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에서 보내는 시

매춘 외 3편

등록 2001.07.03 00:12수정 2001.07.0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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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

누이는 창녀였다
나는 밤마다 누이를 샀다


아아
목에 칼을 들이대고 강간하는 것과
돈을 들이대고 겁탈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보시

재앙(災殃)이 바다를 덮쳤다
오랜 세월 물고기들은
그와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아들은 불쑥 자라 일가를 이루었다
딸들에게서는 물비린내가 났다
물고기가 그들을 키웠다

재앙이 바다를 덮치고
물풀도 살 수 없는 바다
물고기들 이마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랜 세월 물고기들은
그를 살찌웠다
그의 가계는 풍성해 졌다

재앙이 바다를 덮치고
물고기들은 아사(餓死)에 직면했다
가련한 물고기들


그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지네

거미는 그물을 던져 지네를 포획한다
나는 지네를 모른다
거미는 지네의 숨통을 조인다

밤마다 문지방을 넘어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지네
나는 지네를 모른다
거미는 지네의 목에 칼을 꽂는다

나는 지네를 모른다
밤새 한 몸으로 뒹굴다가도
새벽이면 독을 뿌리고 달아나는
지네의 속을 모른다
거미는 천천히 지네의 체액을 삼킨다

불행에 빠진 지네
나를 물고도 행복해지지 않는 지네



재가 되었네

재가 되었네
나뭇잎
재가 되었네
옛 추억
재가 되었네
그 여자
재가 되었네
내 사랑
재가 되었네
붉은 입술
재가 되었네
검은 꽃
재가 되었네
이발소도
재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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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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