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급여는 중산층이 받는 수준을 넘어서면 곤란해... 기자는 민중들과 눈높이를 같이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다름 아닌 지난 3월 30일 출범한 신문개혁국민행동 성유보 본부장이 던진 의미 있는 말이다. "급여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서민들과 눈높이를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은 억지 주장이 아니냐"는 반론도 불러올 수 있을 법한 얘기지만, 기자들이 취재에 임하는 자세를 함축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얘기다.
성 본부장의 얘기처럼 눈높이를 민중에 맞추고 있는 '(마음이) 가난한 신문'은 과연 어디일까.
흔히들 소외받고 있는 대중을 논할 때 '농민'이란 두 글자는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곤 한다. 안티조선운동이 활발한 충북 옥천군의 한 농민은 "조선일보는 농가부채 문제와 같은 농민과 관련한 보도면에서 가장 인색한 신문"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 농민들의 의견을 대변한 '낮은 신문'은 어느 곳일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우르과이라운드(UR)농산물 협상이 마무리돼 가던 1993년 12월 당시 국내 5대 일간지의 농민 농업에 대한 보도실태와 성향을 비교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 <국내 주요신문의 농업관련 보도실태 및 성향 비교 연구>를 뒤져 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접할 수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UR협상이 진행되면서 우리 농업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던 1991년 3월 1일부터 1993년 3월31일까지 국내 주요일간지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농업관련 기사량은 동아일보 1,421꼭지(26.9%) 한겨레 1,339꼭지(26.1%) 조선일보 873꼭지(16.6%) 중앙일보 824꼭지(15.6%) 한국일보 783꼭지(14.9%) 순으로 나타났다.
보도 비중면에서도 한겨레, 동아일보가 앞서고 있다.
1면 보도횟수는 한겨레 74회, 동아일보 60회, 중앙일보 40회, 한국일보 36회, 조선일보 20회로 나타났고, 1면을 제외한 각면 머리기사 보도횟수는 중앙일보 160회, 동아일보 120회, 한겨레 100회, 한국일보 80회, 조선일보 60회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조선일보의 경우 전체 기사량은 5대 일간지 가운데 세 번째로 많았으나 1면기사와 각면 머리기사량은 가장 적었다는 점이다.
특히 '농민'을 취재원으로 활용해서 기사를 작성, 보도한 횟수는 한겨레 190꼭지, 동아일보 117꼭지, 중앙일보 54꼭지, 한국일보 49꼭지, 조선일보 41꼭지로 나타났다.
기사내용을 살펴보면 한겨레와 동아일보가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을 많이 보도한 반면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는 중립적이거나 '농민'의 이익에 반(反)하는 내용을 많이 다룬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주요 일간지들은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미국의 개방압력과 일본의 쌀시장 정책에 관한 외신을 주로 전하면서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대세인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설이나 논평을 통해 중립적인 논조를 유지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볼 때 쌀시장개방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밝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국내 농민들의 입장을 보도하면서 자구책 마련에 대한 기사를 다루며 쌀시장 개방에 대한 적극적인 논조를 폈던 신문도 없지 않아 신문사별로 입장 차이가 크게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쌀시장 개방과 관련해 국내 대응방안이나 정책마련에 관한 보도보다는 국제협상이나 주요 협상국의 동태에 치우친 수동적인 보도자세를 보였다.
동아일보 역시 외신 보도에 많은 비중을 두었으나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농민들의 입장을 많이 다뤄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는 외신보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던 유일한 신문으로, 국제상황에 대한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협상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 미국의 개방압력에 반대하는 EC의 협상태도, 일본의 쌀시장 정책에 대한 대응방안에 관한 보도가 다수를 차지했다.
중앙일보는 내외신 보도를 비슷하게 내보냈지만 쌀시장 개방 협상에 대한 비관적인 내용의 기사를 많이 다뤘다.
한국일보 또한 외신에 치우친 수동적인 자세를 보였고,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보도횟수가 다른 신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분석 결과, 주요 일간지들의 이런 농업관련 보도성향은 쌀시장개방 문제뿐만 아니라 농지, 추곡수매, 남북한 농산물교역, 외국산 농산물 문제 등 다양한 사안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었다.
농민들을 대하는 국내 신문사들의 각기 다른 태도가 '어느 신문이 낮은 곳을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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