발이 쉽지 않았다. 자연히 어머니 병수발은 최씨에게 돌아왔고, 가계는 점점 더 기울어 갔다. 아이들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최씨는 사업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 보니 빚만 쌓여갔다. 전기세를 못내 전기가 끊기고 촛불로 버티길 며칠, 최씨가족이 살던 지하 빌라마저 남의 손에 넘어갈 상황에 이르렀다.

11월 최씨는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보내고, 11월27일 새벽 6시경 어머니 손씨를 이불에 싼 채 Y양로원 앞 밤나무 아래에 내다 버렸다. 그후 최씨는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막노동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12월27일 '어머니 손씨가 12월14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사촌형을 통해 전해 듣고 인천으로 올라왔다가 잠복중이던 경찰에 의해 최씨가 검거된 것은 12월28일이었다.

"한달 후면 돈벌어 온다고 약속했었다"

최씨는 짙은 색 바지와 스웨터, 조끼 차림으로 인천 연수경찰서 면회소에 들어섰다. 초췌해진 얼굴 아래로 그는 인터뷰 내내 연신 소리내어 울었다.

- 지금 심정이 어떤가?
"어머니한테 죄송할 따름이다..."

- 생활고가 심했던 것으로 들었는데, '어머니를 버리는' 방법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었나?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 문제로 고민하던 중 어머니도 어디에서 들었는지 '양로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양로원에서는 '아들이 있으면 안된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내 주민등록까지 말소시키고 행방불명으로 처리했지만, 양로원 입주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 어머니를 양로원 앞에 두고 올 때 돌아가실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나?
"그날 아침 8시경 '이래선 안되겠다'싶어 다시 가 봤다. 근데 이불만 남아 있을 뿐, 어머님은 없었다. 양로원 앞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데려갔는가 싶어, 그 길로 돈을 벌러 전라도로 내려왔다"

-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죽을 죄를 졌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를 양로원 앞에 두고 오기 전에 어머니에게 계속 말했다. 한달만 지나면 모시러 온다고... 어머니를 죽이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 지금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애들을 보육원으로 보낼 때 전부 얘기했었다.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꼭 지킬 것이다"

- 마지막으로 애들을 본 것이 언제인가?
"어머니를 양로원 앞에 버리기 전날, 어머니와 애들을 함께 만났다. 당시 애들은 홍역이 걸린 상태였는데 '방 얻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서로 약속했다.."

- 지금 최씨처럼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절대로 가족은 포기하지 말아달라. 나와 같은 불상사는 더이상 없어야 한..."


"가난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버려진' 어머니 손씨의 심정은 어땠을까. 손씨는 최씨가 그를 '버리던' 11월27일 새벽 그날로 Y양로원으로 옮겨졌다. Y양로원은 그날 즉시 연수경찰서로 신고조치 했고, 경찰측은 '무연고이니 좀 돌봐달라'며 손씨를 맡겼다.

경찰에 따르면 손씨는 양로원에서 별탈없이 잘 지냈다. 손씨는 '왜 그곳에 버려지게 됐는가'라는 경찰조사 때에도 '아들이 데리러 올 것이다'라는 말 외에 최씨에게 불리한 진술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을 기다리던 병든 노모는 12월14일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고, 돈을 벌어오겠다던 아들은 '존속유기'라는 죄를 지은 중범죄자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사실조차 모르는 세 아이들은 '아빠가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며' 달력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가난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 사건을 조사했던 김병곤 형사는 이 한마디로 현재의 심정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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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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