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인문학상은 동인 탄생 100주년, 조선일보 창간 80주년을 맞아 심사위원 종신제 채택 수상 후보작을 장편소설·단행본 작품집 등으로 전환 연중 심사독회 개최 상금 파격 인상 등 혁신적 개편을 단행한 바 있습니다."
이는 작년 조선일보가 동인문학상 수상자를 알리는 사고(社告) 내용의 일부다. 요즘 문단에서 내로라 하는 필력을 날리며 언론사 세무조사 방어전에 나선 이문열 씨가 바로 이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이다. 아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김동인은 조선일보 기자, 동인문학상은 조선일보의 치적?
동인문학상 : 소설가 김동인을 기념하여 제정된 문학상. 김동인은 조선일보사의 기자로 근무했음.
주최사 : 조선일보사(87년 조선일보사가 이 상을 인수했다)
운영위원장 : 방상훈 조선일보사장
심사위원 : 박완서, 이청준, 김주영, 이문열, 유종호, 김화영, 정과리
동인문학상 심사제 : 종신심사제
선정대상 작품기준 : 선집·전집을 제외한 완전한 형태의 단행본 소설집과 단행본 중편·장편
상금 : 5천만원
제도개편후 첫 수상자 : 이문구(민족문학작가회의 전 이사장)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
2001년 후보작 : ▲최일남 작품집 ‘아주 느린 시간’(문학동네) ▲성석제 장편 ‘순정’(문학동네) ▲이만교 장편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문학동네) ▲이승우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김영하 장편 ‘아랑은 왜’(문학과지성사) ▲박성원 작품집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송은일 장편 ‘불꽃섬’(문이당) ▲이제하 작품집 ‘독충’(세계사) ▲은희경 장편 ‘마이너리그’(창작과비평사) ▲이밖에 6월에 발간된 작품 중 복거일 장편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문학과지성사) 계속 논의중
소설가 이문열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 많은 사람들은 왜 이문열 씨가 조선일보 방어전에 나섰는가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이문열 씨가 조선일보사 주최 방상훈 사장이 운영위원장인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임을 알게 되면, 그 내막을 이해하는 열쇠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이문열 씨는 만에 하나라도 닥칠지 모르는 운영위원장인 방상훈 사장의 구속수사를 우려해 충심으로 그를 위한 변명이라도 문필로 해주기 위해서 언론개혁과 세무조사 공격에 나섰는지도 모른다. 왜 이문열 씨는 조선일보사를 위한 방어전에 나섰을까? 많은 이들이 이문열 씨를 조선일보에 줄선 작가라고 비판한다.
언론사 세무조사 반격 이문열, 그는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
이런 '줄 세우기' 비판에 대해 조선일보는 작년에 김광일 기자의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일축한 적이 있었다. 기사를 보자.
"일부에서 ‘줄 세우기’라고 비판한 심사위원 종신제는 심사위원에게 책임을 부여하기 위한 유력한 방책이며, 심사의 신뢰성을 높이고 상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의도다. 심사위원을 둘러싼 잡음은 문학상에서 종종 일어난 문제로, 어떤 문학상은 주최측이 미리 내정한 작품에 맞춰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극단적 사례까지 있었다. 심사위원 종신제는 또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종신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뜻도 있다.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 씨 등 일곱 명은 동인문학상 심사를 맡기에 충분한 문학적 성과와 인격을 검증받은 분들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동인문학상 운영에 대한 비판 중 심사위원을 유력 문예지들에 안배하고 특정 문예지는 배제했다는 지적과 심사 대상 작가보다 심사위원들 나이가 어리다든지, 문단 경력이 크게 차이 나는 작가와 나란히 평가 받을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심사위원을 안배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전혀 없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또 세계의 어떤 문학상도 심사위원과 심사 대상 작가들의 나이, 문단 경력 등 문학 외적인 것이 문제가 된 일은 없었다."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에 따르면 종신심사위원인 이문열 씨를 포함한 이들 문인들은 '문학적 성과와 인격을 검증받은 분들'이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은 조선일보의 줄세우기를 통해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이 된 것이 아니라 문학적 성과와 인격 검증을 통해 심사위원이 된 것이다. 이들의 문학적 성과는 그렇다치더라도 '인격을 검증'한 이는 누구일까? 독자? 아니면 국민? 혹시 조선일보는 아닐까?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종심위원들 '인격 검증 완료(?)'
