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목이'를 어디에 맡기지...

맞벌이 부부의 육아 고민

등록 2001.09.07 22:47수정 2001.09.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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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만에 보는 해목이는 생각보다 참 많이 컸다. 몸집이 커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트림을 시킬 때도 아내의 어깨에 기대지 않으려고 고개를 치켜들고, 혼자 가끔 하던 옹알이도 대화를 하듯 눈빛을 맞추고 잘도 했다.


아내의 출산휴가도 끝나고, 슬슬 해목이를 어디에 맡길지 고민이 되었다. 어머니와 장모님은 식당에 일을 하러 나가시는 지라 손녀를 보살펴 줄 형편이 되질 않았고, 결국 처형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처형도 우리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형님은 얼마 전 진주의 한 공장에서 퇴직을 하고 결국 직장을 구하러 수원에 가있는 형편이고, 처형은 살림에 보탠다고 낮 시간에는 밤 깎는 일을 하고 계셨다. 이렇게 주위에 떨어져 지내는 부부가 많은 걸 보면 어려운 시절이 틀림없다.

처형에게는 맡길 엄두조차 내보지 못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 아내는 결심을 하고 부탁을 했다. 승낙을 받아내자마자 이것저것 해목이의 물건을 챙겨서 트렁크에 넣고 두 달 동안 몸조리를 했던 부모님 댁에서 눈물을 머금고 철수(?)를 했다.

어머니는 일 때문에 손녀를 돌봐주지 못하고 떠나 보내는 게 못내 가슴이 아프신가 보다. 그렇게 해목이 옆을 떠나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그 날 만큼은 한 번 안아 주시지도 않으시는 걸 보니, 그렇게 해목이를 데리고 떠나는 우리들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형편만 좋았으면 손녀딸이나 업고 키우며 지낼텐데"라며 괜히 사돈댁 고생시킨다며 걱정을 하셨다. "전화나 자주 하거라" 부탁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뒤돌아 서면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실 것 같았다.


결국 시동을 걸고 해목이랑 산책하려 했던 '가네끝 들판(마을앞 들판)'을 벗어나 진주로 향했다. '해목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곁을 떠나는지도 모르고 진주에 도착하는 동안 보채지도 않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처형은 그동안 깎던 밤도 모두 도로 갖다주고 집안 청소까지 해놓고 조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애기 키우는 값은 밤 깎은 것만큼 주면 된다며 웃으시지만 초등학생인 푸름이와 가람이도 있는데 핏덩이 조카까지 맡기려고 하는 우리들은 미안함이 앞섰다.


가구점에 가서 기저귀랑 옷을 넣을 작은 플라스틱 서랍장을 사서 등에 지고 오며 아내와 나는 한참동안 언제까지 이렇게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당장 뾰족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지만 희망 없이 살수는 없는 법이니까.

맡긴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었다. 해목이는 동네 아주머니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고,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 가람이는 엄마의 사랑을 새로운 경쟁자(?)에게 빼앗기자 해목이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단다. 아침저녁으로 전화로 해목이 소식을 전하는 아내가 고맙다.

어제 저녁에는 해목이의 옹알이 소리를 들었다. 오늘 밤에는 이제 자고 있으려나...... 항상 전화를 받으면 이제 2개월 밖에 안된 해목이가 수화기를 붙잡고 꼭 아빠하고 부를 것만 같다. 옹알이를 듣고도 '아마 아빠라고 불렀을 거야' 라고 생각하니 중한 상사병이 걸린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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