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부는 태권도 바람 (1)

한국인 스승을 위한 프랑스 제자의 사은회

등록 2001.06.10 17:05수정 2001.07.1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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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스포츠인 김운용(세계태권도연맹 총재. IOC 집행위원)씨, 그는 분명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인물이다. 어쩌면 그가 쿠베르탱(1863-1937 IOC 창시자)처럼 가장 위대한 스포츠 인물 중 하나로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두고 태권도인들은 "태권도의 세계화가 그의 공"이라 칭송 하기도 한다. 언필칭, 김운용씨의 빼어난 스포츠 외교의 업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견해도 있다. 그가 후진국 IOC위원으로써 국제 스포츠라는 험란하고 긴 모래밭을 걸어 올 때, 태권도계가 그를 업고 함께 왔다는 시각이 그것.

그 '모래밭'에 찍힌 '발자국(역사)'이 한 사람 것으로만 유독 강하게 찍혀있던 곳 일수록, 태권도계가 그를 업고 함께 왔던 동반자의 발자국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큰 그'(?)를 업고 온 태권도계. 여기 아름답고 훌륭한 태권도인의 이야기가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불고 있는 이태원 바람"의 주인공인 김갑식(55 이태원체육관)관장이 바로 그 인물.


이미 1995년 5월 현지 스포츠지에 대서특필된 김갑식(태권도 8단)관장의 면모가 다시 프랑스에서 재기되고 있는 것은 그의 프랑스인 제자 '프레드릭' 때문이다.

프랑스 '뚜루스'에서 스포츠센타를 운영하는 '프레드릭 후베(44 태권도4단)'는 "6년 전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뭉클하다고 회상했다.


지난 1995년 5월 중순, 우연히 한국의 '스승의 날'에 관한 소식을 듣고 감명을 받은 그는 곧 바로 한국에 초청장을 띄웠다. 자신의 인생을 뒤 바꾼 한국인 태권도 스승 김갑식 관장 부부를 초대한 것이다.

격년으로 한국을 찾아 뵈었던 스승이었지만, 그 날의 상봉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스승을 위한 "한프(한국과 프랑스의 예법을 접목한 프레드릭 특유의 이벤트)식 사은회"가 그것인데, 그의 준비가 얼마나 치밀(?) 했는지, 꼼꼼하기로 소문난 김관장도 놀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프레드릭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준비했던 "한프식 사은회"가 열렸던 지난 1995년 5월22일 오후, 프랑스 뚜르스 스포츠센터에서는 초청객만 천여명이 참석했고, 현지 기자들까지 취재 공세를 펼치는 열띤 분위기였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참석한 초청객들은 초청장에 인쇄된 김관장의 사진에 사인을 받느라 북새통을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관장 내외가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착석한 후, 시작된 이 날 행사는 프레드릭의 감회에 서린 프롤로그로 인해 뜻 밖의 상황이 연출 되었다.

김관장의 부인 양인옥(49) 씨가 이국에서 받은 뜻 밖의 환대에 "OOO 부인이 부럽지 않았다"며 눈물을 글썽인 것이다.

"여러분! 저기 앉아 계신 분들이 저의 인생을 새롭게 밝혀주신 한국인 스승 내외분이십니다"로 시작한 프레드릭의 개회사는 참석한 초청객들의 눈시울마저 적실 만큼, 간절했다고 한다.

'프레드릭 후베'는 30대 초반이었던, 지난 1982년 흰색 태권도복의 매혹에 끌려 뒤늦게 태권도를 시작한 전형적인 외국인의 경우다. 노란띠(7급)를 취득한 후, 그는 막연히 종주국을 동경하다가 이듬해에 한국을 방문했다.

