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다 정치난국이다 하며 겨울을 나는 우리들의 체감 온도는 더욱 내려갑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혹시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만화책이나 보는 것은 아니겠죠? 여기 이 추운 겨울 바쁘게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지하철 퀵 서비스 아르바이트생 오승환(중앙대 경영학부 98) 씨.
“원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이제 지하철 전문가가 다 됐어요.”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쉴 새 없이 너스레를 떠는 오승환(중앙대 경영학부 98) 씨가 지하철 퀵 서비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는 한 달이 다 됐다.
그 한 달 동안 배달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환승역에서 빨리 이동하는 길을 다 외워버렸다. 몇 번째 차량에서 타고 내려야 하는지까지도 꿰뚫어 버려 한 걸음이라도 아낀다. 지하철 퀵 서비스는 회사에 내는 보증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수료가 개인 수익이 되기 때문에 한 건이라도 많이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락시장에서 꽃 배달 들어왔어요.”
배달 하나가 끝나자마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또 다른 배달 건을 맡는다. 쉴 틈 없이 돌아다니는 일이라 힘들 것만 같다. 하루 중 지하에 있는 시간은 6시간 가량.
가락시장 꽃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45분. 꽃집 주인은 하루에 5~6건이 들어오는 꽃 배달에 주로 학생들이 오지만 가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오기도 한다고 전해준다. 회사에서는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고용해 보증금 수익을 높이려고 한다. 덕택에 일감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승환씨는 투덜거린다.
꽃집 주인조차 늑장을 부린다. 꽃바구니 하나 만드는 데 40분이나 걸린다. 이래저래 불만이 늘어난다. 그래도 이번 배달은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산모에게 가는 건데, 즐겁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도 이런 배달은 좀 낫죠. 요즘은 의례적인 상납형 배달이 많아요. 받는 사람들도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 같지 않구요.”
마음을 배달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단지 물건을 파손하는 일 없이 안전하게만 옮겨 놓으면 다행이다. 병원이 있는 충무로로 향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꿈을 조심스럽게 풀어 놓는다.
“남들이 안 가본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요. 중동이나 베트남 같은 곳 있잖아요.”
평생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단단히 밝히는 그는 벌써 한 차례 유럽 여행도 다녀왔다. 이 아르바이트는 그를 위한 일이 아닐까?
8시 20분. 그에게서 꽃바구니를 받아든 산모의 환한 표정이 멀찍이 보인다. 승환 씨는 바구니를 전달하자마자 능숙하게 영수증을 준비한다. 정확하게 배달을 마치고 꽃집에 확인전화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낸다. 그는 오늘 하루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서 거의 10시간을 돌아다녔다.
“지난 여름에는 에어콘 설치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에어콘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요?”
그는 아르바이트를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 저 일 해 보며 배우는 자그마한 것들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과외 빼고 웬만한 아르바이트는 다 해 본 그는 쉽게 돈을 버는 일에는 도저히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산해 본다. 한 건에 5800원, 차비를 제한다면 약 5000원. 오늘 승환 씨는 10시간 일하고 3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나마 얼어붙은 길이 오토바이 퀵 서비스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 126호에 실린 글입니다. '2001년 대학생들의 겨울나기'는 앞으로 4번에 의해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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