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를 괴롭히던 그 남자의 죽음

'그렇게 가고 말 걸 왜 그렇게 모질게 살았는지'

등록 2001.05.22 15:11수정 2001.05.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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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안의 작은 슈퍼마켓 앞에 원숭이 두 마리가 있었다. 작고 네모난 쇠창살에 갇힌 원숭이들 옆에서는 원숭이의 주인이고 슈퍼마켓의 주인이기도 한 남자가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폭죽이 터질 때마다 원숭이들은 놀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갇힌 몸이라 달리 피할 곳이 없었다. 남자는 그런 원숭이들이 재미있는지 싱긋싱긋 웃었다.


남자는 폭죽을 터트리다 싫증이 나면 성능이 좋은 장난감 총으로 원숭이를 조준해 맞추기를 하였다.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의자를 갖다놓고 쏘았는데 처음에는 열 발에 한두 발이 맞았지만 며칠을 연습하자 빗나가는 총알이 거의 없었다. 원숭이들이 죽어라고 울부짖고 피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남자는 좀처럼 그 놀이를 끝낼 줄 몰랐다.

남자가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방법도 항상 달랐다. 먼 데서 던져서 맞추거나 원숭이의 손에 닿을 듯 말 듯 약을 올리는 등 무궁무진한 새로운 방법이 있었다.

항상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리던 원숭이들은 남자가 잠깐씩 자리를 뜰 때마다 쇠창살의 약한 부분을 찾아서 잡고 흔들어 조금씩 틈을 넓혔다.

머리가 겨우 빠져 나갈 정도로 틈이 벌어진 어느 날 밤 원숭이들은 그 쇠창살을 탈출했다. 그러나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였을까? 그리 멀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이웃집 지붕 위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전깃줄에 감전되어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또 다른 녀석은 그 원숭이를 두고 차마 도망칠 수가 없었던지 그 곁에 머물다가 다음 날 남자의 손에 다시 잡히고 말았다.

전기에 감전되었던 원숭이는 의식을 찾긴 하였지만 삶의 의욕을 잃은 듯 시름시름 앓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남은 원숭이는 오래도록 남자가 쏘는 장난감 총의 과녁이 되어 시달리게 되었다. 원숭이는 이리 저리 또 다른 탈출구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한번의 탈출 이후 감시가 삼엄하여 성공하지 못했다.


원숭이는 남자가 곁에 오면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었지만 낯선 사람들이 다가오면 옷자락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그것은 구원을 바라는 손길이었다. 자신을 그 곳에서 탈출시켜 달라는 애원이었다. 그러나 모두 황급히 원숭이의 손을 떼어내고 그 자리를 벗어나곤 하였다. 더러 원숭이를 사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남자는 결코 원숭이를 팔지 않았다.

남자의 아내도 어머니도 남자의 행동에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못했다. 남자는 어머니나 아내에게도 원숭이에게 하는 것 이상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력에 못 이긴 아내가 도망칠 기색이라도 보이면 남자는 아내에게 도망을 치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 찾고 말겠다는 말을 누누히 하곤 하였다.


남자의 아내는 자주 진하게 화장했다. 그러나 진한 화장으로도 파란 멍자욱은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모두들 뒤에서는 남자를 욕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제지를 하지는 못했다. 누구든 남자의 행동을 제지하려들면 목숨까지 위협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원숭이는 끊임없이 쇠창살을 잡고 흔드느라 털이 거의 다 빠졌고 눈에는 어떤 빛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배고픔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남자의 손에 들어온 후로 한 번도 행복했던 날이 없었을 원숭이는 초췌한 몰골로 죽어갔다.

원숭이가 죽고 몇 달 후 남자는 누군가를 폭행하였고, 합의금으로 상당한 금액을 들인 후 가게를 처분하고 시장에서 많이 떨어진 후미진 곳에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장사가 시원찮았고,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사고들을 일으키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울화를 삭히던 남자는 간경화증에 걸렸다. 하지만 병원비는커녕 쌀마저 떨어져 가족들이 굶을 지경이 되었고, 남자보다 가족들을 걱정한 마을 사람들이 쌀과 돈을 추렴하여 주었다. 얼마 후 병원에서는 남자를 소생시킬 가능성이 없다고 퇴원을 시켰다고 했다.

한 달 전쯤 시장에서 그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곁에는 복숭아같은 볼을 지닌 초등학교 5학년된 딸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를 닮아 예쁘고 맑은 얼굴의 딸이 곁에 있어서인지 남자는 더욱 초췌해 보였다. 더 이상 마를 수 없을 정도로 마른 남자는 죽기 직전의 원숭이 같아 보였다. 항상 살기가 가득했던 눈은 체념의 빛조차 사라진 듯 휑하니 비어 보였다. 그 눈은 그때까지 했던 모든 악행을 씻어낸 듯한 선함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다. 마실을 나가셨던 시어머니께서 오늘이 그 남자의 장례식이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가고 말 것을 왜 그리 모질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이셨다.

사람들은 장례식날 비가 오면 하늘도 슬퍼서 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남자의 죽음에 슬프게 우는 하늘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혹시 뒤늦게 자신의 지난 삶을 후회하는 남자의 눈물이라면 모를까.

살아서의 삶이 어땠든 남자의 죽음을 접하고는 마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죽기 전의 살기가 사라진 남자의 눈을 보았었기 때문일까? 혹시 저 위의 누군가가 다음 생에 이 남자를 총알받이 원숭이로 태어나게 하든 말든 나는 그 남자에 대한 나쁜 기억을 지우기로 했다.

남은 사람들에게 그 남자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기쁨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그 남자에게는 이미 '천벌'이 아니었을까? 악으로만 존재했던 그 남자의 생이 나는 불쌍하다.

이웃의 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며칠째 물 구경을 못해 말라가던 이웃집 옥상의 나무들이 이 비를 맞으며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어쩌면 이 비는 그 남자의 마지막 선행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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