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이 사람들아, 좀 참으랑께!"

<공동체마을> 상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등록 2001.04.02 10:19수정 2001.04.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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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느그들 맘대로 하라 그랬노! 아잉 자식들아!"
"당신 뭐라고 그랬소! 술 먹고 어디서 행패를 부리고 그래, 엉."
"아따, 이 사람들아 왜들 그래 좀 참어!"


언젠가 한 번은 겪고 넘어야 할 난리가 지난 31일(토) 마을 월례회를 앞두고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몇 번의 싸움과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해비타트 송간사의 말처럼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쌀이었습니다. 마을 조경수 헌수로 큰 도움을 준 적이 있는 자유총연맹 광양시 지부장이 지난 26일 20kg 쌀 두 포대와 장학금 20만원을 전달하겠다면서 시급한 선정을 요청했습니다.

마을 운영위원회에서는 중풍으로 생계가 막막한 지연이 할아버지 댁과 진주에서 날품팔이 이발사 노릇을 하다 최근 하동에 이발소를 차려놓고도 집세도 내지 못하는 영기 씨를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장학금은 모녀가정으로 보일러도 제대로 때지 못하고 겨울을 난 진임 씨네 둘째 딸 고니를 추천했습니다.

생계곤란에 처한 일부 주민들이 면사무소에 찾아가 양식을 지원해달라며 실갱이를 벌이던 와중에 지원된 쌀 두 포대는 코끼리 입에 비스켓과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왜, 우리는 쌀을 주지 않느냐는 불만의 표출로 인해 도움을 주고자 했던 선한 뜻이 일그러진 이번 사건은 그릇된 구제관행에 빚은 사건이라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별달리 할 일이 없으면 일거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쌀 지원 소문이 마을에 퍼지면서 술자리를 통해 쑥덕공론이 나돌았고 불만이 형성되면서 성질 급한 남해 김씨가 이 같은 추천에 대해 감정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월례회에 잘 참석치 않던 김씨가 이날따라 일찌감치 마을회관을 찾아와 진한 술냄새를 풍겼지만 평소에 취하기를 즐기던 사람이라 별다르게 여기지 않았지요.


다압중학교 운영위원장이 마을에 찾아와 바깥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을대표를 맡고 있는 진규 아빠가 밖으로 뛰쳐나오더니 '형님, 이래 가지고는 회의진행 못하겠소!'라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황급히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남해 김씨는 삿대질과 욕설을 하며 마구 휘젓고 다녔습니다. 급기야 몸싸움이 벌어지고 난리 굿이 벌어지면서 떼어내고 말리고...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러운 것이 없는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깨끗한 것이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화(禍)를 자초하는 것이 입이듯이, 사람 사는 동네에서 싸움의 발단은 대개 입(口)입니다. 실체도 없는 소문으로 감정을 상하게 만들며 끝내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입, 입주 초기에 벌어진 청와대 선물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난해 마을 건설 당시 이희호 여사께서 다녀갔습니다. 이때 주민들 사이에서 청와대에서 근사한 선물(냉장고·텔레비전)이 주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나 돌았습니다. 그 소문에 따르면'모 일보에 났다(근사한 선물을 전달한다는) 카드라'는 등의 구체적 근거까지 붙어 꼬리를 물고 퍼졌습니다.

그러나 한국 해비타트를 통해 전달된 선물은 입주축하 카드와 함께 비누세트였습니다. 기대에 부풀었던 일부 주민들은 실망감과 함께 중간에서 떼어먹었다는 입소문을 퍼트리기에 이르렀고 참다 못한 해비타트 관계자들은 유언비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했습니다. 소문의 발단은 모 아주머니와 할머니로 밝혀졌지만 끝내 부인하며 오히려 성을 내는 바람에 어쩌지도 못하고 모두들 마음만 상했습니다.

지난달에도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월례회 며칠 전 마을 쓰레기 보관대 설치를 위해 면사무소 직원이 마을에 왔다가 이북에서 피난 내려 온 김씨 어르신이 냄새가 난다며 자신의 집 근처에 설치하지 말라는 반발에 부딪쳐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곳은 애초부터 설계에 정해진 자리였지만 김씨 어르신의 막무가내 반발에 부딪친 면사무소 직원은 마을에서 위치선정을 해주면 공사를 하겠다며 돌아갔습니다.

월례회에서 쓰레기 보관대 위치선정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김씨 어르신은 막무가내로 고함을 지르며 무조건 자신의 집 근처에는 설치할 수 없다 했고, 대부분의 주민들 또한 자신의 집 근처에 설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회의는 난항을 겪었습니다. 결국 회장과 총무가 살고 있는 '바'동 인근에 설치키로 하면서 가까스로 정리가 됐습니다.

개별화되어 가는 세상, 이기주의적 삶에 지친 사람들은 간혹 공동체 삶을 동경합니다. 함께 모여 사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그러나 평화마을에 입주해 6개월 가량 살아보니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종교적 동질성이나 이념적 통일성도 없이 다만 무주택 서민이라는 특색만으로 집단화된 상태이기에 다툼과 갈등은 어차피 준비된 일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공동체인 두레마을 또한 수많은 난관과 수고를 거쳐 이뤄진 마을이지요. 두레 마을은 김진홍 목사라는 탁월한 지도자와 신앙공동체라는 특성을 지녔기에 오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우리 마을의 부끄러운 모습을 고자질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평화마을이 몹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아닙니다. 기질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만큼 사소한 싸움과 부딪침과 언쟁은 어차피 치뤄야 할 통과의례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마을에 과분할 정도의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있는 그대로 봐 달라는 것, 마을 명칭만 봐도 평화가 열린 마을이 아니라 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마을이듯 또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을 거친 뒤에 오는 평화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듯이 저희들은 어쩔 수 없이 아웅다웅 싸우고 지치며 자식들 키우기에 분주할 것이 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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