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헌책방에서 낡은 책 한 권 위에 쌓인 먼지를 좀 털어내고 펼칩니다. 펼친 책에는 이 승만 사진이 여러 장 화보로 들어가 있는데 화보마다 누군가가 검은 펜으로 휘갈기듯 써놓은 글귀들이 남아 있습니다. 누가 썼는지, 언제 썼는지 알 길이 없는 이야기들. 그 가운데 하나를 사진으로 남깁니다.
"李 承 晩
권력을 영위하기 爲하여 수 많은 동포
을 압살 지령한 괴수. 임마. 저승에서"
미처 끝맺지 못한 마지막 말.
나라를 세운 위대한 이라는 이름을 우리 사회 어느 계층에게는 듣는 이 승만.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동포를 압살하도록 지령한 괴수'라는 소리를 듣고 `임마' 소리를 들으며 `저승에서 (만나자)'는 소리를 듣는 사람.
우리 시대는 아직도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역사인지 밝혀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배우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역사 시간에 참 역사를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하는 형편. 우리 스스로 쭈쩨기이거나 무룡태인 현실에서 우리와 얽힌 역사를 비틀어서 실었다 해서 교과서를 고치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스스로 우리 교과서는 어떻게 적고 있는가요.
이웃나라일 뿐 아니라 우리를 식민지로 다스린 나라라서 앙금이 많아 일본 교과서만 문제삼는 건지. 다른 나라 교과서 또한 일본 못지 않게 비틀린 이야기가 많음에도 이를 하나하나 바로잡고자 애쓰는 외교 정책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방이라는 미국 역사 교과서는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어찌 쓰고 있을까요.
박 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야구선수로 뛴다 하여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그이가 나오는 경기를 현지중계합니다. 그러나 그만한 돈을 들여서 박 찬호 선수가 뛰는 미국 역사 교과서가 잘못 그리는 대한민국 이야기를 올곧게 바로잡는 데 애쓰려는 방송국 정신이 있을까요.
홧김에 터지고 샘솟아오르는 아픔과 생각으로 이 승만 일대기라 하는 책 화보마다 그이를 꾸짖고 나무라는 이야기를 써내려간 어느 사람 하나. 오래 가지 않아 그이가 몇 글자 남겼던 책은 누군가 사갔습니다.
돌고 도는 책 사이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기억과 흔적. 역사가 되지도 못하고 이야기로도 남지 못하는 우리네 삶.
덧붙이는 글 | 최종규 누리집 http://freechal.com/tobagi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