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에게는 팔지 않겠습니다

어느 패스트 푸드점의 섬뜩한 거절

등록 2001.01.18 02:01수정 2001.02.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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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 혹시 종로에 있는 패스트 푸드점에 들어갔다가 이런 문구를 본 기억은 없으십니까?
"사채업자, 부동산 중개인, 브로커, 환전상 등에게는 하디스(혹은 버거킹 등)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으며 본 매장의 출입을 절대 금합니다."

17일 광화문 근처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하디스'에 들렀습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거울벽면을 통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안내판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쓰여 있는 문구가 주는 인상이 너무 강렬하고, 도대체 저 직업군의 공통분모는 무엇이길래 하디스에서는 그들에게 자사의 물건을 판매도 하지 않고, 출입도 금하는 것인지, 그런 직업군의 사람들은 어떻게 구별이 가능한 것인지, 또 그들이 하디스와 무슨 악연을 맺었기에 저런 소리를 듣나 여러 가지 의문점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자리했던 사람들과 나름대로 추리를 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의견을 정리한 다음 궁금증을 풀고자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그 안내판을 매단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 장소를 거점으로 사람들을 만나 장사를 한다. 오픈한 시간부터 문 닫을 때까지 장시간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 그들이 구체적으로 주는 피해는
"우선 하루 종일 앉아 핸드폰 통화를 하며 커다란 목소리로 떠들기가 일쑤고, 어떤 사람은 신발을 벗은 채 다리를 뻗고 앉아 있기도 한다. 또, 리필이 되는 음료를 수시로 갖다 마신다. 특히 우리 매장은 음료수대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어 이런 행위가 더욱 용이하다.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고, 전반적으로 우리 매장 분위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 여기 하디스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주로 종로를 기점으로 많이 일어나는 일이라 종로 지역과 근방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은 연합을 해서 안내판을 대거 설치했다. 우리 매장도 아래 층에 여러 개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철수한 상태다. 그리고 다른 종로점들도 많이 수거한 것으로 안다."

-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나
"안내판을 설치한 후 상당 부분 그런 사람들이 감소되었다. 그래서 안내판을 수거한 것이고... 지금은 다시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웃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니 거리에는 눈발이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특정 상품이나 회사를 거부하여 구매반대운동을 벌이는 일은 흔하게 보아오는 일입니다. 안티조선부터 시작해서, 필요하다면 일어나는 일이죠.

손님은 상인을 선택할 수 있어도 상인은 손님을 선택할 수 없다는 일본 상술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현대사회에서 소비자는(실제로야 어떻든) 표면적으로는 늘 환영받고, 선택권을 보장받아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나 흑인·유태인들이 한때 겪었던 계층과 인종에 관한 차별 문제는 지금도 존재하겠지요(하다못해 강남의 지하철 시설도 한 예이구요).


이 문제와는 별 관련없이 기업 이익을 위해 내건 문구라지만 제겐 무척이나 섬뜩하고 낯선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불법적인 거간꾼들이 있는지는 몰라도 문구에 나열된 직업의 사람들은, 내막을 모르고서는 그 문구만 보아서는 상당한 불쾌감과 오해를 줄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합리적으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사람도, 이 문구가 걸려 있음으로 해서 사정을 모르고서는 자신들의 직업 자체가 거부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일이며, 보는 이들은 나열된 직업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겠지요.


아마 하디스의 입장대로라면, 그리고 다른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보다 세심한 문구 선택이 있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디스에서는 매장을 장시간 이용하여 불법적인 거래를 일삼는 사채업자, 부동산 중개인, 브로커, 환전상에게는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으며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말입니다.

문구 하나가 빚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실감하며 어쨌든 우리 셋은 추리를 검증받았다는 통쾌함에 희희낙락하며,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걸어가면서도 도중에 패스트 푸드점이 보이면 안내판 찾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새벽에 글을 쓰면서 참지 못하고, 잠자는 오빠를 깨워 물어 보았습니다. 안내판이 무슨 의도인 것 같냐고. 잠결에 대답한 내용은 그들은 나이를 먹어서 패스트 푸드점은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지 말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더니 또 잡니다. 저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아무리 잠결이라지만 고리 대금업자와 부동산 중개인은 노인들만 하는 건가요? 후후. 웃으시라고 들려드린 일화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새벽에 글을 쓰면서 참지 못하고, 잠자는 오빠를 깨워 물어 보았습니다. 안내판이 무슨 의도인 것 같냐고. 잠결에 대답한 내용은 그들은 나이를 먹어서 패스트 푸드점은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지 말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더니 또 잡니다. 저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아무리 잠결이라지만 고리 대금업자와 부동산 중개인은 노인들만 하는 건가요? 후후. 웃으시라고 들려드린 일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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