기자는 김동인 선생의 문학적 업적까지 비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한 김동인을 기려 제정한 동인문학상을 87년 조선일보가 인수한 이래, 진정으로 조선일보가 그 상의 가치에 걸맞게 동인문학상의 권위를 지켜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작가 황석영의 동인문학상 후보작 선정 거부와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은 언론권력의 편에 선 문인권력의 힘을 실감케 하고, 문인권력 해체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시인 김정란 교수를 비롯한 의식 있는 일부 문인들이 문단권력을 비판했으나 본격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동인문학상에 쏟아진 비판을 인식한 탓인지 이를 개편해 종신심사위원제를 채택하고, 상금을 대폭 올려 문인들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동인문학상을 조선일보의 입맛에 맞는 문인들을 키우고, 그 문인들을 자사의 논조에 필요한 인물로 배치하면서 문학예술과 작가들을 언론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조선일보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하기 위해 기사(침묵 강요당하는 지식인들, 7일자)의 논거로 사용한 복거일, 정과리, 이문구 등이 모두 동인문학상과 연관된 인물이다. 이밖에 이인화 등 일부 문인들이 조선일보 기사 코멘트나 시론 기고 형식을 통해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하면서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왔다.
동인문학상 연관 문인들 대거 '언론사세무조사' 반격 나서
작년 제도개편 후 동인문학상은 장편소설·단행본 작품집만을 대상작으로 하면서 메이저 출판사나 특정출판사의 작품이 후보에 거론되고 있다. 이는 역량 있는 신인이나 작품에 문학적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특정 문인의 특정작품에 기회를 한정함으로써 문단권력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수상작과 다수의 후보작이 특정 출판사에서 발간한 작품집이며 종신심사위원들이 해당 특정출판사에서 평론집이나 소설집 등을 집중해 발간했다면 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기사를 통해 '동인문학상 운영에 대한 비판 중 심사위원을 유력 문예지들에 안배하고 특정 문예지는 배제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심사위원을 안배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전혀 없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밝혔다. 그러나 메이저 출판사와 특정출판사에 편중된 후보작과 특정출판사를 통해 심사위원들이 작품집, 평론집을 발간한 것은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는 걸까?
동인문학상과 종신심사위원제가 조선일보에 기여하는 문인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면, 이는 전적으로 조선일보의 책임일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방상훈 사장이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인 이문열 씨가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은 분명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기자는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을 예로 들었지만 문단권력과 언론권력의 연결고리를 의식 있는 문인집단 스스로가 또는 시민사회가 끊어내지 않는 한, 중요한 정치적 격변기에서 제2, 제3의 이문열 같은 '할말은 하는 문인'들이 언제나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기에 세무조사와 관련한 국민적 열망과 언론개혁의 대명제를 헌짚신짝처럼 내던진 문단권력과 이에 반해 성명서 한 장 내놓지 않고 침묵만 하고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대신해 시민, 네티즌, 인터넷기자, 작가 황석영, 여당의 한 여성의원 등이 문단권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제 우리들은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의 권위가 무엇인지 조선일보가 보도한 동인문학상에 대한 아래의 기사 내용과 동인문학상 관련 문인들의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을 통한 세무조사 발언을 비교하면서 결론을 내려보자.
동인문학상의 권위, 그것은 조선일보 사주와 조선일보의 논조, 조선일보에 복무하는 문단권력을 위한 권위가 아닐까?
동인문학상, 조선일보 사주를 위한 상?
"문제는, 상이 갖는 권위 그리고 독자가 그것을 인정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동인문학상이 한국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선양하면서 아울러 우리의 척박한 정신풍토에 「인간」과 「생명」과 「아름다움」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는 ‘문화창달’의 사시에 따라 문단의 어떤 유파나 사조에도 활짝 문을 열고, 오로지 심사위원들의 양식있는 판단에만 맡겨 이 상을 발전시켜 나갈 것(방상훈 사장)”
"이땅의 문학부흥을 위한 혁신적 개혁이라는 조선일보의 취지를 귀하게 여긴다. 동인문학상은 우리 문학의 백년대계를 위해 반드시 이어나가야하고 더욱 발전해야 한다.(이문구)”
"무엇보다도 ‘이 땅의 문학 부흥을 위한 혁신적인 개혁’이라는 조선일보사의 취지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문인이 문학을 위하는 언론에 신뢰와 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때 모든 언론의 논조가 그게 그거여서 신문을 ‘관보’라고 폄하하였던 내가 이번에 문인된 자로서 취한 태도를 열번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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