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절망의 폭력!

스승의 날 교사 폭행 사건을 보면서

등록 2001.05.17 19:27수정 2001.05.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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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스승의날에 우리는 한 가지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고 있었다. '스승의 날에 고등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다.' 17일자 조선일보에는 이를 폭로한 교사가 마치 엄청난 비리를 생명의 위협을 걸고 폭로한 듯 보도했다.

신문 기사에 난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승의 날에 떠들고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 학생들에게 어느 한 교사가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데려갔다. 그러자 학생들이 그 교사를 둘러싸고 폭행했다.

이전에도 교사의 학생 폭행에 대한 경찰 신고 등의 사건이 있었으나, 스승의 날에 공개되면서 아마도 우리에게 더욱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이었을까, 교사들은 '교권'이 무너져간다고 개탄하고, 어르신들은 윤리가 사라져간다고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교권'을 강조하고 '사랑의 매'를 강조하면서, 정작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다. 왕년에 학교에서 매 한번 안 맞아본 사람 없다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그 체벌은 회초리가 아닌, 맨 주먹, 뺨, 내지는 걸레 자루, 및 여러 도구였으며, 고등학생쯤 되면 이 정도로는 안된다면서 주먹으로, 발로 맞아본 경험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물론 교사도 인간이기에 흥분할 수 있고, 사랑이 지나쳐서, 내지는 의욕이 지나쳐서 실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신체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인지해서도 안되는 그런 상황에 빠져 버린다.

예전에 중학생때쯤 되면 했던 말들이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한다고 한다. "몸으로 때우지 뭐!" 몸으로 때운다는 말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한참 꿈을 키워 나가야 할 아이들이 그렇게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가, 이것은 어려서부터 맞고 자란 우리 아이들의 너무나도 참혹한 현실이다.

아이들이 왜 어른을 공경하지 못하고, 폭력적이 되어가는가? 이것이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을 정치인에게서 배우고, 사회의 폭력배들로부터 배우는 것일까? 물론 그런 영향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가장 일차적으로는 부모, 또래, 그리고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배운다. 교사는 이러한 영향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막아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것들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딜 가나 수직적 인간관계가 지배를 한다. 우리는 어릴때부터의 조직적인 폭력에 아이들을 구속시키고 적응시킴으로써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서두로 돌아가자. 스승의 날에 아이들이 교사를 둘러싸고 폭행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교사는 아이들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다 큰 학생의, 설령 어리더라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한 인격체의 머리카락을 잡고, 끌고 나가는 행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강제적 폭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군사부일체라 하면서 항상 교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경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그러한 수직적 관계는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관계 형성을 처음부터 배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설사 인격적 관계가 맺어진다 하더라도 상호간의 의사 소통이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닌, 알아서 베풀고 알아서 기는 그러한 관계만이 맺어진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학생을 폭행했다고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미래가 있다고.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룩한 이들은 사회 지배 계층의 압제에 대해서 순응한 사람이 아니라,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싸워 온 사람이 아니었던가? 내가, 그리고 내 옆의 동료가, 자신의 신체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받는데, 이를 참고, 묵인하고, 그저 넘겨버린다면, 그 자체로 그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닐까?

지금 무너져가는 교권에 안타까워하면서 신세를 한탄하는 교사들, 특히 젊은 교사들에게 말하고 싶다. '불쌍한 이들이여, 아이들로부터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스승이여!' 하지만 이들 역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인격적으로 접근하는 것인지 배운 바 없을 것이다. 이미 이들이 아이었을 때부터, 위로부터 내려오는 압력에 순응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가 있더라도 윗사람에 대항하는 잘못이라고 세뇌되어 왔던 불쌍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다시 말하고 싶다. '희생하라,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주장하라, 교권보다는 자신과 아이들의 인권과 인격을!' 교권이라는 것은 아이들과 교사 사이의 아름다운 상호 인격적인 의사 소통이 기본이 될 때에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좀더 인격적인 사회의 형성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가면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로부터 이룩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좀더 인격적인 사회의 형성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가면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로부터 이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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