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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사람은 태어나고 죽어간다. 그 중에 그 탄생과 죽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이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무언가 가치가 있어야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며칠전 또 다시 6명의 소방관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이전에는 이수현 씨의 죽음이 알려졌다. 그들의 영정앞에는 의로운 죽음이라는 수식이 붙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의로운 죽음앞에 애도를 표하였다.
나는 문득 왜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고, 언론에서는 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가 하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을 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가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인가? 젊은 나이에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인가?
그들의 죽음뒤에는 항상 많은 포상과 많은 사람들의 애도가 따르고, 언론에서는 항상 그들의 죽음을 얘기하며 살신성인, 각박한 세상에 아직 인정이 남아있다는 식으로 글을 쓴다. 며칠 그러다가 금방 사라진다. 아무일이 없었던듯...
이수현 씨의 의로운 죽음은 열도와 반도를 달아오르게 하였고, 한일 우호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얘기했지만, 지금 열도와 반도는 일본의 왜곡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로 시끄럽다.
이전에도 소방관들의 힘듬과 처우에 대한 불만이 언론을 타지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조용했다. 지금은 여섯 분의 소방관의 죽음으로 소방관들의 처우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오고간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얼마나 개선될지 의구심만 든다.
위의 사실보다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건 그들의 의로운 죽음을 애도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도 잊혀져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의로운 죽음이라고 얘기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때뿐일 수가 많다.
바쁜 일상속에서 항상 그들의 죽음을 인식하며 살 수는 없다. 그들의 죽음이 얘기하는 것을 가슴 한구석에 담아두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해나갔으면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한번씩 이수현 씨를 떠올리며 그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 여겨진다. 무심코 지나가던 소방서 앞도 잠깐 서서 돌아보고 소방관이 지나가면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하는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듯 싶다.
역사 속에 의로운 죽음은 수없이 많았고, 본받아야한다는 삶의 모습도 수없이 많았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의로운 죽음 찾고, 그 죽음을 보며 아직은 살만해하며 안도의 한숨을 한번 쉬고 아무런 변화없이 일상에 매몰된다. 이제는 그러한 죽음앞에 조금의 의식변화와 조금의 깨달음이라두 얻으려 하자.
역사속에서 교훈을 얻지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수현 씨, 여섯분의 소방관의 죽음도 이제는 역사임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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