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진실의 나무

불신으로 꽃피고 망국으로 열매맺는 거짓의 나무가 숲을 이룬다

등록 2001.01.13 11:29수정 2001.01.1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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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별로 시청자들의 관심도 없던 윤 모 탤런트가 '세친구'라는 시트콤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가 서서히 인기대열에 진입해 갈 무렵 뜻하지 않게 결혼도 하지 않은 그가 초등학생의 딸을 둔 애아빠란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인기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 이제 막 뜨려는 찰나 자신의 과거가 밝혀지게 되었으니 당사자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했을 것이다.

어느날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자신이 군복무시절 한 여성을 만나 아이까지 갖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만일 명예와 딸을 선택하라면 자신은 미련 없이 사랑하는 딸을 선택하겠노라 결연한 의지마저 내보이며 눈시울을 적셨다.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대중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드라마제작팀에서 잘리고 방송가에서 당일로 쫓겨날 줄 알았던 그였다.

그러나 상황은 아주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이튿날부터 그의 낯선 이름 석자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며칠만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톱인기인만을 고집하는 CF 섭외가 쇄도했으며 해가 바뀐 요즘까지 인기가 식을 줄 모른 채 상한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누구보다 특별히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특별히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보다 특별히 연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그의 갑작스런 인기폭등은 무엇때문인가.

많은 시청자들은 대부분의 인기인들이 스캔들이나 인기에 영향을 주는 루머가 퍼지면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발뺌을 하기 마련인데 그의 솔직한 고백에서 인간미를 발견했던 것이다. 또한 인기나 명예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진솔한 표현에 그동안 거짓으로 일관하던 연예인들의 그것과는 뭔가 다른 신선한 충격과 함께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가 모든 분야에 걸쳐 그동안 얼마나 거짓에 속아왔는가를 알 수 있다. 모두가 남을 속이고 속아넘어가고 그것이 일상의 한 면을 차지하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펼치면 정설이어야 할 신문기사가 정말 사실인지 의문스럽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대담들이 하나같이 스크립터들이 써주는 글로 제 마음을 사실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겠지 싶고, 용돈을 달라 조르는 아이들에게까지 쓰임새가 확실한지 요녀석이 다른 걸 살려고 거짓말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을 사고, 주식시장에 흘러나오는 갖가지 루머들에 하도 속아 이제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다짐한 지 오래고,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또 거짓말 하고 있군 체념하다 짜증내며 채널 돌리고, 갑자기 연락도 없던 친구녀석 전화해 급하다고 돈 몇 푼 빌려달라는데 예전같으면 여유 없어도 구해보마 할 일인데 수중에 돈 있어도 이 불경기에 돈이 어디 있겠냐며 한칼에 잘라 버리고, 주민등록 등본 떼러 동사무소에 가면 홍수피해 이재민에게 써달라고 코묻혀가며 모아 전달한 꼬마 성금까지 슬쩍 뒷주머니 챙기는 공직자가 떠올라 공무원들이 모두 이상해 보이고, 백화점마다 정기세일 현수막 요란한데 정말 정품을 헐값에 정리하는지 의문스럽고, 검찰에서 안기부예산 총선에 썼다하여 난리인데 검찰이 진실인지 야당말이 진실인지 누가 거짓말 하기는 하는데 의혹만 증폭되고, 갑자기 당적을 옮긴 의원들이 대통령이나 총재한테 상의하지않고 독자적으로 정국안정을 바라는 충정심에서 결행했노라 말하는데 나라사랑 들먹이며 웃는 그 표정 웬일인지 매국자처럼 음흉해 보이고, 나랏님께서 공중파를 탈 때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그 말 국민을 진실로 사랑하는지 존경하는지 아니면 희롱하는지 우습게 보는지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거짓은 사회 전반에 그 뿌리를 내리고 불신이란 이름으로 꽃을 피워 절망과 망국이란 열매를 맺게 된다. 서두에 인용한 한 탈렌트의 거듭나기가 정말 감동스럽다. 거꾸로 표현하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을 그리워 했는지 짐작케 한다. 그리운 진실 ! 진실 앞에서 사람은 숙연해지게 마련이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거짓이나 변명 앞에서는 항시 불신의 벽이 독소처럼 생겨난다. 이런 사회가 계속된다면 정말 큰일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오늘도 거짓의 나무가 무성히 숲을 이루고 있다.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우리의 아이들은 거짓의 나무에서 피어난 꽃을 아름답다 할 것이며 그 열매를 따먹으며 또 다른 거짓의 숲을 키워갈 것이다. 어찌 무서운 일이 아닌가.

내 가정부터 서로를 공경하고 존중해 주는 자세, 모든 공직자를 청백리로 여기고 관리를 존경하고 친구를 진정 벗으로 여기는 사회,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나라사랑을 본받는 존경심으로 가득한 사회, 우리 사회에 거짓과 부정을 저지른 자는 용서받지 못하는 정의사회가 언제쯤에나 다가오려나.


불신이 미움의 꽃으로 피어나고 절망과 망국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거짓의나무, 언제 어느 세월에나 불신의 숲에 자라난 거짓의 나무를 과감히 베어 넘길 것이며 아직은 어리고 나약한 진실의 나무를 척박한 토양에 심고 정성껏 가꿔 아름다운 정의의 꽃을 피우고 희망과 신뢰로 익은 달콤한 열매를 수확하게 될지 기대가 아득하기만 하다.

감상적인 상념일지 모르지만 이 추운 겨울 아침 이제는 영영 못만날 것같은 첫사랑을 그리듯 막연히 진실의 숲을 그리워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증시칼럼방에 동시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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