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밥집, 그곳에서 맛보는 인간사

밥집 이야기(1)

등록 2001.08.01 21:44수정 2001.08.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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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는 오감 중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고 끊임없이 추구하는게 미각이 아닐까 싶다. 행여나 반박의 논리를 댈 독자도 있겠지만, 살기 위해 먹기보다는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타당한 논리처럼 된 것이 요즘 현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무슨 반찬과 찌개를 준비할까, 점심 땐 어디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 퇴근길에 어디서 술 한잔을 할까 하는 생각이 하루 중에 적어도 30%나 차지할 만큼 인생사에서 먹거리만큼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고민거리임에 틀림없다. 고민거리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루 중에서 즐거움을 주는 몇 가지 안되는 것 중에서 꽤 큰 부분이라고 자신해 본다.

필자는 한 달 동안 부산 시내의 손맛으로 유명하고 오래된 음식점들을 찾아 다니며 맛집에 대한 방송물을 제작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밥집에서 보고 느낀 것은 이 조그만 밥집이 인생살이의 축소판이라는 점이다. 거기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단상을 늘어놓고자 한다.

첫번째, 소문난 밥집들의 주된 공통점 중의 하나는 바로 재료의 신선도와 품질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음식에 쓰이는 재료는 거의 무진장이다. 다시 말하면 들과 산, 강과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동식물들이 음식의 재료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근목피와 산해진미라는 말이 있듯이 풀뿌리, 나무 열매에서부터 집에서 기르는 가축과 산짐승, 새들, 그리고 크고 작은 민물고기와 바닷고기, 해조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못 먹는 게 없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신선한 재료와 한국 토종만을 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밥집 주인장이 까다롭다고 소문이 날 만큼 세심하게 고르지 않으면 특히 고기의 경우 금방 수입산이 국내산으로, 양질의 돼지뼈가 소뼈로 둔갑하는 것은 눈깜짝할새니까 말이다.


두번째, 신선한 재료와 함께 갖은 양념을 해야 되는데 한국음식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그야말로 조금 덜 떨어진 재료를 구입하였더라도 양념으로 듬뿍 버무린다면 그 양념맛에 홀딱 반해 보통음식도 최고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양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국음식의 조미료를 들자면 맛의 기본이 되는 소금과 장류로 간장, 고추장, 된장 등이 있으며, 감미료로서는 설탕, 조청 등이 있고, 기름류에는 참기름, 들기름 등이 있으며, 그밖에 식초, 고추, 깨소금, 젓국, 술 등이 있다.


양념을 아까워한다면 그 밥집은 결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가 없다. 또한 이러한 양념과 더불어 식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미료의 대명사, 발효조미료 '미원'을 비롯하여 각종 종합조미료는 음식의 맛을 한차원 끌어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그 특유의 화학 조미료에 식상한 사람들이 그 음식 자체의 맛을 느끼기 위해 천연 조미료를 선호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결국, 재료의 신선도를 살리는 동시에 독특한 맛을 끌어내기 위해 짧게는 수년 동안에서 수십년 동안 밥집 주인장은 양념개발에 주력했고, 양념비법을 터득한 순간, 가족들에게 조차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일이 당연시 되었다.

세번째, 양념 다음으로 빠트릴 수 없는 향신료. 일반적으로 향미나 신미를 주는 것을 말한다. 한국 음식에 쓰이는 향신료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마늘, 파, 후추, 생강, 계피, 겨자 등이 있다.

향신료를 많이 쓰는 음식은 이태리, 인도, 동남아등지에서 먹는 에스닉 푸드(Ethnic food) 로 강하면서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먹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우리나라 음식에서는 거의 향신료가 빠지는 요리가 없을 정도로 그 특유의 향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각종 고기요리나 탕류에 있어서 고기 특유의 잡내를 없애고, 발효음식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향신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맛은 승부가 갈릴 수도 있다. 특히 전통 있는 국밥이나 냉면 등에 들어가는 육수의 대부분은 마늘, 생강, 파, 양파를 넣는 것이 필수라고 한다.

이렇게, 세 가지 요소에 따라 음식의 맛과 질이 틀려지듯이 소박한 동네 밥집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나름대로 굳건히 지켜내는 집은 과연 몇 십년이 지나도 그 맛이 전혀 틀려질래야 틀려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밥집이랑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재료는 다양한 재능과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 풍부한 양념과 독특한 양념비법은 갈고 닦은 다양한 재능에, 향신료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와 미디어 등에 비유를 해보니 그 이치가 딱딱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이러한 기본 요소들을 충실히 지키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서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손익을 따져 제 맛을 잃어버린 밥집, 그리고 사람들이 세웠던 가치가 물질과 권력이 주는 안락함과 타협해 제 본질을 잃은 현실이 나란히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저녁 나절 동네 어귀를 한바퀴 휘휘 돌다 발견한 소박한 밥집. 그 안에서 풍겨나오는 구수한 냄새처럼 우리네 삶에선 언제쯤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올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퍼진다.

덧붙이는 글 | 허름한 밥집을 취재하다보니 그 안에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마치 음식맛처럼 담백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러한 밥집을 찾아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렸죠.

다음 글은 경상도 특유의 투박하고 거친 음식에 대한 글로 이어지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허름한 밥집을 취재하다보니 그 안에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마치 음식맛처럼 담백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러한 밥집을 찾아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렸죠.

다음 글은 경상도 특유의 투박하고 거친 음식에 대한 글로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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