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정말 목숨을 담보로 학교를 다녔다

숭실대 장애 여성 학교를 상대로 학습권 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등록 2001.03.30 04:42수정 2001.03.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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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애 여성 대학생이, 다니던 대학교를 상대로 의미 있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는 숭실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박지주 씨(71년생. 휠체어 장애인 장애등급 1급). 사회사업학과 98학번으로 3년째 심적,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 휴학을 하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에 계속 소송을 고민해 오다 지난달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다산인권센타 김칠준 변호사를 만나 소송의 결심을 굳혔다.

지주 씨의 학교를 상대로 한 고소이유는 분명하고 간단하다. 숭실대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98년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자신을 포함해 2명의 장애인 학우들이 입학한 이후 매년 장애인 학생들이 입학을 했으나,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 당국이 장애 학생들의 교육과 안전 그리고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실질적인 움직임이나 고민이 없었다는 것.

이에 지주 씨는 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늘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소외감에 시달려야 했으며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장애인 화장실마저 거의 없고 강의실은 온통 계단뿐이라 감내해야 할 육체적 고통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며 고소 이유를 밝혔다.

박지주 씨는 올해 31살로 초등학교 때 척추측만증이라는 휘귀병을 앓아 중학교 2학년 때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만 했고 이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몇 차례 수술을 받고 1년 뒤 다시 학업을 계속하려 했으나 다니던 학교에서는 지주 씨가 다닐 만한 편의시설이 없다며 박지주 씨를 매정하게 거부했었다.

스물 두 살이 되던 해, 운전을 배워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주 씨는 장애인 직업훈련소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중 그 상투적인 훈련 프로그램에 회의를 품고 24살 검정고시로 공부를 시작했다. 고향이 제주도인 박지주 씨는 그 해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에서 도 내 수석을 차지하고 연이어 고등학교 검정고시 차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1년 반동안 연세대를 목표로 수능을 준비했으나 아깝게 점수에 못미쳐 숭실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연세대나 숭실대나 기독교 정신을 그 건학이념으로 하고 진학하고 싶은 사회 사업학과가 마음에 들어 숭실대로 지원했다. 그러나 지주 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학교 당국의 철저한 무관심과 무지막지한 건물들뿐이었다.
지주 씨는 지난 3년동안 동아리까지 조직해 학교당국에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으나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돈이 없고 시간이 걸린다’라는 무성의한 답변뿐이었다고 한다.

박지주 씨는 “어렵게 주위 도움을 받아 3층까지 올라갔는데 수업이 휴강이었을 때가 가끔씩 있는데 그런 때가 제일 허탈해요, 학교가 조금만 신경써서 미리 행정적으로 저에게 연락만 주어도 되는데...”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2월 6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오이도역 장애인 추락참사 항의집회에 참석한 박지주 씨.(사진 앞줄 맨 오른쪽) 박씨는 학교에서조차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3년 동안 학교가 아무런 지원이 없다 보니 일반 학생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를 가진다.
“도움을 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도움을 부탁하고 도움을 받는 것도 서로가 긴장되고 피말리는 일”이라고 박지주 씨는 밝혔다. 사실 작년에는 박지주 씨 문제로 사회 사업과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실 이 논쟁으로 박지주 씨는 상당한 심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 논쟁으로 말미암아 학과 생활을 포기해야만 했으며 이것이 소송을 결심하게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주 씨는 “이 논쟁은 학생 개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긍극적으로 이러한 갈등을 빚게 한 학교 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며 소송의 고충을 말했다.

이번에 박지주 씨는 이와 같은 숭실대 학교당국의 장애 학생들에 대한 무관심에 따르는 한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 소송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년에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원서접수조차 거부한 청주의 서원대를 시작으로 편입을 거부한 청주대, 신체 검사 조항을 들어 시각 장애인을 거부한 서울 교대까지 장애인 입학거부 문제로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있었지만 재학 중인 장애인 대학생이 학교를 상대로 학습권 훼손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박지주 씨가 역사상 최초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소송의 승패 역시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주 씨의 소송이 어떤 식으로든 승소할 경우 장애인 학생들에 대한 교육권 내지는 학습권에 대한 대학당국의 법적으로 강제했다는 사실을 확인, 교육권 문제로 학교 당국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다른 학교의 유사한 법적 투쟁이 줄이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학교를 상대로 장애인 학생들이 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은 우석대, 대구대, 전주대, 연세대 등이 있으나 비대위가 꾸려진 우석대와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연세대를 제외하곤 당사자의 권리의식 부재와 학교의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자세로 인해 이렇다 할 성과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박지주 씨가 이번 소송에 패소할 경우에도 학교 당국의 장애인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강제할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어져, 헌법 소원이나 교육과 장애인에 관련한 유엔 조약, OECD 협정 등을 어기는 결과가 되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위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이번 손해배상 액수는 5천만원이며 근거 법률은 헌법 제 31조 제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등을 위시해, 교육 기본법, 장애인 복지법,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등이다. 박지주 씨는 만약 승소할 경우 전액을 장애인 교육권을 보장할 편의시설 확충 사업에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주 씨의 이번 소송은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일단 관련 법률 등이 모두 선언적 의미로 그치거나 임의조항이라 법적 책임성이나 강제성이 약해 전적으로 재판부의 유권해석이 승패를 결정할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중요하다는 것.

특히 98년 이후 숭실대에 입학한 장애 학생이 열 명도 채 되지 않고,주먹구구식이긴 하지만 편의시설을 어느 정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재정이 열악한 사립학교인 숭실대가 ‘소수를 위한 과잉투자’를 들고 나올 경우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장애인 고등 교육권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박지주 씨의 소송은 더욱 빛난다. 과거에도 재학생들의 학교를 상대로 한 소송 시도는 장애인 단체들 중심으로 있어 왔으나 당사자인 장애인 대학생들의 무관심과 거부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장애 여성 박지주 씨가 당당히 교육 주체로서 권리를 찾겠다고 홀로 깃발을 들고 ‘커밍아웃’을 하고 나선 것이다. 박지주 씨는 이에 “자신의 소송을 계기로 자기를 모델 삼아 많은 장애인 후배들이 숨어있지만 말고 당당히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숭실대는 지금 현재 총장의 재정비리와 전횡에 의해 학내 분규를 겪고 있으며 이에 실무자들의 이번 소송에 대한 반응은 한마디로 하든지 말든지 그 자체다.

‘진리와 봉사’를 모토로 기독교 이념에 입각해 세워졌다는 숭실대힉교. 이번 소송에 대해 숭실대의 기독교 정신과 진리와 봉사는 어떠한 대답을 그녀에게 들려줄지 궁금하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하며 또한 우리 사회는 어떠한 반응과 여론을 형성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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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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