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선배에게 했던 약속

봄이 와도 신이 나지 않는 이유

등록 2001.03.24 23:41수정 2001.03.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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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맞는 봄은 참 달콤하고 활력이 넘쳤다.엄격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대학생활은 자유 또는 그 이상의 방종도 허락된 시간이었다.


방학 동안 억눌려(?) 지냈던 나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이야말로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하늘을 날 듯 자유로울 수 있는, 그야말로 신나는 계절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나는 지금 사무실에 있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이건간에 계절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기분 좋은 만큼만 적당하게 머리카락을 날려주는 바람, 온기가 느껴지는 햇살이 어우러져서 오늘 여의도 공원은 그 어느 주말보다 북적거렸다.

가족끼리 김밤을 먹는 사람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꺅꺅" 소리를 질러대는 닭살커플들이 공원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왠지 꿀꿀한 기분 때문에 (사실은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타러나갔다.

1시간당 2000원이라는 아저씨 말에 30분이니까 1000원에 해달라고 했지만 끝내 묵살당하고 나는 입을 댓발로 내민 채 자전거를 탔다. 키가 좀 낮은, 우스꽝스런 장바구니가 달린 그 자전거를 타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자전거 전용도로는 초등학생도 안돼 보이는 꼬마들로 초만원이었다. 뒷 바퀴에 작은 바퀴 두 개를 매단 자전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나는 겨우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여기저기서 브레이크를 잡고 넘어지는 사고(?)가 났다.

"쪼그만 놈들이 되게 걸리적 거리네, 놀이터나 갈 것이지, 부모만 안 왔으면 저것들을 확~."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30분 내내 툴툴거렸다. 노랑머리 대학생 한 무리가 나를 휙 하고 앞질러 갔다. 뭐가 그리 신날까? 만면에 웃음 가득.


"좋을 때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이맘때쯤이면 잔디밭에서 낮술도 마시고 새로 만나는 신입생, 복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누군가는 한쪽 구석에서 꽤 진지한 얘기를 하고 또 그 옆에서는 누군가 오바이트도 했지.

항상 봄이 오기를 고대했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계획을 세우곤 했다. 수업에 빠지지 말자. 술을 좀금만 마시자. 신입생들을 많이 만나서 무조건 동아리로 꼬셔오자. 등등. 신났다. 봄이 와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왜 지금은. 봄이 와도 신이 나지 않은 걸까?


"졸업을 하면 뭘 할 거니?"
"아직은 생각 중이에요. 하지만 확실한 건요. 난 돈 잘버는 직업을 가지고 싶진 않아요. 돈은 못 벌어도 좋아요. 나는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문득 4년전 어떤 선배에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선배에게 했던 말들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채 또 다시 봄을 맞이한 탓일까? 래서 봄이 와도 신이 나지 않는 걸까? 자꾸만 내가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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