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학원에는 학원비가 없습니다

혹시 자녀교육비 마련 때문에 뇌물을 주고받습니까?

등록 2001.02.22 18:01수정 2001.02.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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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입니다. 머잖아 섬진강 변에는 매화꽃 산수유 꽃이 지천으로 필 것입니다. 꽃 피면 새가 울고 강물도 더욱 푸르러서 겨우내 움 추렸던 마음들이 화사하게 기지개를 펼 것입니다.


추위를 피해 방안 통수로 놀던 〈평화를 여는 마을〉의 개구쟁이 꽃들이 햇살 풀린 봄 산등성이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새 교과서와 성적표를 받아온 개구쟁이들은 봄방학을 맞아 자신들만의 은신처인 본부를 만든다고 한창 신이 났습니다. 합판과 짚으로 얼기설기 만든 본부에서 어떤 작전을 짜고 전쟁놀이를 계획할지 궁금합니다.

사방팔방 둘러봐도 군것질 할 구멍가게도 PC방, 오락실, 만화가게 하나 없는 섬진강 변.

섬진강 변에 핀 들꽃 같은 개구쟁이들은 학원공부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부모들 또한 학원비 걱정에 안달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무한경쟁 사회에서 뒤쳐질 것을 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예전 어떤 CF의 말처럼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마을 구호입니다.

아이들의 학원은 들녘입니다. 들녘학원에서 뛰놀다 무릎을 다쳐 징징 울면 바람선생이 와서 쓰다듬어 주고, 햇살이 와서 위로 해줍니다. 공부라는 코뚜레로부터 해방된 아이들은 떼지어 몰려다니며 싸우고 토라지고 뒹굴다가 해질녘 어스름타고 돌아와 고요한 어둠을 베고 잠듭니다.


들녘학원에도 문제는 발생합니다. '웃기는 짜장' 솔이(다압초 2년)의 귀띔에 의하면 세현이 형하고 승규 형이 담배를 피웠다 하고,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영훈이 형이 본부를 만들다 딴전을 피웠다며 줄지어 세워놓고 주먹으로 때렸다고 합니다. 우리 집 큰놈인 승이(다압초 5년)는 맞은 곳이 아파 밥을 못 먹겠다고 합니다.

어제(21일)는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진규가 엄마를 만나러 진주에 간 사이에 누군가가 창문을 타고 진규 방에 몰래 들어와 컴퓨터를 했던 것입니다. 화가 잔뜩 난 진규 아빠는 들꽃학원생들을 모아 놓고 단단히 엄포를 놓았습니다.


빵을 먹이며 자수를 유도하던 진규 아빠는 "신발 자욱과 지문채취를 다했다. 누군지 다 안다. 내일(22일)까지 반성문을 써 우편함에 넣지 않으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다"고 잔뜩 겁을 주었습니다.

승·솔 형제는 미선이 누나 집에서 놀았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지용·지훈 형제는 어제 졸업식에 가는 등 일과가 파악됐는데 두 놈은 알리바이를 성립시키지 못했습니다. 빵도 먹지 않은 채 고개만 떨군 두 놈... 고 두 놈은 불안감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들녘학원에도 흡연과 폭력이란 문제가 존재합니다.

어제는 Y선생 영어교실 선생이란 분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초등학생들의 영화가 몹시 중요하며,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는 영어공부가 필수적이다"는 말씀에 거두절미하고 "보낼 형편이 안될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을 아이들 모두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고 정중히 사절했습니다.

"옆집 아이가 공부하는데 넌 팔자 좋게 놀고 있어"라며 다그치는 어머니, "앞집 철수는 고액과외를 한다는데 우리 아이도 과외를 해야 할까봐요!"라고 의논하다 언성을 높이는 부부...

교육광풍에 휩쓸려 과외로 보습학원으로 떼지어 몰려가는 행렬들, 그 아수라장으로 인해 목숨을 버리는 아이들.

자녀교육비 마련 때문에 매춘부업을 했다는 어떤 어머니 아니면 은행 빚을 얻어 과외비를 충당한다는 부부, 심지어 어떤 부모는 사교육비에 못 견뎌 이민을 간다고 했습니다. 자녀 교육에 목을 매는 부모로 인해 자녀들의 영혼이 그 목줄에 졸려 질식하고 있습니다.

천방지축 뛰놀다 숙제하고 일기를 쓰다 잠든 들녘학원생들이 장차 무엇이 될지 저는 모릅니다. 물론 바람·햇살 선생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들녘학원생들은 살아 있는 생명의 귀함과 주변을 살피는 따스함을 바람과 햇살선생에게 배웠기 때문에 이 땅 어디에서든 희망의 꽃씨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혹시 자녀교육비 때문에 뇌물을 받고 주고 있습니까? 혹시 자녀의 성공을 위해 몸마저 탕진하고 있습니까? 고민하지 마시고 학원비 없는 들녘학원에 보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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