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학인데 학교 가기가 두렵다

한 교사의 고민, 엄마보다 선생이 더 만만한 현실

등록 2001.01.29 00:49수정 2001.02.16 19:05
0
원고료로 응원
곧 개학인데 학교 가기가 두렵습니다. 저는 작년 3월부터 중학교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올 2월이 만기지요. 올 한 해 일이 없을까봐도 걱정, 있을까봐도 걱정입니다. 민생고를 해결하자면 일이 있어야 되겠고, 다시 그 전쟁을 치르자니 끔찍하고...

작년 3월 기대감과 두려움을 안고 교단에 섰습니다. 나이는 사십대 초반이지만 학교에 근무하게 된 건 교생실습 이후 처음이었으니까요. 18년만이군요. 처음 발을 내딛는 학교였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전공이 한문이어서 어머니 교실, 청소년 프로그램 센터, 학원 등 여러 교육 현장을 경험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16년이나 내 아이를 길러봤는데 뭔들 어렵겠나하는 배짱도 있었고요. 그런데! 아니었단 말이지요.

어떤 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막막해지네요. 머리 속이 수세미 속처럼 마구 뒤엉켜 있습니다. 처음에 선생님들이 충고해 주더군요. 3월에 잡아놓지 않으면 내년 2월까지 고생 각오해야 한다고. 잡다니? 어떻게?

2주 정도 지나자 학생들은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선생들에 대한 학생들의 탐색도 끝낸 것 같았고 저는 편하고 만만한 교사로 찍힌 듯 했습니다. 지적을 주면 적당한 어리광으로 얼버무리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아예 들은 척도 안하는 녀석, 언제 떠들었냐 시치미 딱 떼고 대드는 녀석 등등.

처음엔 내 정신이 아니었지만 수시로 깨지다 보니 면역이 되더군요. 아주 심한 모욕이 아니면 문 밖에 나서면서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 기분이 잠시라도 연장되면 다음 차시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이 갈 터인데, 아하 이래서들 버티나보다 했지요.

매 시간 시간 결전의 태세로 교실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처절한 패잔병 신세가 됩니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은 차라리 자라고도 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안 자고 떠들지요. 자는 학생은 깨워서라도 수업해야 하지 않느냐고 항의가 들어온다는군요. 깨워야 하겠지요. 깨워서라도 가르치는 게 교육자의 태도겠지요. 그러나 학원에서도 그렇게 시킨답니다. 모자라는 잠은 학교에서 보충하라고.

어느 날부터 매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문 선생은 때리지 않는다고 찍혔으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더군요. 매 한번 들기까지 얼마나 갈등했는지 모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매맞은 기억이 없을 뿐더러 중고등학교를 통해서도 때리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기독교 학교였는데 그래서인지 체벌을 가하지 않았어요. 요즘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아이를 양육하면서도 매 한번 들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랑의 매'라는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누구나 대화로서 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게지요.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온 학생 몇 명을 잡아 엉덩이를 때려주었습니다. 어떻게 때려야 할지 무척 떨리더군요. 제 마음은 아프고 비참한데 이 녀석들은 들어가 앉아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떠드는 데만 열중했습니다.

말로도 위협했습니다. 선생님은 분명히 차별할 것이다. 니들 차별대우, 제일 싫어하지? 그런데 어떻게 차별 안 할 수가 있니? 뒤에 앉아서도 열심히 들으려고 고개를 곧추세우고 앞에 앉은 학생들의 소란을 가까스로 뚫으며 선생님과 눈 마주치려고 애쓰는 학생을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니, 생각해 봐라. 선생님은 분명히 차별할 거다.


이런 식입니다. 물론 위협이지요. 수업 태도는 산만해도 저마다 다 이쁜 구석이 있는 녀석들이니까요. 너희들을 너무 사랑하는데 실망시키지 말아달라고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 두어번 정도 수업다운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 특별 손님이 오시거나 학부모 수업 참관이 있는 날입니다. 어느 한 때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점심 시간 후 5교시 수업은 정말 소란스럽거든요. 그 날 어머니들이 여러 분 오셨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단단히 일렀지요. 긴장하지 말고 평소하던 대로 수업에 임하라고. 안 하던 짓하면 그도 중노동이라 점심 먹은 것 체할 수도 있다고.

그래도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 거예요. 유난히 떠들던 여학생도 그날 따라 하도 조용하기에 수업 진행 중 일부러 주목해서는 ××야, 네 어머니도 오늘 오셨니? 물어보았지요. 순간 뒤에 서 계시던 어머니들과 학생들은 일제히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그 여학생이 뒤돌아봤을 때 마주 웃던 학부형이 어머니였나 봅니다. 다음 날 앞자리에 앉은 개구쟁이 한 녀석이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 가요, 선생님 수업 참 잘하신대요"
"그래? 너희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이지."

그 날 퇴근길이 참 울적하더군요. 제 엄마보다도 선생이 더 만만한 현실이니 어찌 학교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도 절망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수밖에 없어'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편지가 있으니까.

<사제간 편지쓰기> 시간이 한 달에 한번 있습니다. 아침 자습 시간을 이용하는데 학생들 측에서는 마지 못해 쓰는 형식적인 편지였지만 저는 그때 희망을 보았습니다. 편지를 받으면 꼬박꼬박 답장을 썼습니다. 한 줄로 '아무 할말 없습니다'라고 장난처럼 끄적거려 딱지로 접어 준 제자에게도 편지지 한 면을 다 채워 새하얀 봉투에 넣어 전달했습니다.

역시 정은 통했습니다. 매달 내게만 보내오는 단골 제자도 생겼으며 또 다른 제자들이 보내오고... 이런 식으로 편지는 늘어나서 답장 다 쓰고 나면 팔이 저려왔지만 유일한 희망의 출구였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도 차츰 편지에 대한 격식이 생기더군요. 내용도 구체적으로 길어졌고요.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졌다느니, 시험을 쉽게 내달라는 요구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정성껏 쓴 흔적이 보여 기뻤습니다.

편지교류가 있었던 학생들은 수업 태도도 많이 변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은 시간을 요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제간의 관계가 숙성되길 기다리기에는 피차간에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으니까요. 정 들여놓자 또 헤어져야겠지요.

제 이야기 어떤 대안도 없이 넋두리에 그친 감이 있지만 현실의 일면을 알리고 싶어 짧은 체험을 두서 없이 적어보았습니다. 이제 두려움을 거두어들입니다. 일이 있을까봐도 걱정, 없을까봐도 걱정이라 했던 것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3. 3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4. 4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5. 5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