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웃', 비정규노동자들이 싸우는 이유 ①
대송텍 노동자, "TKP가 내 일터다"

등록 2001.09.12 03:38수정 2001.09.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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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못벌면 자식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을 가능성이 당연히 줄겠죠. 교육을 제대로 못받는다면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드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닙니까?"

10일 포항, 평택, 왜관 등 전국 각지에 있던 조합원들이 제3차 상경투쟁을 위해 모인 전국민주화학섬유연맹 사무실. 대한송유관공사(대표이사 조헌제)가 '도급계약'을 해지, 해고된 대송텍 노동조합 이상회(49) 포항지부장이 간단한 이치도 모르냐는 듯 대답했다.

"파업 32일째죠?" "우리는 파업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해고됐고, 조합사무실도 없고…. 조합원 전체가 일자리 돌려달라고, '계약해지'가 인생해지가 안 되게 할라고 싸우는 중입니다." 한 방 먹었다. 그렇다, 대송텍 노조원들은 전원이 TKP(대한종단송유관)에서 밀려났다.

파업 아니다, 일자리 찾기 투쟁이다

82년 9월, 미군이 TKP를 운영할 때 군속신분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이 지부장은 "92년 6월 운영권이 SK로 넘어오면서 엔지니어 등은 제자리 찾아갔지만, 배운 것 없는 우리들은 오륜, 삼일사, 현대석유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운을 뗐다. SK로 넘어올 때 그리고 96년 다시 라이너스라는 업체 이름으로 통합됐을 때 연월차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억울해도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하면서 자위했다."

99년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TKP 소유권을 가진 국방부가 대한송유관공사로 운영권을 넘기면서 다시 라이너스에서 현재의 (주)대송텍으로 또 한 번 소속이 변경됐다. 그러나 이런 잦은 소속변경에도 이 지부장은 동일한 곳에서 동일한 일을 계속했다.

"일년에 한 번씩 계약갱신을 했지만 그저 형식이었다. 내가 속한 회사명의만 바뀌고 자동적으로 갱신됐다. 내가 비정규직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비정규직인줄도 몰랐다"

이 지부장은 "(주)대송텍은 일인당 238만원씩을 송유관공사에서 받아 일인당 약 110만원 정도를 준다"며 "이는 명백한 중간착취 아니냐"고 반문했다. 왜 송유관공사의 도급계약이 위법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주)대송텍 대신 송유관공사에서 업무 및 인사관리 통제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 지부장은 전국 6개 지역에 있는 저장소장들이 휴가, 근무일수 확인 등 모든 걸 통제한다고 지적한다. "휴가원을 내면 대송간부들이 직접 서명해야 효과가 있다. 2000년 1월 노조를 만들고 나니까 (주)대송텍 반장급들을 수당 1만5천∼2만원에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아 휴가원에 서명을 하긴 했다. 그러나 최종결재는 각 저장소의 소장들이 했다." "근무일수나 잔업확인도 현장소장이 직접한다. 잔업여부도 현장소장이 결정한다." "작업하는 곳이 멀어 차를 타고 이동하다 교통사고로 입원해도 빨리 안 나오면 다른 곳으로 발령낸다고 위협하는 사람도 송유관공사 직원이다."

겉은 대송텍, 속은 대한송유관공사

소속만 (주)대송텍일뿐 사실상 송유관공사 직원이기 때문에 상경투쟁 때마다 송유관공사 조헌제 대표이사 집 항의방문을 빠트리지 않는다. 11일 새벽 4시에도 조헌제 대표이사 집 앞 항의시위를 했다.

(주)대송텍 노조의 진정에 의해 성남지방노동사무소(소장 정수복)는 7월 19일 송유관공사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 지부장은 "송유관공사의 불법행위를 확인하고도 노동사무소는 아무런 일도 안 한다"고 거친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 8월말 노동사무소장이라는 사람이 '송유관공사가 비노조원을 상대로 2개월 도급계약을 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노조를 만들어 민주화학섬유연맹이라는 상급단체에 가입했기 때문에 당신들이 '계약해지'된 것 아니냐?"고 윽박질렀다는 것이다. 불법을 저지른 송유관공사를 탓하기 전에 노동자들이 너무 심하다고 책망하고 나온 셈이란다.

그러나 송유관공사의 경비업체인 (주)온빛도 최근 계약해지 됐다. (주)대송텍과 같이 99.10.1일부터 2002.9.30일까지 계약됐던 (주)온빛도 송유관공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일자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생계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이 지부장은 "오희성 세천지부장 부인이 해고된 후 생계를 위해 '딸이 다니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는 참 막막한 생각도 들었다"며, "이미 노조차원에서 '돌아가면서 막노동판이라도 나가든지 해서 생계를 해결하고 투쟁한다'는 계획도 세워놨다"고 밝혔다.

2년 이상 일한 경우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법규정에 따라 이런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기 위한 편법으로 2년을 채우기 2달을 남겨놓고 해고된 (주)대송텍 노조원들. 20년 이상을 같은 일을 해온 이 지부장은 이야기한다.

"TKP가 내 일터다. 나는 여기에 내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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