방한 즉시 국기원을 방문한 '프레드릭'은 종주국 태권도 1번지를 찾은 순간부터 자신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을 스스로 직감한 그는 국기원의 머릿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곧바로 국기원 사무처를 찾았다. "선생님, 이 곳에서 태권도를 배우게 해 주십시오." 프레드릭은 국기원 자체에서도 태권도를 지도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때, 국기원에서 소개해준 체육관이 이태원체육관이었다. 프레드릭과 스승 김갑식 관장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첫 만남에서 김관장은 벽에 걸린 관훈(예절과 태도, 믿음과 의리, 참고 견딤)을 번역해주며, 태권도 지도에 앞서 올바른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의 첫 만남은 길지 못했다. 두 달간의 엄격한 합숙수련을 마친 프레드릭은 아쉬운 작별을 하며 본국 프랑스로 떠난 것이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그때부터였다. 2년 후인, 1985년 프레드릭은 30여 명의 일행을 대동하고 스승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2년 전에 했던 것처럼 30여명의 일행 모두가 체육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두 달간의 합숙운동을 했다. 훈련이 끝날 무렵, 프레드릭은 국기원 유단자 심사에서 초단을 획득했다.

프레드릭 개인으로서는 가장 인상 깊은 한국에서의 기쁨이었다. 두 달 후, 합숙 훈련이 끝나던 날은 체육관에서 김관장 내외가 준비한 즉석 "불고기 바비큐잔치"가 벌어지는 가운데 송별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는 2년 후, 다시 볼 전야제 성격이 강했다. 왜냐하면, 격년 그 날이 되면 어김 없이 이태원체육관은 프랑스판이 되었기 때문이였다.

프레드릭은 개회사 내내 수시로 김관장 내외를 바라보며, 경의를 표 하다가 연설 말미에 두 손을 불끈 쥐고 크게 외쳤다.

"여러분, 스승의 나라 한국은 진짜로 멋진 나라입니다. 한잔의 차(茶)를 마셔도 다도(茶道)라는 예를 갖추는 근본있는 나라예요. 태권도라는 무도 속에 그러한 한국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저가 있게 해주신 스승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감격적인 행사가 끝나고 기념촬영을 할 때 였는데, 두 개의 VIP석에 김관장 내외가 앉고, 그 양옆이나 뒤로 관련자들이 배석했는데, 갑자기 김관장이 프레드릭을 불러세우고는 저 멀리 주방 쪽에서 오찬 준비를 하고 있던 한 노인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던 것이다. 프레드릭이 "집안 어른인데, 요리 솜씨가 좋아 모신 것이라고 하자" 얼른 가서 모시고 오라고 청했는데.

노인 분이 끝내 오기를 사양하자 김관장이 직접 가서 반강제(?)적으로 모시고 와서는 자신의 VIP 좌석에 모신 후, 기념 촬영을 하자, 참석자 모두 기립박수로 김관장의 인격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당시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 본 김관장의 부인 양인옥 씨도 "남편을 가장 존경했던 순간이 그 때"라고 했을 정도다.

프레드릭(44세 태권도4단)은 현재 프랑스 뚜르스에서 에어로빅 선생인 부인 세실리와 함께 종합스포츠센타를 경영하고 있는데, 인지도가 높아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애칭이 코리아& 김치로 통하는 프레드릭은 6년 전의 순간을 회상하며 새로운 사은회를 구상하고 있어 자신의 프랑스 제자들로 부터도 칭송이 자자하다고 한다.

한국의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달 5월 15일, 프레드릭은 자신이 운영하는 뚜르스스포츠센타 게시판에 붙어 있는 당시 '사은회 행사' 기사를 바라보며 스승의 나라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스포츠 뉴스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태권도가 정시 뉴스의 이슈로 등장 했습니다. 아픔을 다루는 반대편에서 세계화된 태권도의 감추어진  미담을 다루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김갑식(편)은 1부. 2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스포츠 뉴스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태권도가 정시 뉴스의 이슈로 등장 했습니다. 아픔을 다루는 반대편에서 세계화된 태권도의 감추어진  미담을 다루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김갑식(편)은 1부. 2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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