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 4인방의 라이브 공연

김현철, 윤종신, 윤 상, 이현우, 노총각 4인방에 간 아줌마 이야기

등록 2001.01.01 05:35수정 2001.01.0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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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라이브 콘서트 초대를 받았다면 멋진 일일 것이다. 그것도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그런 행운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 어렵사리 구한 표가 있으니 오라는 초대.... 당연히 달려가야지.


드디어 31일, 오후 4시 공연인데 30분 정도를 앞두고 택시를 탔는데 평소 15분에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63빌딩을 무려 1시간 20분이나 택시 안에서 허비하고 말았다. 화를 내고 조바심을 쳐도 막히는 길에서야 어쩌랴. 게다가 신호등마다 빨간 불에 걸리는 거다......

맥이 풀릴대로 풀려서 공연장인 63빌딩 국제회의장에 도착하자 음악회의 기대는 이미 저만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택시 안에서 이미 포기할 만큼 포기하고 도를 닦고 온지라 공연장 입구에 붙은 노총각 4인방의 '네 남자의 겨울 이야기'라는 포스터를 들여다 볼 흥미조차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리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특히 가수 이름이나 노래 제목 외는 데는 해도 너무할 정도의 기억력밖에 없다. 어렴풋이 이른바 노총각 4인방의 주인공인 김현철, 윤종신, 윤 상, 이현우가 노래를 썩 잘 부른다는 것만 알지 그들의 노래 제목 하나 제대로 모른다. 더욱이 늦을까봐 택시를 타는 수선을 피운 끝에 늦게 도착한 심정이야 오죽하랴. 그런 심사에 그들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

늦었더라도 이왕 왔으니 일단 들어는 가야지. 화가 덜 풀려 입이 부어서 공연장을 들어서자 이게 웬 일? 분명히 의자는 있는데 장내를 꽉 메운 1000여명이 넘는 관중이 앉아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다. 공연장은 온통 손을 흔들며 번쩍이는 야광 막대를 휘두르는 관중들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근데 이 아줌마 아저씨들도? 간신히 자리를 찾아가자 친구들도 모두 일어서서 손을 흔들고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있었다. 10대는 물론 2,30대가 주 관객인데 10대 못잖은 열광을 하고 있는 공연장에 방금 뛰어든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 목 단추를 풀고 팔을 걷어올린 김현철이 폭발하듯 격렬한 몸짓으로 노래를 쏟아내고 입이 부었던 심사는 뜨거운 분위기에 휩쓸려 단 몇 초만에 눈 녹듯 사라졌다.


아쉽게도 김현철의 마지막 곡이었나 보다. 이내 윤 상이 무대로 나타났다. 노총각 넷 중에 가장 세련된 복장이다. 겉모습처럼 감미롭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노래를 시작하자 의자에 다시 앉은 관객들은 조용한 열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안 거지만 이 공연의 티켓은 무려 6만원이란다. (그 말을 듣고 택시 안에서 허비한 시간에 대한 불만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6만원의 거금을 들여서 공연을 보러 올 정도라면 정말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 듣는 수준도 노래하는 가수들 못지 않을 정도였다. 가수와 일체가 되어 음악에 동화되는 관중. 이것이 라이브의 진수라는 걸 알았다.


음악회라면 안 다녀본 건 아니지만 이른바 대중가수의 라이브 콘서트는 처음이라서 좀 생경했지만 금방 동화될 수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뜨거운 열기와 노래에 대한 느낌이 1천명의 한 마음이라면 족하지 않은가.

윤종신은 이현우의 말에 의하면 속내복 같은 후질근한 빨간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튀어보려는 목적이었다니.. 장내는 웃음바다. 2000년의 저녁은 윤종신의 폐부를 떨리게 하고도 여운이 남는 목청과 함께 오고 있었다. 환생을 부르고 난 뒤 윤종신이 말했다.

"교복은 하나도 없네요?"
"아뇨!! 방학이라 그런 거예요. 우린 고3이예요!"

한 쪽에서 집단으로 쏟는 항의가 들렸다. 30대 아줌마 아저씨 20대 연인들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다. 왜 지금 박수가 나와야 하는지 모르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김현철만 빼 놓으면 다른 가수 모두들 왜소하고 여성적인 모습이다. 한마디로 비쩍 마르고 남자로선 왜소한 체형들이다.

이래서 연예인들은 멀리서 봐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노래 부를 때 하얀 와이셔츠와 빨간 속내복 같은 티셔츠가 땀에 젖어들고 있음, 또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려감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전신으로 듣는다는 것. 그것은 계산 없는 감동이고 다만 미친 듯이 열광하는 것. 그리고 감각으로 만족한다는 것. 그래서 비싼 티켓 값을 무릅쓰고 12월 31일 저녁에 이곳에 모인 게 아닌가.

윤종신의 이빨은 수박 먹기 딱 좋게 생겼다. 그러나 가지런히 보기 좋게 튀어나온 이빨의 우스꽝스러움과 선량한 큰 눈은 일반적인 인상이고 일단 노래가 터져 나오면 아무 거치는 장벽 없이 곧장 심장으로 온다. 심장으로 들어온 노래는 온몸에 바이브레이션의 파도로 물결친다. 저 작은 몸의 육체 전체가 노래부르는 순간 입으로 뿜어 나오는 감동으로 바뀐다.

이현우라면 그리 낯설지 않다. 텔레비전을 거의 안보는 사람도 알만 하니까. 그러나 역시 제목에 무식한 건 변함 없어 이현우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무작정 일체가 되어 몰입한다는 경험이 더 소중하다. 그리고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다는 듯 먼 산을 보는 듯한 눈과 무표정과 수줍음, 별로 변화 없는 그러면서도 변화 있는 듯이 보이는 율동. 락인지 헤비메탈인지 구분 할 수 없지만 절규하며 후벼파고 귀청을 두드리는 노래..

앙코르곡까지 모두 마치고 콘서트는 끝났다. 많은 관중들은 소란도 없이 조용히 자리를 뜬다. 이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수선피우던 새 천년 밀레니엄의 마지막 날이고 무조건 만족한 노래, 일체가 돼서 가슴으로 온 노래를 들은 뒤의 포용력일까? 전망대를 올라가 내려다본 서울 시내의 불빛은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격렬한 움직임이 느껴지며 황홀하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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